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거기에 네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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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셔......」
햇빛 때문에 억지로 깨어나는 아침은 솔직히 별로다.
온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가 세트라면 더더욱.
하지만 태양이 내 개인적인 사정 따위를 들어줄 리 없었고,
눈꺼풀로 쏟아지는 빛줄기에 무심코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되지만.
한편 추위는 다른 문제였다.
원래라면 문명의 이기인 히터에 의해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어야 할 방이었지만, 어느샌가 난방이 꺼진 것 같았다.
이불 밖은 설국을 연상케 할 정도로 추웠다.
도대체 누가 내 숙면을 방해하는 건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자,
커튼을 젖힌 사람이 니지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방을 끈 것도 틀림없이 니지카이리라.
곧바로 옆자리 시트에 손을 뻗었지만 따뜻한 온기는 떠나간지
오래였고, 바닥과 다름없는 차가운 감촉만이 나에게 전해졌다.
아무래도 한참 전에 일어난 것 같았다.
「니지카...... 눈부셔......」
「이제야 깼네. 아, 새해 복 많이 받아!」
「응, 너도 많이 받아. 그럼......」
「어딜 또 자려고! 일어나!」
벗겨지려 하는 이불을 필사적으로 사수하려 했지만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드러머의 근육을 이길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차디찬 공기가 몸을 감싼다. 춥다.
「니지카 변태」
「또 아무말 한다...... 떡국 식으니까 얼른 일어나」
「그렇다고 난방을 끌 것까진 없잖아」
「전기세 낭비야」
「나는 전기세에 진 것인가......」
훌쩍훌쩍, 하고 우는 척을 해봤지만
니지카에게 통할 리 없었다.
이쪽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신경쓰는 낌새도 보이지 않은 채 이불을 갤 뿐이었다.
요즘 니지카가 쌀쌀맞네......
그런 시무룩한 마음이 느껴졌는지,
아니면 단순히 끌어내고 싶었던 건지
내 손 위에 나보다 따뜻한 손이 포개어진다.
이건,
「일어나라니까!」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꽉 잡힌 손이 당겨지고 침대 밖으로 나오자
잠이 덜 깬 다리가 와들와들 춤을 췄다.
뭐랄까, 새해 첫날부터 험난한 하루가 시작될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거실로 끌려나오자 탁자에는 따끈따끈
김이 피어오르는 떡국이 세 그릇.
그리고 먼저 온 손님이 한명.
이 건물 지하 STARRY의 주인이 거기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님은 나지만.
「오, 일어났냐」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복 많이 받아. 얼른 앉아 식겠다」
너 때문에 기다렸다는 눈빛에 못이겨
순순히 명령에 따랐다.
뭐, 배도 고프고, 따뜻한 걸 먹고 싶기도 하니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지만.
어느샌가 지정석이 되어버린 내 자리에 걸터앉자,
바로 옆에서 니지카가 손을 모으고 탁자를 빙 둘러보았다.
「그럼, 먹을까?」
「「「잘먹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처음부터 떡을 먹는 게 얼마나 초심자스러운
행동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우선은 국물로 입안을 적신......다는 귀찮은 행동은 집어 치우고
떡을 힘껏 베어문다.
괜찮아, 니지카의 요리는 맛있으니까.
여하튼 떡국에서 가장 중요한 떡에 대해서 한마디 해보자면,
겉은 바삭하게 구워져 있고 속은 쫀득해서 쭉쭉 늘어나는 것이
보는 맛도 놓치지 않은 수작이었다.
응, 완벽해. 역시 니지카야.
게다가 식감이 살아있는 떡으로 미루어 보아
방금 막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성된 타이밍에 깨워준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살짝 몽글몽글해진다.
하지만 점장님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난 떡 삶은 게 좋은데」
「3인분을 삶으면 냄비에서 들러 붙으니까 안돼」
「야마다 때문이잖아......」
뭔가 도끼눈으로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기분탓이겠지.
분명 기분탓일 거야. 응.
왜냐면 난 구운 떡이 좋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했고,
저번에 3인분을 삶은 적도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을 피하면서 떡국을 먹고 있자
점장님은 추궁을 포기하고 화제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오늘 어디 나가?」
듣고 보니 신경이 쓰였다.
정초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사양이었다.
장보러 간다는 말을 꺼낸다면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사라질 준비를 해야했다.
모처럼의 휴일이니까, 라고 생각한 순간 니지카가 입을 열었다.
「으음~ 오늘은 딱히 갈 곳 없어.
마트도 오늘 안하는 데 많고. 내일 부터는 바빠지겠지만」
「흐응. 그렇군」
「응응. 그래서 오늘은 새해 첫 참배만 하면 끝이야」
아무래도 기우인 것 같았다.
그럼 내일 돌아가도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하며
떡국을 마저 먹는다. 맛있다.
