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장문] 구르는 바위 가사 분석

ㅇㅇ(221.138)
2023-01-15 02:43:56
조회 605
추천 14

안녕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이랑 마찬가지로 애니 끝난지 2주나 지났다는데 안믿기고 아직도 여운이 남아서 매일 갤 눈팅만 하는 봇붕이야.


다른게 아니라 구르는 바위가 명곡이긴 한데 가사에 대해 명확하게 해설한 글은 없고 또 가사 자체가 뜬구름 잡는 느낌이란 느낌을 받는것 같아서 내 생각을 공유해 볼까 함. 당연히 내가 정답이란 얘기는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니까 틀릴수 있음.


일단 이 노래는 봇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원작자가 공인한 만큼 봇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건데 그러려면 먼저 봇치의 상태를 이해해야함. 


일단 봇치는 심각한 수준의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봐. 작중에서는 커뮤증이라는게 일종의 개그 소재로 사용되고 있지만 나도 우울증 때문에 꽤 오랜기간 약물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봇치가 하는 행동이 이해도 되고 봇치가 용기를 낼때마다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안쓰럽기도 했어. 그렇다고 불-편했다는건 아니고 나도 볼때는 낄낄거리면서 봤음.


각설하고 이제 가사를 좀 보자. 출처는 꺼무위키.



가능하다면 난 세상을 바꾸고 싶어

전쟁을 없앤다든지 그런 거창한 건 아냐

그치만 그것도 아주 없지는 않으려나


배우나 영화스타는 될 수 없어

그 뿐일까, 네 앞에서도 제대로 웃지 못해

이런 내게 답이 있을 리 없지


정말 봇치를 상징하는 첫소절이 아닐까. 대인기피증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볼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고 알려져있는데, 낮은 자기 신뢰에서 오는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건 그게 전쟁을 없애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자체로 큰 꿈이야. 하지만 현실의 나는 아주 미약하고 아무것도 못할것만 같은 존재지. 대인기피증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선 제대로 웃지도 못해.


여기서 제대로 웃지 못한다는 구절때문에 라디오헤드의 creep이나 10cm의 스토커처럼 상대가 연애 대상이라서라고 해석할수도 있는데, 난 개인적으로는 뒷부분 가사 때문에 친구나 지인 정도로 해석하고 있음. 이유는 후술



무얼 틀린 거지?

것조차도 알 수가 없어

Roling Roling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가슴이 아파


무얼 잃어버린 거지?
그것조차도 알 수가 없어
Roling Roling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가슴이 아파


우리는 분명 이 앞으로도

마음이 뒤엉켜서 Roling Roling

얼어붙은 지면을 구르듯이 달려갔어


후렴. 앞부분에서는 무엇을 틀린거지? 뒷부분에서는 무엇을 잃어버린거지?라고 함.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우울증은 허무증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을 정도로 허무하다 공허하다 막막하다 라는 감정을 많이 느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늘 생각하는데, 사실 잘못한건 아무것도 없어. 항상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내가 나를 계속 낮게 보기때문에 더 나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지. 당연히 잃어버린게 없으니까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 이렇게 내 마음을 잘 표현한 가사를 처음봤기 때문에 울컥했던 소절이었어.


그리고 뒷부분에 마음이 얽히는 "우리"는 앞에 나온 "너"와 "나"가 아니라 "나"와 함께 관계를 맺는 주변인이야. 앞으로 "나"는 계속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마음이 뒤엉키게 될 것이고, 차가운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을 받게 되겠지. 달려가는것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마치 굴러가는 것처럼 달려가. 아마 다른 사람들은 달려가는것도 멋있게 달려갈거야. 하지만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것이지. 



이유도 없는데 어쩐지 슬퍼

울지도 않자니 지나칠 정도로 위안이 안돼
그런 밤을 따뜻하게 하듯 노래하는 거야

바위는 굴러서 우리들을 어딘가로 데려다 주듯이
단단한 지면을 가르고 생명이 싹텄어

저 언덕을 지나친 그 너머는
빛이 반짝이는것처럼
너의 고독도 모두 드러내 주는 아침이야


2절의 시작. 여기서 화자가 한번 바뀌는데, 이 사람은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어. 아마 "나"의 주변인이거나 심플하게 노래를 부르는 본인인것 같은데, "나"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해하는 이유는 비슷한 사람을 봤기 때문이겠지.


