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SS,재업)카라카라 전편
ㅇㅇ
2026-07-05 22:29:42
조회 273
추천 8
내용이 긴편이므로 시간 없는 봇붕이는 뒤로가기
아래의 내용은 원작과는 무관합니다.
재미로 읽어 주세요.
저의 꿈은 기타를 치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습니다.
잠을 자다 눈을 떴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꿈을. 사람들의 환호성이 아직도 귀에 아른 거렸습니다. 귀를 어루어 만졌습니다. 예민해진 귀의 감각으로 과거를 더듬었습니다. 짙게 흩어지는 기타, 우렁차게 흔들리는 드럼. 진득하게 울리는 베이스. 밝게 빛나는 보컬. 눈을 감아도 들려왔습니다. 모두가 함께 만나 이뤄진 단 하나의 소중 한 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마음속에 한 죄책감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니에게 받은, 소중한 꿈을.
언니가 운영하는 스태리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무대 위에 드럼을 셋팅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특별 레슨을 받기 위해 언니의 밴드 멤버였던 리나 선배가 스태리를 방문을 해 저에게 드럼을 가르쳐 주는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벽 2시를 지나는 이 시간에도 드럼을 가르쳐 주기 위해 방문해주시는 리나 선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리나 선배에게 줄 선물로 음악 잡지를 준비해 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풀기 위해 잠시 드럼을 치고 있자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리나 선배인 것 같아 시선을 돌렸습니다. 푸른 단발의 여성이 무대 앞으로 다가오던 소리였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저를 따라 하듯 똑같이 따라 하는 여성에게서 4차원의 무언가를 느꼈기에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잠깐 정적이 흘렀습니다. 라이브 하우스를 방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괴짜들이 많았기에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은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복장을 보니 밴드를 자주 방문해주시는 단골 고객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손님에게 예의 없게 하는 건 매상에 손실이 있었기에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이 다시 물었습니다.
“저기요~ 저희 영업은 끝났습니다. 용건이 없으시다면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아, 영업. 끝났구나. 공연하는 줄 알았어요. 드럼, 솔로로 치시고 있길래.”
아, 그렇구나. 스태리에서는 솔로로 라이브 하우스에 오르진 못 하지만 다른 라이브 하우스에서 유명하거나 잘하는 사람을 뽑아 특별하게 솔로로 무대를 꾸미는 경우도 가끔은 있었기에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솔로로 드럼을 칠 정도로의 고수로 보였나..? 기분은 좋네.’
저의 말에 대답을 안 해준 것에 기분은 나빴었지만 칭찬을 해주니 더없이 나약해지는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확실히, 솔로를 칠 정도로의 실력은 아니었네요. 착각했습니다.”
-빠직-
“빠직?”
푸른 머리의 여성분의 말과 동시에 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푸른 머리 여성분은 가만히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천연스러운 느낌도 가지고 계시는구나. 사람이 화났는지도 몰라보였기에 분노를 숨기기 위해 드럼 스틱을 부술 듯이 쥐며 입술을 깨물곤 말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라.. 죄송해요. 네.. 친절하시네요..”
“후후.”
오늘도 한 사람 구했군이라며 뿌듯해하는 여성분을 보며 진심으로 화가 나 뭐라도 한 마디 하려고 입을 열기 직전이었습니다.
“오, 니지카~ 오랜 만~!”
“....아! 리나 선배님! 오랜만이예요!”
마침 좋은 타미밍에 제가 신세를 지고 있는 리나 선배가 무대 앞으로 와 인사를 건네주었습니다. 리나 선배님의 모습에 반가워 인사를 나누고 있자 푸른 머리의 여성은 갑자기 눈을 빛내더니 고개를 숙이며 리나 선배를 향해 인사를 했습니다.
“리나 선배님, 안녕하세요. 공연 잘 보고 있습니다.”
푸른 여성의 말에 잠깐 갸우뚱 거리며 여성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떠올랐다는 듯이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아...! 예전에 밴드 공연 보러 와주었던.. 반가워. 니지카의 친구?”
“아뇨. 그냥 스태리가 열려 있는 거 같았길래 잠시 들러봤었습니다. 영업 끝났다고 해서 이제 가 볼려고 했어요.”
“그렇구나.. 아아 그렇지 소개해 줘야지. 니지카. 인사 해. 얘는 야마다 료. 최근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한 네 동갑내기 친구야. 분명히... 학교도 똑같은 시모키타자와 중학교였지?”