오세치 요리도 있었으면 최고였겠지만, 니지카는 오세치를
점심에 만드는 편이라 아침엔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면 맛볼 수 있을 테니 상관없나 하고 홀로 납득하는 사이
떡국은 전부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훌륭한 맛이었다.
「잘먹었습니다」
「벌써!? 체한다?」
「그렇게 급하게 먹진 않았는데. 점장님도 다 먹었잖아」
그렇게 말하며 점장님 쪽을 쳐다보니
마찬가지로 그릇을 다 비운 상태였다.
니지카의 떡국이 얼마나 맛있었으면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맞아. 너가 느린 거야」
「에~? 그렁가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떡을 우물거리는 니지카.
부풀어오른 뺨이 햄스터 같아서 귀엽다.
절대로 말 안할 거지만.
「참배는 몇시에 갈 거야?」
「응? 언제가든 상관 없는데...... 둘은 뭔가 스케줄 있어?」
「아니? 딱히」
「나도 없어」
「그럼 집에 좀 가라......」
왜 여기 있는 거야, 라는 듯한 표정.
이런 걸 '새삼스럽다' 라고 하는 거 아닐까.
점장님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더는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그럼 설거지하고 사람 붐비기 전에 잽싸게 다녀오자」
「이의 없음」
「뭔가 휩쓸린 기분인데......」
그렇게 우리는 니지카가 떡국을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린 뒤
새해 첫 참배를 가게 되었다.
세간에서는 올해가 무슨 해라느니, 올해의 포부는 뭐라느니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새해가 밝았다고 무언가가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 법.
그것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현관을 벗어나자
어제와 똑같은 추위가 온몸을 덮친다.
「윽, 추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드는 맹추위.
벌써부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정말로 니네 집에 가라고 할 것 같아서
직접 말하지는 않을 거지만.
「우와 진짜 춥다! 날씨는 이렇게나 맑은데......」
추운 건 니지카도 마찬가지인듯,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는다.
그런 우리들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한명.
「그 정도냐?」
호들갑스럽긴, 하고 말을 잇는 점장님.
다만 잠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었다.
평소랑은 완전히 다르잖아.
뭐가 다르냐고? 그건......
「그야 그렇게 껴입으면 따뜻하겠지!」
「에? 다들 이정도는 입던데」
그렇다. 점장님은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옷을 얼마나 껴입었는지 평소보다 몸집이 한층 더 커보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부분에도 신경이 쓰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복슬복슬한 장갑과 복슬복슬한 코트로 몸을 감싸고,
목에는 복슬복슬한 머플러를 몇 겹이나 두른 모습.
빈틈없이 냉기를 차단하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추우니까.
다만 뭐랄까...... 지나치게 귀엽다고나 할까.
「그런 걸 입기엔 이제 무리라고 생가야야야야야......!」
「누가 늙은이야 누가!」
점장님이 주먹으로 내 관자놀이를 빙글빙글 돌린다.
「아직 말 안했어요! 안했다구요!」
적어도 말이 다 끝나고 나서 공격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먹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다.
아니 정말로 아프니까 슬슬 그마야야야야야.......
「둘 다 바보짓 그만하고 얼른 와~」
유일하게 믿을 구석인 니지카는
그런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한숨을 푹 쉬고 타박타박 걸어가버린다.
박정한 녀석.
10분 정도 걸어가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택가에 위치한,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근처의 신사.
평소엔 시모키타자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척이
드문 이곳도, 설날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시모키타자와 역 앞 거리로 착각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참배를 하기위해 바글바글 모여들었으니까.
「점심도 안지났는데 사람 엄청 많네~」
「좋아, 집에 가자」
「왜 그렇게 되는데」
목덜미를 꽉 붙잡혀 도주를 저지당했다.
참나, 내가 고양이도 아니고.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한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텐데.
좀 더 한산할 때 와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잠깐 줄서서 참배하고 가면 되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니지카는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느끼는
불쾌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료, 새전 준비했어?」
「준비했지. 봐」
나는 지갑에서 5엔짜리 동전을 꺼내 보여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새전을 깜빡할 정도로 궁하진 않았다.
「아무리 료라도 그 정도는 있구나......」
왠지 실례되는 말을 들은 것 같았지만
평소의 행실도 있었기에 굳이 걸고 넘어지진 않았다.
솔직히 5엔 짜리는 쓸 곳이 없어서 남아있었을 뿐이지만.
그런 식으로 평소와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
어느새 배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무슨 소원 빌 거야?」
「아...... 하나도 생각 안해놨네......」
「나도」
「뭐하러 온 거야......」
꼭 뭔가를 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말하면 분위기가 깨지겠지.
하지만 빌고 싶은 소원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신에게 기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굳이 떠올려 보자면......
