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제비) 봇제비의 홀로여행
어느 평범한 오후, 주인이 일하러 간 사이에 애완봇제비는 TV를 보며 왠지 모를 동경에 빠졌다.
정해진 목적지까지 스마트폰의 도움 없이 오로지 시내버스만 타고 이동하는, 요즘은 꽤 흔해진 챌린지였지만 녀석에게 보이는 풍경은 사뭇 남달랐다.
스마트폰은 사용금지, 숙소와 루트도 자기가 몸으로 부딪혀가며 알아봐야 하고, 고속도로를 타는 버스도 탈 수 없는데다 중간에 끊긴 구간은 걸어가야 한다.
사실상 규제투성이라 직접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지만 그 사이에서 도움을 주고 받는 사람들 간의 정, 맛있는 지역음식과 멋진 풍경까지.
봇제비는 로망에 차서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잠시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며칠 나갔다 올게”
삐뚤빼뚤 서툰 글씨로 글을 남기고, “시내버스 챌린지 중입니다,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문구를 만들어 등에 붙인 봇제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것 까진 좋았지만 녀석에겐 계획이 없었다.
어디를 가야 하지?
어떤 버스를 타야 갈 수 있지?
밥과 숙소는 어떻게 알아봐야 하지?
방송에 출연한 출연진들이야 어느정도 전국지리를 알거나 지도책 한두권 정도는 주기 때문에 주요 지명을 알고 그곳을 기반으로 계획을 짤 수 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집을 나선 애완봇제비에게 세상은 그저 미지의 세계.
일단은 마음의 고향인 제비숲으로 향하기로 하고, 일정은 “그래도 금방 도착할테니까 4일은 필요없어”라 자만하며 1박 2일 코스로 잡았다.
버스정류장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와중에 첫 버스가 왔다.
봇제비는 버스에 오르려 했지만 운전기사가 바로 막아세웠다.
“안돼, 봇제비는 혼자 버스에 탈 수 없어. 그리고 너 돈이나 교통카드는 있니?”
시작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봇제비는 반드시 주인이 동행하고, 케이스에 들어있는 상태에서만 대중교통 이용이 허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봇제비 개인명의로 된 재산이나 카드도 있을리 없었다.
애완동물이 자기재산을 가지고 있는게 현실적으로 말이 될 리가 없는데다, 혼자 다닐 수도 없는 녀석에게 교통카드를 줘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봇제비는 내리기 싫다며 드러누워 저항했지만 결국 쫒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등에 붙여놓았던 종이가 찢겨져 털이 뽑혔다.
아프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하긴 싫었다.
다음 버스가 오자 봇제비는 사각지대인 계단에 숨는 방법을 택했다.
어차피 금방 들킬 일이겠지만 그래도 최소 한 정류장 정도는 갈 수 있을거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버스는 겨우 탔지만 녀석은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제비숲이라는 곳도 막연한 목적지였다.
사실 제비숲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이미 진작에 재개발되어서 아파트와 신도시가 자리잡았고, 그곳에 있던 봇제비와 결속생물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대부분 멸종했었다.
그렇게 흩어진 봇제비들 중에서 애완용으로 교배되어 태어난게 지금의 녀석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주인에게 입양되었으니 제비숲에 대한 정보를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물론 그걸 들었다고 해도 지금은 흔적조차 안남은 곳을 찾아가는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로망에 가득찬 봇제비로서는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숭고한 여정일 것이다.
봇제비가 탄 버스는 잠시후 고속도로에 올랐다.
봇제비는 깜짝 놀랐다.
고속도로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규정위반으로 OUT이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여행을 실패 처리하거나, 고속도로를 타기 전의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고속도로에 올라탄 버스는 당연히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장거리를 오가는 광역급행버스였기 때문이다.
들킬까 무서워서 계단에 붙어있던 봇제비도 이제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 운전하는데 방해되잖아, 잠깐만… 이놈 주인 있어요? 왜 케이스에 안 넣은거야?!“
봇제비는 차를 세워주면 바로 내리겠다고 했지만, 운전기사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이 누구인지, 왜 봇제비를 케이스에 넣지 않은건지에 대해 화를 낼 뿐이었다.
버스가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100km/h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중이었기에 승객들은 ”우리도 모르는 녀석이니 제발 운전에나 신경써달라“고 항의했다.
일단은 다음 정류장까지 그대로 가면서 경찰에 인계하기로 상황은 정리되었지만, 경찰에게 인계되면 봇제비의 삶은 사실상 끝나는 상황이었다.
애완동물로서 필요한 요건인 케이스, 연락처 등을 모조리 집에 두고 왔으니 애완동물로서 보호를 못받게 된데다 주인과의 연락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는 계속 불평을 속으로 삭히는 중이었고, 승객들도 짜증이 나있는 상태라 봇제비는 차마 말을 걸 수 없었다.
결국 1시간 정도가 지나서 고속도로를 나온 버스.
진출로 인근에서 대기하던 경찰이 봇제비를 인계받았다.
”에휴, 어떤 개념없는 인간이 봇제비를 풀어놓고 키운건지…“
”자, 자… 화 푸시고, 일단 녀석은 저희가 데려갈테니 안심하세요“
”하아… 앞으로는 케이스에 들어있는 녀석도 받지 말아야겠어, 그럼 수고하세요“
녀석이 타고 온 광역버스가 떠나자 경찰들에게 붙들린 녀석이 말을 꺼낸다.
“시내버스만 타고 제비숲으로 가고 싶은데, 실수로 버스를 잘못 탔다. 다시 원래 장소로 데려가달라“
경찰은 그저 큰소리로 웃을 뿐이었다.
”아니, 혼자 버스타고 돌아다니는것도 불법인데 다시 ㅇㅇ으로 보내달라고? 그리고 요즘 세상에 제비숲이 어딨어? 이렇게 웃은것도 오랜만이네“
”애완동물도 아닌것 같은데 걍 센터 보내, 웃긴놈이네“
경찰들은 봇제비의 애원을 무시한채 그대로 구제센터로 보내 처리해버렸다.
그날 밤이 되어 돌아온 주인은 봇제비의 쪽지를 보며 ”그럼 뭐, 어련히 알아서 잘 다니겠지“라는 반응과 함께 잠이 들었다.
며칠, 몇달이 지나도 주인은 봇제비를 찾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다 끝나면 돌아오렴”이라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