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2차 창작 대회] 술을 처음 마신 날의 히토리
2월 20일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내일이면 어른이 된다. 아직도 커뮤증은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결속 밴드의 모두가 있고 팬이 있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보니 봇치 쨩, 내일이면 어른이지? 언니랑 같이 술이나 한잔 마실까?'
'미친거냐. 또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려고.'
'제가 아무리 그래도 사회 초년생한테까지 그러겠어요? 선배 너무 차가워잉.'
'하하... 봇치 쨩, 저런 글러먹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적당히 마셔야 돼? 분위기 따라서 한두모금만 마셔도 괜찮으니까.'
'앗, 네.'
그래. 어른이 된다고 해서 무작정 풀어지면 안 되겠지. 분명 별 일 없을 것이다. 내가 키쿠리 언니도 아니고.
2월 21일
"크으으으 뻑예아 시모키타자와 아리가또오오"
"보, 봇치 쨩?!"
"히토리 쨩, 술잔은 던지는 게 아니야!"
"봇ㅋㅋㅋㅋ칰ㅋㅋㅋㅋ 너는 정말ㅋㅋㅋ 최고의 락스타닼ㅋㅋㅋ"
"웃지만 말고 너도 와서 말려!"
행복 스파이럴 최고오옷 이런 걸 모를ㄹㄹ고 살다니 인생 절반 손해봐써어엉서 흐하학 니지카 쨩이 둘 키타 쨩이 둘 노루마 걱정 안 해도 되ㅔㄳ스다 내일부터 알바 때려친다잇
"히토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새하얗게 빛나고 있어요!"
"아무나 물! 물이라도 가져와!!!"
2월 22일
저고토히토리는전날밤죽을죄를지었습니다니지카쨩의소중한후드티에(검열)하고키타쨩에게몹쓸짓을하여불쾌감을주었습니다또같이술을마시던키쿠리언니아니히로이씨와누가누가멀리술잔을던지는지경쟁하다가이자카야집에큰민폐를끼쳤습니다두번다시술에입을대지않겠습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
2월 23일
키쿠리 언니가 나와 썩 닮았다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술을 마시니 알 수 없는 힘이 용솟음치는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알바 내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니지카 쨩이 애써 자기는 괜찮다고 했지만 료 씨가 웃음을 참던 걸 보면 키쿠리 언니보다 더한 망나니짓을 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점장님은 꽤 기분이 좋아보이시던데,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2월 27일
키쿠리 언니가 스태리에 찾아왔다가 쫓겨났다. 니지카 쨩이 그렇게 무서운 눈을 하는 건 오랫만에 봤다.
"히토리 쨩, 다음에도 필름 끊길 때까지 술 마시면 모가지야♬"
"앗, 네."
싸늘하다. 분명 눈은 웃고 있었지만 어떤 귀신보다도 무서웠다. 역시 괜찮은게 아니었던건가 보다.
3월 2일
술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어른들끼리 식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지 않던가.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에서 못 마신다고 하면 분명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커뮤증인 나한테 술이 아니면 공통분모가 하나도 없단 말이야!
혹시라도, 혹시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난동피울 걸 대비해서 벽장 안에서 조금 마셔보기로 했다.
저번 술자리에서는 키쿠리 언니와 분위기를 타서 그랬다고 믿고 싶다.
3월 3일
"엄마~ 언니가 또 방에서 이상한 소리하고 있어~"
"또 시작인거니? 저 아이도 참."
쎄에에에엑쓰 커어어 이 맛이쥐 써터롱 제로 너무 ㄷㅏㄹ잖어
이게 록이고 뺀드지 여기가 시모키타자와고 스태리지 듣고잇씁니까 아뤼나ㅏㅏㅏ 어똬 내가 오늘은 고토 히어로다잇 내일 다 술 마시러 가나자와구로 ㅇ
3월 4일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소리에 깼다. 속이 거북하다.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고토!!!"
전화를 받자마자 니지카의 호통소리가 벽장 전체를 메운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붙잡고 웅크리려다 날아오른 핸드폰에 머리를 찧었다.
"죄, 죄송합니다. 호, 호, 혹시 저 어젯밤에 무, 물벼룩 같은 짓을 저지른 건가요?"
"───후, 정신이 들었나보네. 봇치 쨩, 어제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나는 거 있어?"
"아, 아뇨. 혼자서 술을 마셔보겠다고 술을 세 캔 정도 마신 이후로는 기억이..."
"역시 그런건가─ 봇치 쨩, 어젯밤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구? 평소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봇치 쨩이 당장 집으로 달려오라고 하고."
"에으윽."
"무대에서도 그래준다면 좋을텐데~ 아, 그렇다고 공연할 때 술을 마시라는 소리는 아니고."
"아으윽."
"뭐가 됐든 혹시라도 다른 애들한테 주정부렸으면 사과하고, 술은... 마시지 말라고는 안 할 테니 적당히 마시자?"