「음...... 돈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너무 속물적이야......」
돈은 누구나 원하지 않나?
뭐, 신한테 빌만한 소원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정말로 없었다.
사람들은 대체 무슨 소원을 비는 걸까.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자 나와 함께 아무것도
생각해오지 않았던 점장님이 옳거니 하고 입을 열었다.
「돈 하니까 생각났는데, 난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빌어야겠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으니까, 라고 덧붙이는 점장님.
확실히 점장님 입장에서는 꽤나 절실한 문제였다.
다른 스튜디오에 비하면 견실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된다는 법은 없었다.
그 점은 밴드맨이나 스튜디오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나도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빌어야지.
STARRY가 없어지면 곤란하니까」
「오, 왠일로 기특한 소리를 다하냐」
「저렴한 스튜디오와 꿀알바가 없어지는 건 생각하기도 싫거든요」
「좋아, 올해부터 대여료 인상이다」
「그럴 수가」
사실을 말한 것 뿐인데.
뭐어, 농담이겠지만.
......농담 맞지?
진짜면 정말 곤란했다.
안그래도 겨울엔 풀도 안자라는데.
「자, 이제 우리 차례야」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 앞쪽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어
우리 차례가 와있었다.
어떡하지. 그냥 돈이나 달라고 할까.
「어디보자......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땡그랑, 하고 새전을 던져넣는 나와 니지카 옆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점장님.
참배하는 법을 모르는 눈치였다.
「새전을 넣고 종을 울린 다음
인사 두번, 박수 두번, 인사 한번이야」
「아아 맞다맞다. 용케 기억하고 있었네」
이건 상식 아닌가 싶었지만,
점장님이라서 별로 놀랍지 않았다.
예전엔 밴드 말고 아무것도 안했을 테니까.
니지카의 머리를 조금 나눠받으면 좋을텐데.
소원을 그걸로 바꿀지 진심으로 고민되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인사 두번.
자, 그럼 진지하게 소원을 생각해볼까.
하지만 자신을 위해 무언가 빌 생각은 안드는데......
그건 그렇고 니지카는 무슨 소원을 빌까.
라고 생각하며 박수 두번.
드디어 소원을 빌 차례였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건 없었다.
건강을 비는 게 제일 무난하려나.
건강하면 어떻게든 될테니까.
밴드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결국 재미없는 소원이 되고 말았지만,
새해 첫 참배라는 게 다 이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배전을 뒤로 했다.
「이 다음엔 뭐할래?」
그렇게 묻는 점장님은 여전히 복슬복슬한 장갑을 끼고서
감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참배를 마친 사람한테는 신사에서 감주를 준다길래,
감사한 마음으로 얻어 마시고 있던 참이었다.
「운세도 뽑고 부적도 사야지」
「그럼 스튜디오에 붙일 부적도 사둬야겠다」
점장님의 말을 듣고, 부적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뭐, 눈에 띄는 곳에 붙일만한 물건도 아니긴 하지만.
「료는 어떻게 할래?」
살 거 있어? 라는 눈으로 묻는 니지카.
특별히 관심 가는 건 없었다.
운세를 뽑아볼까 싶어도, 종이쪼가리 하나에 100엔이나
한다는 걸 생각하니 손이 가질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그런 돈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돈 내주면 운세 뽑을게」
「너 그러다 진짜 벌받는다......」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따가웠지만
없는 건 없는 거라 어쩔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라이브를 대비해 알바 시간을 줄여서
수입이 적었으니까.
심지어 선물값으로도 돈이 빠져나갔다.
아아 신이시여, 가난뱅이 밴드맨을 도와주소서.
그렇게 좋을대로 신을 불러내던 때였다.
쿵, 하고 등에 무언가가 부딪치는 감촉.
다음 순간 등이 따뜻한 무언가로 뒤덮혔다.
뒤를 돌아보니 대학생정도 되는 여자분이 한명.
우리와 똑같은 종이컵을 들고 있었지만
손은 누룩으로 끈적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부딪힘과 동시에 감주를 뒤집어 쓴 것 같았다.
「앗,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료 괜찮아!?」
나보다 더 당황하는 두사람을 보고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사실 금방 떠온 감주였으면 화상을 입었겠지만
비교적 미지근해서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피해를 입은 부분이라면 옷에 감주가 묻은 것 정도.
「괜찮아요」
한차례 확인을 한 뒤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지만
여자분은 적잖이 놀랐는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요!? 죄송해요! 이거 얼마 안되지만 세탁비로 써주세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뭘 감사히 받아! 이정도는 세탁기 돌리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내민 손을 찰싹하고 때리는 니지카.
