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번역) 소원

강현서
2024-03-06 12:04:06
조회 1529
추천 25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841551

 







보충수업이 끝났다.


학년 중에 나 밖에 없는, 교사와 1대1로 진행되는 지옥의 시간.


선생님도 학생이 나뿐이라 그런지 자꾸만 눈을 맞추고 말하려 해서

고통은 공부와 함께 두배를 넘어 제곱이었다.


아아, 아까 들은 수학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좀처럼 쓰지 않는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뇌가 피로해진듯 했다.


이럴 때는 당분을 보급해야한다.


다행히도 방과후라 학교엔 사람이 얼마 남아있지 않을 터.


지금이라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러 가도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없으리라.





1층 연결복도에 있는 지판기는 학생들의 얇은 지갑으로도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도록 전품목이 100엔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진열된 음료들 중에는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시라』

라는 것도 있었다.


이런 건 스쿨 카스트 상위에 있는 인싸들이 반쯤 재미로 사서

시끌벅적 즐기기 위해 비치된 것이지, 나 처럼 카스트 최하위의

찐따가 손대도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즐비한 상품 중에 콜라를 고른다.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시라』는 고사하고,

다른 음료수에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모험은 하지 않는 주의였다.


콜라 버튼을 누르면 원한대로 콜라가 나오는 세상.

그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자 바라는 세상이었다.


캔 뚜껑을 열고 한번에 들이킨다.

거봐, 역시 콜라가 제일 맛있잖아.


다른 것과 비교해보지도 않고 혼자서 납득하는 나.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시라』


무지개색 뚱캔에 물음표 마크가 그려진 촌티나는 디자인.


고교생활도 어느새 절반 정도 지났는데, 남은 1년 반 안에

내가 이 불확실한 미래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게 될 날이 올까.


뭐 딱히 지금 누르려면 누를 수 있긴 하지만.



지갑에서 백엔짜리 동전을 꺼내 버튼으로 손을 뻗는다.



......아니, 그만두자.


이런 건 역시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누른 다음

이상한 제품이 나와 분위기가 더욱 들뜨는,

그런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 위해 있는 거야.


돈이 아깝기도 하고.


반환 버튼을 눌러 백엔을 돌려 받는다.


콜라를 한손에 들고 자판기로부터 몇 걸음 걷다가 멈춘다.


앞으로 두 세모금이면 다 마시니까 이거 버리고 가야지.


캔을 기울여 나머지를 전부 비운다.


그리고 자판기 옆에 설치되어 있는 바구니 모양 쓰레기통으로

발끝을 돌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여기서 던지면 들어가려나......


오른손에 있는 빨간색 빈캔과 목표물인 쓰레기통을 번갈아본다.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느 지점에서 손을 놓아야 할지,

팔은 어느 방향으로 휘둘러야 할지 모르는 채로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그러자 운동신경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나의 투구는

보기좋게 실패했고 빈캔은 새된 소리와 함께 지면을 나뒹굴었다.


목적지에 스치지도 못한 그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었기에

마지못해 주워 올린다.


혼자서 뭐하는 거람.


「히토리쨩 뭐하고 있는 거야?」


「에?! 키, 키타쨩?!」


등 뒤에서 느닷없이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신기한듯 이쪽을 쳐다보는 키타쨩이 있었다.


「어, 어째서 키타쨩이 여기에......」


「친구들이랑 수다떨다가 늦어져서,

모처럼 히토리쨩이랑 같이 가려고 찾고 있었어」


「아, 그, 그렇군요......」


일부러 찾아준 거구나. 그건 조금, 아니 많이 기쁘다.


근데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걸까.

설마 내가 저지른 일련의 행동들을 다 본 건 아니겠지......


「히토리쨩 피곤할 것 같아서 음료수라도 사가려 했는데

이미 마신 모양이네」


「아, 그, 마음만으로도 기뻐요. 헤헤...... 고마워요......」


낌새를 보아하니 방금 전의 한심한 꼴은 못본 듯하다. 다행이다.


