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루프 념글 보고 팬픽 써봄

ㅇㅇ(49.142)
2023-01-09 06:52:19
조회 2003
추천 48



시모키타자와의 대천사. 세계적인 드러머. 슈퍼스타.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는 결속 밴드의 든든한 한 축. 이지치 니지카.


그 모든 명성이 무색하게도, 니지카는 실패했다.


단 한 명을 지켜내지 못한 까닭이다.


그 한 명의 이름은 고토 히토리. 잔혹한 운명은 니지카에게서 그녀를 앗아갔다. 저항할 새도 없이. 무력하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니지카에겐 한 가지 능력이 주어졌다.


히토리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루프 능력.


니지카는 그 능력을 처음 얻자마자 사용법을 자연스럽게 깨달았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시간을 되감았다.


그녀는 히토리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에.


*


정신을 차려보니 니지카는 공원에 있었다.


공원의 그네에는 기타를 맨 앳된 히토리가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리운 히토리의 모습에 포근한 마음과 친근함이 들었다.


상황을 파악하긴 쉬웠다. 우선 히토리를 데려오는 게 급선무겠지.


과거의 내가 어떻게 했었더라? 니지카는 잠시 떠올려보려 했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친해진 친구들이 으레 그렇듯, 첫 만남의 기억은 새벽안개처럼 아스라이 흐려지는 것이다.


그래도 꽤 인상 깊은 만남이었기에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니게타 기타. 그로 인해 서포트 기타가 필요한 상황.


히토리는 착하니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겠지? 니지카는 그네로 다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저기 히토리-”


.


니지카는 공포에 젖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히토리를 보며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친근하고 익숙한 히토리지만, 히토리에게 그녀는 완전한 남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추억은, 이제 한낱 망상밖에 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니지카는 도망치는 히토리의 등을 보며 손을 떨어뜨렸고.


다시 한번 시간을 되감았다.


*

봇치 쨩…… 이때는 증세가 훨씬 심했구나.’


니지카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히토리를 데려왔다.


히토리의 커뮤 장애는 그녀가 알고 있던 미래-이제는 과거가 된-의 히토리보다 훨씬 심했다. 과거와 미래가 겹쳐져 미화된 기억과 사뭇 다른 외견. 그 격차는 훗날의 모습이

전혀 연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히토리의 찬란한 미래를 보고 왔다. 무도관의 조명을 한 몸에 받던 그 뒷모습. 언제나 그녀보다 앞서 관객을 마주하던 히어로의 형상. 그렇기에 니지카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히토리의 성공은 예정된 것이고, 암울한 미래는 천천히 바꾸어나가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일이 그렇게 잘 풀리진 않았다. 히토리와 키타의 만남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이미 니지카로 인해 나비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한 현재에선 일어나지 않았다.


니지카는 이를 깨닫고 뒤늦게 키타를 직접 찾아나섰다. 그러나 그녀가 키타를 찾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린 이후였다. 키타는 이미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했고, 그 앞에서 니지카는 자신의 입장을 더 강요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음엔 더 잘해보자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시간을 되감았다.


*


그녀가 직접 발품을 판 결과, 어찌어찌 키타를 데려오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오랫동안 MC를 해오며 기른 말주변이 있다 해도, 히토리와 같은 힘은 없었고, 상황도 썩 좋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데리고 온 후도 문제였다. 히토리와 키타는 첫 만남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사이가 급격히 변했다. 둘 다 착해서 불화가 일지는 않았지만, 그 거리감이 좁아지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 과정에서 또 몇 번의 실패가 있었다.


그래도 이젠 어찌저찌 본궤도엔 올려놨으니 안심이다. 니지카는 생각하며 펜을 잠시 악보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하고 있는 건 작곡이었다. 본래는 료의 몫이었으나, 현재는 그녀가 하는 게 밴드의 성공에 있어 훨씬 낫다고 생각해 그녀도 참여하게 되었다.


작곡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미래의 료가 작곡하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고, 미래의 유행과 흐름을 알았으며, 성공할 곡들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곡이 어려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표절을 하진 않는다. 단지 미래의 유행과 수많은 음계를 발판 삼아 그녀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좋은 곡을 만들어낼 뿐. 그녀는 밴드를 위해서라면 이것이 최선이리라고 믿었다.


실제로 얼마간은 그게 효과가 좋았다. 그녀의 경험과 좋은 곡으로 인해 이르게 성공한 결속 밴드는 어느새 일본 록을 선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유명세를 떨쳤다.


그 스포트라이트는 특히 니지카에게 더 집중됐다. 결속 밴드가 지닌 음악성의 원천. 결속 밴드의 기둥. 세계 최고의 드러머. 이미 어지간한 원로들의 배에 가까운 경험을 지닌 니지카는, 이미 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길만한 존재였다.


니지카는 그녀가 원래의 세계에서보다 과하게 주목받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이 또한 있을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오히려 세계가 이렇게 변했으니, 히토리의 운명도 바뀔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붕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불만족스러워하던 료는 어느 순간 자신의 음악을 하겠다며 밴드를 떠났다.


니지카는 그녀를 잡아보려 했지만, 료의 의지는 이미 확고했다. 이미 다른 음악으로 유명해진 결속 밴드의 안에 있는 한, 자신의 음악을 펼칠 기회는 없으리라고. 그렇게 말하는 료의 말투엔 이미 굳은 결심이 있었기에, 니지카는 그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료가 떠나고 나니 당연히 밴드는 급속도로 붕괴했다. 새롭게 구한 베이스는 실력 면에선 료에게 뒤떨어지지 않았으나 절대 료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었고, 밴드는 파국에 직면했다.


니지카는 료를 마지막으로 만나, 서로 못다한 이야기를 매듭짓고.


다시 한번 시간을 되감았다.


*


그 이후로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절망했던 것 같다. 이미 인간의 수명을 한참 넘기며 살아왔고, 그 모든 시간동안 일념만 품고 살아왔기에. 노력과 고행을 쌓고 쌓다가, 한 번에 무너지고 새롭게 쌓아 올려야 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래서 그녀는 다른 수단을 찾았다. 결속 밴드로 안 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써서라도 히토리를 구해내는 것이다.


그녀에겐 그 정도 힘이 있었다. 수십 번의 루프, 수십 번 중첩된 미래의 경험 앞에 현재의 문제는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아득한 부와 절대적인 권력은 그녀의 눈길 한 번에 품에 와 안겼다. 온갖 인재도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그로 인해 거대한 나비효과가 벌어졌지만, 이미 그녀는 그 정도쯤은 대응할 수 있는 경험과 관록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을 세기보다 못하는 걸 꼽는 게 훨씬 빠를 지경이 되었지만.


결국. 결국.


다시 한번 시간을 되감았다.


*


눈에 지긋지긋하게 박힌 공원.


그네. 분홍빛 머리칼. 푸른 눈동자.


니지카는 오랫동안 보아온, 그녀가 지켜내고자 애써온 히토리의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질끈 감은 눈 속에선 그녀가 떠나보낸 수많은 인연이 명멸했다.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이젠 공유할 수 없게 된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없었다.


수많은 시간선에 걸쳐 받아온 그 어떤 찬양도 무의미했다. 영화로운 성세도, 압도적인 명성도 소용이 없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녀는 히토리를 지킬 수 없었고.


그 끝에 여기 다시 서게 되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욕심을 부리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히토리를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뒷부분도 있다는데 그거까지 쓰긴 힘들고


허접한 거 너그럽게 봐줘


나도 루프물 클리셰 좋아해서 재밌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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