마지막에 뭔가 목소리가 낮아진 것 같다.
"앗, 네."
전화가 끊기는 알림음이 오늘따라 무섭게 들린다. 허둥지둥 니지카 쨩이 말한대로 통화기록을 뒤져보았다.
[어제]
[니지카 × 3] [키타 × 7]
"히이익."
3월 5일
"히토리, 아빠는 술을 마시고 공연하는 것도 로망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네?"
출근길부터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하셨다. 옆에 있던 후타리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언니 진짜 더럽게 성가시네..."
"...우욱."
속이 울렁거린다. 라이브 하우스에서 토하기 전에 숙취해소제를 마셔야겠다.
3월 6일
속이 한결 개운해졌다. 입에서 불쾌한 술냄새가 더 이상 나질 않는다.
"봇치, 예전으로 돌아와버렸어."
"뭘 아쉽다는 듯이 얘기하는 거야."
점장님이 주스를 입에 물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신다. 사람이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는데, 아무래도 키쿠리 언니랑 비슷한 수준으로 찍힌걸까.
"히토리 쨩, 이제 곧 개점 시간이니까 준비해야지? 쓰레기통에서 이제 그만 나오자~"
"우으... 그치만..."
"봇~치 쨩! 이번에는 집에서 혼자 마신거였잖아? 저번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그런 게 아니─또 혼자만의 세상에 빠지지 말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나는 소라게. 민달팽이. 다섯. 쓰레기통. 완숙 망고. 넷. 물탱크. 물벼룩. 하나. 츠치노코.
"좋은 저녁이야, 봇치."
3월 7일
세상이 무섭다.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섭다.
분명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을텐데. 어째서 이렇게도 무서운걸까.
"아세트알데히드... 에탄올..."
지금 내가 꿈 속에 있는걸까? 아니면 현실에서 중얼거리는걸까?
"히토리 쨩, 오늘 하루 종일 저 상태죠?"
"어제 분명히 알바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말이지~ 슬슬 졸업이 다가와서 그런가?"
"뭔가 아쉽네, 막상 졸업한다고 하니."
"웬일이야? 그렇게 학교 가기 싫어했으면서."
"학생이 아니게 되면 더 이상 할인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려..."
"에, 그쪽?"
차라리 꿈인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3월 8일
"앗."
"정신이 들었어, 봇치 쨩? 이번 봇치 타임은 역대급으로 길었네."
"앗, 네. 죄, 죄송합니다."
니지카가 평소처럼 해맑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거야?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빠진 적은 없었잖아."
"수, 술을 먹기만 하면 터져나오는 제 안의 악마가아아..."
"역시 그쪽이었구나."
"마셔서 문제가 된다면, 마시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당연한 얘기잖아요, 하지만 그런 말조차 멋있어!"
"키타 쨩, 꽤 한결같구나..."
정론이지만 맞는 말이었다. 술 없이 못 사는 인생도 아니고, 애초에 마시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사회에서도 어떻게 변명하면 마시지 않아도 되겠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3월 14일
"요즘 봇치 쨩, 한결 밝아진 것 같지 않아?"
"그렇죠? 졸업식 준비도 척척 하고 있다니까요?"
일상으로 돌아왔다, 커뮤증은 고치지 못했지만.
걱정거리가 사라지니 시간이 휙휙 흘러간다. 스태리에서의 라이브도 이제 익숙해졌고, 알바도 어느 정도 할만해졌다. 나, 이대로라면 인싸가 되는 것도 금방이지 않을까?
빨리 졸업해서 그럴싸한 밴드맨이 되어야지.
3월 27일
"아... 흐아..."
"이 이도 참, 칠칠지 못하게 울기만 하면 어떡해요?"
파란만장했던 고등학생 시절이 끝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중학생 때에 비하면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그나저나 히토리, 친구들이랑 오늘 졸업 기념으로 하룻밤 자고 온다 하지 않았니? 거기까지 가려면 지금부터 가야 하지 않겠니?"
"그, 그렇네. 그럼 먼저 가볼게요."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건 처음이라 기쁘다. 발걸음이 가볍다. 콧노래가 절로 새어나온다.
"...술 ...많이... 말고..."
뒤에 어머니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거리가 멀어 들리지 않았다.
3월 28일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저, 고토 히토리의 마지막 일기입니다.
결속 밴드의 모두가 - 저를 제외하고 술을 잔뜩 마셨습니다. 이자카야에서는 키쿠리 언니에게 술을 잔뜩 받은 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다들 첫 한두잔은 "괜찮아, 내가 히토리도 아니고~ 이 정도로 취하지 않을꺼야~" 하면서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
"으헤헤, 봇치 쨩~ 웨 또 어두운 고세 잉는 거야~ 나랑 같이 놀자? 친구잖아?"
"이, 이, 이지치 씨, 그런, 그런 건 친구들끼리 하는 게 아니───"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필적과 액체 자국이 잔뜩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