「그래서, 히토리쨩은 뭐하고 있던 거야? 쓰레기를 던지다니,

히토리쨩 치고는 나쁜 짓이다 싶어서 가만히 보고 있긴 했는데」


전부 보고 있었잖아. 창피해!


「죄, 죄송해요. 던지면 쓰레기통에 들어가려나 싶어서......

뭐어, 택도 없었지만요, 하하하......」


「흐응. 그렇구나......」


키타쨩은 내 손에서 슬쩍 빈캔을 가져가더니 나와는 다르게

깔끔한 폼으로 던져 보인다.


가볍게 손을 떠난 캔은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안에 있는 다른 쓰레기와 부딪혀 찰그랑 하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작게 박수를 보낸다.


「여, 역시 키타쨩은 대단하네요......」


키타쨩은 원래부터 운동신경이 좋기도 하고,

친구들과 이런 놀이를 많이 해봤겠지.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시라』 버튼도 틀림없이 눌러봤을 거야.


「저기, 히토리쨩」


「왜, 왜그러세요?」


키타쨩은 다시금 빈캔을 주워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만약에 여기서 던져서 들어가면,

히토리쨩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줄게」


「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괜찮아」


「뭐, 뭐든지요......?」


뜬금없는 연인의 제안에, '뭐든지' 라는 부분을 되묻고 말았다.

키타쨩은 웃으며 끄덕인다.


뭐, 뭐든지...... 그 말인 즉,

요상하고 야시시한 부탁을 해도 들어준다는 뜻?!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건 좀......


키타쨩의 눈치를 힐끔 살핀다.


하지만 생글생글 웃고만 있을 뿐,

그 이상의 정보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분명 깊은 의미가 있는 건 아닐 거야.


키타쨩은 재밌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놀이를 제안한 거겠지.


좋아, 그렇다면 나도 가볍게 도전해볼까.


그리고 키타쨩에게 소원을 비는거야......!


「아, 그럼, 조금 연습하게 해주세요.

아직 워밍업이 안됐으니까요!」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쓰레기통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잰다.


응,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까는 완전히 거리를 착각했으니까

좀 더 세게 던지면 되겠지.


손을 좀 더 부드럽게 움직이는 편이 나으려나.

혹시 몰라 가볍게 손목 스트레칭을 한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무슨 소원을 빌려는 걸까나?」


「따, 딱히 별 건 아니에요!」


키타쨩에게 놀림을 받으면서 도전하는 첫번째 시도.

신중히 조준을 하고 팔을 휘두른다.


땡그랑!


빈캔은 거듭 큰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굴렀다.

아쉽지만 이번에도 쓰레기통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바, 방금 건 연습이었어요!」


「응. 알고 있어」


나의 추태를 보고도 생글생글 웃는 키타쨩.

이런 걸 보는게 즐거운 걸까.


그 이후로는 세번 연거푸 실패했다.


그래도 쓰레기통 가장자리 까지는 닿았고,

결코 힘이 부족해서 목표지점까지 던지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점점 요령을 터득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네번째 시도.


엉터리 폼으로 던진 빈캔은 훌륭하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아, 아싸! 키타쨩 들어갔어요!」


「응. 그러네. 근데 방금 건 연습이잖아?」


「아」


만세 포즈를 하던 팔을 내린다.


이 멍청아! 왜 연습한다는 말을 해서!

이런 건 나 따위가 몇 번씩이나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 아니란 말야!


몹시 분해서 머리를 감싸쥔다.

키타쨩도 살짝 어이없어 하는 것 같다.


얼추 진정하고 평정을 되찾자, 저녁놀이 만드는 그림자가 꽤나

길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마지막으로 한번만 하고 끝내야겠다.


「그, 그럼, 이제 도전 할게요」


「응. 화이팅」


연습에서 한번 들어갔다. 아주 불가능한건 아냐. 떠올려라.

아까 전의 감각을.


그렇다. 진짜 도전은 딱 한번. 저격수가 적을 쓰러뜨릴 때 처럼

원샷 원킬로...... 목숨을 걸어라 고토 히토리!


오른손을 머리 뒤로 올리고 성공하는 이미지를 머릿 속으로 그리며

쓰레기통을 노려본다.


