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제비, 학대) 다큐멘터리, 봇제비를 파헤치다
어둠이 내려앉은 야심한 밤,
인적 없는 깊고 고요한 숲에서 녀석이 깨어난다.
등쪽을 완전히 덮은 분홍색 털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귀와 멍청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이 녀석.
종 분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판단이 안서서 일단 비슷하게 생긴 족제비를 따왔다는… 그 녀석의 이름은 봇제비다.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노코나 승욕몬, 응냨이 등과 같이 정식으로 관리되는 생물은 아니라고 키타박사(봇갤지방환경청 봇치생물과)는 말한다.
키타박사가 보여주는 봇치생물학사전에는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봇치생물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으며, 이곳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생물들은 유전자 조작을 가해 이종을 강제 교배시켰거나 불법으로 들여온 생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최신판으로 개정된 사전을 넘겨받아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보아도 봇제비라는 생물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키타박사도 “연구 시도는 해봤지만 외래종이기도 한데다, 관찰하거나 연구소로 옮기려고만 하면 자취를 감추거나 도중에 폐사해서 실질적으로 연구를 할 수가 없었다”는 답을 했다.
결국 사체를 부검하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의 생활습성을 이해할 수는 있었으나 그럼에도 정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개제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직접 관찰을 해보기로 하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눈을 뜬 녀석은 바로 무작정 밑으로 내려간다.
아무래도 먹잇감을 발견했거나 찾기 좋은 곳을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녀석이 내려간 곳은 산 아랫마을의 쓰레기장이었다.
봉투 찢는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소리,
가끔 캔이 부딪히며 땡그랑하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은 쓰레기를 파헤쳐 먹을것을 찾고 있었다.
분명 산속에도 녀석이 먹을만한 것은 많다.
버섯, 산나물, 야생과일, 돌아다니는 작은 생물들.
그런데 굳이 산을 내려와 쓰레기장을 뒤진다는건 녀석이 원하는 먹잇감이 없다는 의미일까?
한참 발톱으로 봉투들을 찢고 파헤친 녀석은 버려진 닭뼈를 허겁지겁 들고는 남아있지도 않은 살코기를 훑었다.
치킨박스에 남은 튀김 조각을 누가 훔쳐갈세라 허겁지겁 삼키기도 하고, 참치캔을 핥다가 뚜껑 절단면에 혀가 베이기까지 했다.
보통은 떠돌이 개나 고양이가 할만한 짓을 봇제비는 하고 있었다.
당연히 동네 주민들도 가만히 두고보지는 않았다.
“허구헌날 내려와서 동네 쓰레기장마다 죄다 이 난리를 내놓는다고! 그래서 나타나기만 하면 잡아다가 패기도 하고 쓰레기나 먹이에 타이레놀이나 농약 타서 놔두기도 하고, 죽은 녀석 있으면 일부러 놔두고 그래”
“경찰이나 주민센터, 당국에 신고만 몇번을 했는데… 그 양반들도 못한대, 너무 많기도 하고 보호단체가 왜 잡아 죽이냐고 발악을 한대. 우리는 뭐 어떡하라는거야 피해만 쭉 보라고?”
“심지어 가끔 먹을거 없으면 밭도 파헤쳐, 그간 감자하고 마늘하고… 진짜 보기만 해도 죽여버리고 싶다니까?”
실제로 마을 곳곳에는 쓰레기가 흩어진 흔적과 봇제비들이 파놓은 밭의 흔적, 그리고… 시체들도 있었다.
한때는 유해조수였던 응냨이를 먹이로 내던지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지정된데다 개체수도 멸종수준으로 급감해서 봇제비들이 쓰레기나 밭을 파헤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동족의 시체를 보면 적어도 내려오지 않을거라 생각했을 주민들이지만, 먹을 것이 없는 봇제비는 그마저도 뜯어먹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밤을 노리는게 아닐까.
버려진 도시락의 가라아게 조각을 끝으로 녀석의 식사는 막을 내린듯 했다.
굶주린 배는 겨우 채웠지만, 숨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긴 봇제비에게 음식물쓰레기 조금으로는 코에 붙이기도 힘든 양.
파헤쳐진 쓰레기봉투와 엉망이 된 현장을 두고 녀석은 다시 어딘가로 향한다.
이런 상황은 단지 시골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도시에 있는 쓰레기수거장도 상황은 비슷한데다, 고양이 먹이를 주기 위해 놔둔 음식물 때문에 고양이들과 봇제비가 싸우는 일도 매일같이 벌어진다.
고양이와 봇제비가 싸우면 늘 지는건 봇제비, 하지만 반대로 욕을 먹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것도 봇제비다.
봇제비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보호본능으로 눈을 감고 양 팔을 들어올리는 자세를 취하곤 한다.
그러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상대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거나 공격의사를 포기하도록 하려는 의사일 것이라 키타박사는 추정해본다.
하지만 현장을 바라보는 제3의 시각이나,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것은 오히려 도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를 위협하는 목적으로 그러한 자세를 취하는 생물들의 영향이다.
결국 사람들은 봇제비들이 양 팔을 드는 자세로 인해 상대를 도발해 더욱 큰 소란을 일으키게 되고, 그로 인해 생활에 방해를 받게 되기 때문에 봇제비에게 더 큰 폭력성을 보이게 된다는 것.
그리고 위기를 감지하면 재빠르게 도망치는 다른 종과 달리 그 자리에서 얼어붙기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히는 개체들이 많아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의 봇제비를 살펴보자.
봇제비는 몸을 웅크린 상태로 어딘가를 향해 굴러가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롤링 썬더”라고 부르는 자세로 아마 빠르게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산 아랫마을에서 주변에 있는 다른 마을로 건너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사람은 없고 밤도 아직 길다.
녀석은 쉼없이 빠른 속도로 굴러간다.
잠시 후, 녀석은 두 마을 사이를 지나는 철도를 건너려 한다.
밤이라 차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 녀석은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그대로 선로를 건넌다.
두개의 선로중 하나는 무사히 건넜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를 그대로 뛰어서 건너려는 순간,
멀리서부터 비친 강한 빛에 휩싸인 녀석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심야시간 작업차가 있다는 사실을 녀석은 모르기 때문이다.
봇제비는 강한 빛에 약하기 때문에 엄청난 밝기로 비치는 작업차의 불빛에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눈을 찡그리며 양팔을 드는 동작조차도 잘 되지 않는다.
작업차에서는 봇제비가 전혀 보이지 않는듯 했다.
뭔가 콰직하는 소리가 나지만 작업차에 있는 작업원들은 소음에 묻혀 전혀 듣지 못한다.
결국 먹이를 찾아 나선 봇제비의 마지막 여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