왠지 모르겠는데 슬퍼. 뭔가 잘못한것 같고 잃어버린 것 같아. 그래서 너무나 슬프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아. 그게 내가 겪은 우울증이야.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런 나를 위해서 노래 해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거야. 끝까지 구르듯이 달려갔을때 얼어붙은 지면이 갈라지면서 생명이 싹트는 모습을 봤고, 결국 언덕을 넘었을때 아침이 오는 것을 봤거든. 그리고 "나" 역시 앞서 봤던 "구르는 바위"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제 4의 벽을 넘어서 이 노래를 듣는 구르는 바위같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고 말하는거야.



붉고 빠알간, 작은 자동차는 너를 태우고

멀리 건너편 모퉁이를 돌아서
여기서는 보이지 않게 됐어


이후 다시 화자가 "나"로 바뀐뒤 가사가 이어지는데 이게 내가 앞서 "너"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야. "너"는 "나"랑 달라. "너"는 "나"보다 낫다라고 생각하는 대상이고 어쩌면 동경하는 대상이겠지. 여기서 하필 빨간색이 언급돼서 동경의 대상으로 키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것 같은데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는, "너"가 "나"를 버리고 자동차로 멋지게 달려서 떠나가버렸기 때문이야. 봇키타 못버리지 ㅋㅋ


아무튼 나를 포함한 구르는 바위들의 목적지는 언덕 저 너머인데, 자동차를 타고 달려간 "너"의 목적지는 우리가 넘어서 아침을 맞아야 하는 언덕이 아니라 건너편 모퉁이야. 우리의 목적지는 추하더라도 구르는 것처럼 어떻게든 나아가는 것이고, 넘을 수 있다면 아침을 볼 수 있겠지. 그렇지 못하더라도 얼어버린 땅을 가르고 새로운 생명을 싹틔울 수 있을거야. 자동차는 멋지지만 자동차의 바퀴는 얼어붙은 지면을 가를만큼 단단하지 않고, 지나간 길에 새싹은 틔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 


더해서 자동차가 모퉁이로 돌았는건 직진해서 언덕을 넘지 않고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했다는 얘기인데, 아침을 볼 수 있는건 계속 굴러서 직진하고 언덕을 넘어간 존재들 이니까 결국 구르는 바위들만이 아침을 볼 수 있다는 뜻이 되는거지.


자동차를 타고 먼저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어. 너(구르는 바위)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면 아침이 올거야.  




마치며


적다보니 내가 겪은 우울증을 기반으로 분석했고 그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언급했기 때문에 흡사 봇치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느낌으로 읽힐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몇가지 첨언을 하려고 해.


우선 난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기 때문에 둘의 관계에 대해서 단언할 수 없지만, 자기 신뢰성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가사의 분석에 내가 겪은 경험을 적은 거야. 여기에는 아지캉이 우울증을 표현하고자 곡을 썼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어. 중간에 구르는 바위들을 위해 노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아지캉이 어떤 의도로 곡을 썼는지와 관계없이 원작자가 이 곡과 어울린다고 말한 봇치라는 캐릭터는 우울증보다는 대인기피증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우울증이 있더라도 약한 수준일거라고 생각해. 우울증이면 하루 6시간씩 기타 못치거든. 하물며 알바를 런 안하고 꼬박꼬박 나가는건 더욱더 힘들고. 아마 하마지 아키가 생각한 봇치의 구르는 바위는 청자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 결속밴드의 멤버로서 노래하는 봇치를 위한 노래이기 때문에 봇치에게 어울린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야.



각자의 감상을 모두 존중하니까 다른 생각이 있다면 적어줘도 좋아.


정말 들을때마다 명곡이고 많은 생각이 들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 써봤고 3줄 요약은 없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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