「있잖아, 결국 무슨 소원을 빌고 싶은 거야?」


「...................」


뭐어, 성공한 다음 소원을 빌었는데 그건 안된다고 하면

허탈감이 막심할테니까, 말해두는 편이 좋으려나......


「......키, 키타쨩이랑 키스 하고 싶어서......」


「키스?」


「네, 네에...... 아, 안되나요?」


「안될 건 없지만......」


안될 건 없대......! 좋았어!


자, 워밍업은 끝났다.

왼발을 높이 들어올......리지는 않고 팔을 힘껏 휘두른다.


......어라? 뭔가 지금와서 긴장되네.

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힘을 너무 줘서 뻣뻣해진 내 귀에

키타쨩이 중얼거림이 들렸다.


「키스만으로 만족하는 구나......」


「헤?」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그 순간, 캔이 손가락을 떠난다.


그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이었고, 거의 직선을 그리며 던져진

캔은 빨려 들어가듯이 쓰레기통 안에 안착했다.


한 순간의 정적.


「드, 들어갔다ーー!!」


이번에야말로 주먹을 쥐어 보이며 승리 포즈를 취한다.


갓난아기 수준의 운동능력 밖에 갖추지 못한 내가

무려 두번 연속으로 이 이름없는 게임을 성공시키다니......!


「해, 해냈어요! 키타쨩!」


보면 아는데도 키타쨩에게 보고 한다.


키타쨩도 이런 전개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리둥절한 눈으로 쓰레기통을 바라본다.


그렇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까지 지을 일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키타쨩이니까 더욱 소란을 피우며

기뻐해줄 줄 알았다.


어, 어라? 설마 기쁘지 않은 건가?

나랑 키스하고 싶지 않다는 뜻......?


「설마 정말로 들어갈 줄이야......」


작게 한마디 툭 던지는가 싶더니 이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을 보고 안심이 되어 키타쨩에게 기대의 눈빛을 보낸다.


「그, 그럼......」


「응. 해도 돼. 자」


「에」


키타쨩은 정면에 마주 설 뿐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을 살짝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본다.


「키스하고 싶잖아. 해」


「해, 해주는 거 아니었어요?」


「히토리쨩이 말했잖아. "키스하고 싶다" 고」


「엑」


말했다. 확실히 말했었다.


"키스해줬으면 좋겠다" 가 아니라 "키스하고 싶다" 고......

그, 그래도 여기선 상으로 키스 해주는 그런 거 아닌가......


「......안 할거야?」


「하, 할거예요......」


딱히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한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지만......


뭐랄까, 그 왜, 키스라는 건 분위기가 좋아서 라든지,

그때 그때 흐름에 맞춰서 하는 느낌이다 보니까,

이렇게 정식으로 '지금부터 키스 하겠습니다' 같은 상황이 닥치니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키타쨩은 앞으로 몇 센치만 더 가면 닿을 거리까지 입술을 가져와서

비디오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우뚝 멈췄다.


서로가 내뱉는 숨결까지 느껴지는 거리.


키타쨩이 눈을 감았다.


긴 머릿결, 오똑한 콧날, 핑크빛 입술.

어디를 봐도 예쁘기만 하다.


아아, 정말. 이런 걸 보고 참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나는 재생버튼을 눌렀다.





「그건 그렇고 히토리쨩은 욕심이 없네」


「그, 그런가요」


저녁놀이 비치는 귀갓길을 둘이서 손을 잡고 걷는다.


「응. 모처럼 "뭐든지" 들어준다고 했는데」


나로서는 꽤나 욕심을 부린 거였는데.


키타쨩이 생각하기엔 그렇지 않았나보다.


그러고 보니 내가 『키스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키타쨩이 뭔가 이상한 말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한 걸까......


「키, 키타쨩의 "뭐든지"는 어디까지 OK였나요......?」


「음......」


내 물음에 조금 생각하는 몸짓을 한다.

그리고 나서 나를 보고 눈을 작게 뜨며 말한다.


「비밀」


장난스런 미소로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는 키타쨩.


아무래도 나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쳐버린 모양이었다.










보키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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