모처럼의 임시 수입 찬스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도 어떻게든 건네주려 하는 여자분과, 왜인지 계속
거절하는 니지카의 이상한 대결구도가 이어졌으나, 결국엔
여자분이 패배한 듯 꾸벅꾸벅 사과를 하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정말이지, 돈을 그렇게 쉽게 받으면 어떡해!」
「나 피해잔데......」
「별일 아니잖아! 화상만 안입었으면 된 거야」
별로 납득은 안갔지만, 강하게 반박 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세탁소에 맡길 정도는 아니었으니
거절하는 것이 정답이었겠지.
그와는 별개로 1000엔 짜리는 갖고 싶었지만.
「계속 그러고 있으면 감기걸릴 테니까, 오늘은 이만 집에 가자」
확실히 이 상태로 있다간 감기에 걸릴 것이 뻔했다.
게다가 감주의 달콤한 향기가 계속 풍기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자꾸 힐끔힐끔 쳐다봐서 기분이 나빴다.
「난 료 데리고 집에 갈 건데, 언니는 어떻게 할래?」
내가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니지카가 뭔가를 보고 있는 점장님에게 물었다.
점장님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곳엔
액년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됐던가.
「으음~ 보니까 올해 내가 액년이라네......
모처럼이니 불제받고 갈게. 너넨 먼저 가있어」
「아, 언니도 이제 33살이지 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은근 상처받으니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가라고 손짓을 하는 점장님.
우리는 쫓겨나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옷은 세탁기에 던져졌고
현재는 건조기에 있었다.
그동안 나는 상비되어있는 실내복을 입고 있었다.
「이제 곧 건조 끝나니까, 다 되면 집에 가」
평소처럼 니지카의 침대에 널브러져 있자,
방으로 돌아온 니지카가 반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에, 아직 점심도 안먹었는데」
「우리집 살림 다 거덜낼 셈이야!? 적당히 하고 집에 가!」
모처럼 오세치 요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직전에 쫓아내다니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을까.
「그보다 머리 안말렸잖아! 하여튼......」
잔소리를 중얼거리며 익숙한 손길로 드라이어를 꺼내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하는 니지카.
어차피 말려줄 걸 아니까 스스로 말릴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이 시간을 꽤 좋아했다.
절대로 말 안할 거지만.
「진짜...... 부모님한테는 잘해드려」
「어?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아, 움직이지마!」
아무리 니지카의 목소리가 크다고 해도
드라이어의 굉음이 막아서면 알아듣기 힘들었다.
뭐라고 했는지 재차 물음을 던졌지만
딱히 아무말도 안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건조가 다 끝나 따끈따끈한 옷을 받아 보니
등 부분이 깔끔하게 원상태로 돌아와있었다.
역시 대단한 얼룩은 아니었구나.
하지만, 원상태가 아닌 부분도 있었다.
세탁을 하면 그 집만의 향기가 베기 마련이니까.
코에는 익숙하지만 우리집과는 다른 향기.
니지카네 집에서 가끔 이렇게 세탁을 해줄 때면
매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향기에는 진작에 익숙해졌는데 희한할 따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자
나를 위아래로 쭈욱 훑어보던 니지카가 말했다.
「옷은 괜찮아?」
「응, 문제 없어」
「그럼 얼른 집에 가!」
내 등을 팡팡 두드리며 순식간에 현관까지 끌고 가는 니지카.
조금이라도 더 있게 해주려는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 탓에 무심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어디 덧나냐」
「안ー돼. 설날 정도는 가족끼리 보내도록 해」
「에...... 나 원래 집에 잘 안있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집에 가야지! 자 빨리 가!」
잔소리와 함께 등을 꾹꾹 미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그럼, 다음 연습 때 보자」
그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니
살짝 쓸쓸한 표정의 니지카가 있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인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얼굴을 보자
억지 부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알았어...... 갈게」
「그래. 잘가」
손을 흔드는 니지카를 가볍게 돌아보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거북했다.
딱히 집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나에게서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이미 익숙해졌지만,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연초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그렇게 고개를 붕붕 저으며 생각을 떨쳐내려 했을 때였다.
――따끔.
목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
가시같은 무언가가 박히는 느낌.
아아, 그러고 보니 이런 경우도 있었지.
평소와는 다른 향기가 나는 윗도리는
평소보다 살짝 더 뻣뻣해져 있었다.
니지카네 집에서 세탁을 한 옷은 대체로 이렇게 되었다.
분명 세제나 섬유유연제가 달라서 그런 것이리라.
내 옷과는 상성이 안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후후」
그런 식으로 생각해버리는 나 자신이 웃겨서
무심결에 히죽거리고 말았다.
마침 스쳐 지나가던 남자가 수상한 시선을 보내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작은 부분에서 네가 느껴졌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려나?
완전 깬다는 표정을 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괜찮았다.
절대로 말 안할 거니까.
혼자서만 가끔씩 떠올릴 거니까.
따끔거리는 목덜미를 감싸쥐며, 나는 가만히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