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속밴드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음반인 '청춘컴플렉스', '결속밴드'와는 별개의 재생목록으로 구분된 9개의 노래가 있다.
해당 곡들은 '청춘 컴플렉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캐릭터 하나의 개별 일러스트를 표지로 삼고 있는데,
'디스토션!'과 '카라카라', '뭐가 나빠', '기타와 고독과 푸른 별'은 각각 캐릭터 테마송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이니 개별 표지의 의미를 유추하는게 어렵지 않다.
'구르는 돌, 너에게 아침이 내린다' 역시 애니메이션의 대미를 장식한 봇치의 커버곡이니 특별취급을 받는게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제외하고 나면 세 곡, '별자리가 될 수 있다면'과 '그 밴드', '잊어주지 않을 거야'가 남게 된다.
키타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별자리가 될 수 있다면'이 봇치와 키타가 서로에게 가지는 열등감과 동경을 노래한 곡임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그냥 수록곡에 캐릭터 개별 일러스트를 하나씩 배당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료가 표지를 장식한 '그 밴드'와 니지카가 표지를 장식한 '잊어주지 않을 거야'도 비슷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해당 곡이 봇치와 표지를 장식한 캐릭터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낭만이 있으리라
료와 봇치, '그 밴드'
료와 봇치를 한데 엮을 키워드로 알맞은 것은 '개성', 그리고 '고독'이다.
대중성을 가르는 척도는 간단하다. 더 많이 팔리고 통장에 더 큰 숫자가 찍히면, 더 대중적인 노래다.
하지만 개성을 가르는 척도는 없다. 때문에 개성을 중시하는 창작자는 항상 자기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내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때문에 개성적인 창작자는 언제나 고독하다.
그 밴드의 노래가 나에게는
날카롭게 울리는 웃음소리로 들려
그 밴드의 노래가 나에게는
귀청을 찢는 건널목 소리 같아
'그 밴드'의 도입부에서, 어떤 밴드의 노래가 화자에게 비웃음이자 경보음이 되어 화자를 괴롭힌다.
화자를 괴롭히는 '그 밴드의 노래'는 아마 대중성을 위해 개성을 지워버린 몰개성한 밴드의 노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확대하자면 료가 원래 속해있던, 개성을 버리고 성공한 밴드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 밴드의 노래는 건널목의 경보음이고, 열차는 이미 그곳으로 달려오고 있다.
대중적인 노래가 계속해서 화자를 압박한다, '너 계속 혼자 그쪽으로 가면 큰일난다'라고
자신이 싫어하는 길을 가는 밴드의 노래가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성을 중시하는 창작자는 '사실은 내가 틀린게 아닐까?'라는 고뇌를 멈출 수 없다.
눈을 감아 어둠 속에서 비치는 후광
귀를 막아 확실하게 새기는 고동 소리
가슴 속 내 몸을 흔드는 심장
다른 건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내가 내는 소리 말곤
고뇌하던 화자가 선택한 방법은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화자는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소리에 집중하고자 한다.
간단히 내 마음을 만지지 마
출발의 종소리가 울려
승객은 나 한 명뿐
손뼉을 쳐 나만의 소리
발버둥 쳐 발자국을 남길 때까지
눈을 떠 고독의 칭호
받아들여 고고한 충동
료에게는 니지카라는 이해자가 있다.
니지카는 개성적인 료를 받아들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마주볼 수는 있어도 옆에 서서 같은 경치를 바라보기는 힘들다.
료에게 있어 니지카가 고독을 잊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봇치는 같은 눈높이에서 고독에 공감해주는 사람이다.
료의 개성과 봇치의 개성은 떼어놓고 비교해보면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개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독감' 그 자체는 오직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다.
봇치의 가사를 본 료의 '마이너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확 꽂힐 것'이라는 평가는 '사실은 내 개성은 틀려먹은게 아닐까?'라고 고민하고 있는 봇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고, 동시에 료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리라.
니지카와 봇치, '잊어주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니지카와 봇치, 두 사람을 엮을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목표(꿈)'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조급함', 그리고 '답답함'일 것이다.
목표가 있는데 목표까지 얼마나 다가갔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은 분명 답답할테니 말이다.
이는 첫 라이브 에피소드의 주제이기도 했다.
'잊어주지 않을 거야'의 화자는 덜컹거리는 만원 전차에 타고 있다.
만원 전차는 좁고, 답답하고, 느리다.
그런 와중에 맞은편으로는 준급열차가 쌩하고 지나간다.
먼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화자는 조급함을 느낀다.
항상 명랑하고 즐거운 모습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니지카는 사실 작중에서 가장 조급한 입장에 있는 캐릭터이다.
니지카에게는 밴드로 성공한다는 원대한 꿈이 있으며, 여기에는 언니인 세이카의 꿈과 죽은 엄마의 유지까지 담겨 있다.
때문에 니지카는 빨리 성공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다.
얼른 데뷔하고 싶은 생각에 합주 한 번 해본 적 없는 기타를 영입했다가 탈주하게 만들고,
그 자리를 땜빵하려고 공원에서 수상쩍은 기타리스트를 주워오고,
지금쯤 미니앨범을 낼 계획이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결속밴드가 유명해졌다는 생각에 들떠서 대충 구성한 공연제의를 덥썩 받아들이기도 한다.
좁은 교실 진공 상태
소년들은 청춘 전개
자르는 선으로 갈라진 나의 세계
싫어하는 나의 열등감과
남들과 다른 우월감과
서로 다그치는 절묘한 감정
대체 뭘 하는 거야
「알아 알아、같은 마음이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주춤거리는 내 마음도 모르고
누군가가 시작하는 오늘이
나에게는 끝의 오늘이야
반복되는 제자리걸음에 미래로부터의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져 「나아가라」고
진학고라는 환경도 니지카의 답답함에 일조한다.
다들 대학을 목표로 빡세게 공부하는 학교에서 밴드로 성공하겠다는 학생은 괴짜일 뿐이니 말이다.
의지할 선생님도, 참고할 롤모델도 없다.
니지카의 원만한 성격에 이끌린 친구들이 "맞아~ 나도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해~"라고 말해줘도, 니지카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성에 차지 않는다.
니지카의 세계는 같은 학교 친구들의 세계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뻘짓으로 시간을 날려먹고 있는거 아닐까?'라는 열등감도, '나는 너희랑 다르게 번듯한 꿈이 있거든~'이라는 우월감도 답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빨리 성공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국어 문제 지문과 같은 가사도 학업과 밴드활동 사이에서의 고민을 보여준다.
봇치 역시 막연하긴 하지만 목표가 있는 캐릭터다.
'인도어 취미로 치야호야 받고 싶다'로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기타로 먹고 살 수 있게 되기, 혹은 그 이전에 더 빨리 성공해서 학교 때려치기.
사실 애니메이션 8화 도중까지 가장 조급한건 니지카가 아니라 봇치다.
봇치에게는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타임리미트가 걸려 있고, 기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히로이엔딩이라는 명백한 게임오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8화 이후로 봇치는 더이상 조급하지 않다.
니지카와 공유하는 결속밴드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조언을 해주는 어른들의 존재다.
선배 밴드맨인 히로이는 봇치에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즐기라고, PA상은 성공만 생각하면 괴로워진다고, 세이카는 꿈을 이뤄가는 단계 단계를 즐기라고 조언해준다.
푸른 봄 같은 건
나와는 어울리지 않아
그래도 알고 있으니까 단 한 번뿐인 순간은
덧없음을 내포하고 있어
평소와 같은 종소리도 창가에 쌓인 먼지도
교실의 냄새도
절대 잊어 주지 않을 거야
언젠가 죽을 때까지 몇 번이든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며 웃어주는 거야
학교를 때려칠 생각만 하고 있는 봇치가 교실의 냄새, 학교 종소리와 같은 학교의 풍경을 추억으로 삼겠다는 가사를 쓴 것도 의미심장하다.
결속밴드를 만난 봇치에게 학교는 더이상 서둘러 도망치고 싶은 공간이 아니다.
여전히 괴롭기는 하지만, 나중에 밴드 멤버들과 함께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더 조급해하지 않는 봇치는 여전히 조급해하는 니지카에게 전한다.
"앗, 그림으로 그린듯한 청춘은 아니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우리의 추억으로 삼아요.(라고 점장님이 그랬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