“네 맞아요.”
“......”
어디선가 만난 적은 없었지만 시모키타자와 중학교에서 동급생이었다면 우연히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만난 기억은 없었지만 동급생이라는 말에 다시금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야마다씨. 나는 이지치 니지카라고 해요. 반가워요!”
“야마다 료입니다.”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자 시원찮게 야마다씨는 대답했습니다. 붙임성은 크게 없는건가? 인사가 끝나자 리나 선배가 손 바닥을 세 번 치더니 말했습니다. 자 그럼, 인사는 끝났겠다. 시작해야지, 니지카. 드럼 연습을 드디어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해맑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선배. 그렇게 저희 연습이 시작하려고 했습니다만 야마다씨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혹시.. 저도 연습하는 거 같이 봐도 될까요? 리나 선배님.”
갸우뚱 거리며 리나 선배가 물었습니다. 왜? 야마다씨는 말했습니다. 저도 한 번 보고 싶어 그렇습니다. 리나 선배는 말했습니다. 괜찮겠어? 시간도 거의 늦었는데. 야마다씨는 대답했습니다. 잠은 이미 충분히 자서요.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야마다씨, 저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리나 선배는 한숨을 쉬더니 날카롭게 눈을 뜨며 말했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 연습을 위해 기본 한 번 다시 치고 간다. 음표는 16분음표까지. 치는 방식은 늘 그렇듯 스네어에서 플로어 탐까지 순서대로. 손 치는 순서도 틀리지 마. bpm은 120, 마지막 음정엔 킥 섞어서. 시작 해.”
카리스마 있는 리나 선배의 모습에 침을 삼키며 드럼 스틱을 쥐었습니다. 이때의 리나 선배는 언니가 화날 때보다 훨씬 무서운 선생님이 됩니다. 드럼의 기본 중 기본 시간 계산. 3분음표에 들어서자 리나 선배의 말이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왔습니다.
“3분음표에서 아직 버릇 못 고쳤어! 마지막 음정이 길어져 버리잖아! 4분음표에서 빨라진다! 조절 안 해? 8분음표 오른손이 또 두 번 친다! 그거 맞아?! 16분음 표에 킥 안 들어간다! 다시 해! 이번 엔 속도 bpm 100! 될 때까지 곡 연습은 없어!”
“네에..”
여전히 리나 선배의 지적들은 날카로웠습니다. 오늘만큼은 다른 사람이 보고 있어 실수하고 싶지 않았지만 늘 그렇듯 욕을 바가지로 먹고 다시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어떻게든 연습 단계 까지 통과하고, 연습곡을 치고 나니 시각은 벌써 5시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리나 선배에게 선물을 건네 드리자 고맙다고 인사를 남기고 스태리를 떠났습니다. 옆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야마다씨와 저만 남은 상황이었기에, 야마다씨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슬슬 야마다씨도 가 봐야 하지 않아? 아, 혹시 집이 멀기라도 해?”
“아니, 걸어서 갈 정도는 돼. 지금 시간이면 조만간 전철도 있을 거니깐.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반쯤 눈을 감은 야마다씨의 모습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고독한 소녀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카리스마가 담긴 표정을 지은 야마다씨는 점차 입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연습할 수 있는 거야? 메트로놈 없이 기본 박자 연습이라니... 심지어 리나 선배는 활동으로 엄청 바쁘실 텐데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궁금해.”
“아.. 그.. 리나 선배는 언니의 옛 멤버였는데.”
“언니? 언니라면... 아..아아! 설마 세이카 선배님?!”
세이카 선배님의 동생분이셨습니까!! 눈을 반짝이며 저의 두 손을 꼭 잡는 료의 모습에 시선을 틀었습니다. 부담스러워. 제가 부담스러워하든 말든 야마다씨는 말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세이카 선배는 시모키타자와의 별이었습니다! 오챠노미즈의 마왕! 아 이건 칭찬이 아닌가. 무튼,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였지요!! 칼 같은 스트로크에 테크니컬 넘치는 기타 실력..!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깐..! 아아.. 리나 선배의 밴드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던 분의 동생 분을 만나다니 감격입니다!!”
차가운 성격을 가지고 있을 거 같았던 이미지가 단박에 깨져 버리는 발언들이었습니다. 그냥저냥한 밴드 오덕이잖아. 나이도 같으면서 어떻게 저의 언니를 아는지 궁금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저는 말했습니다.
“아.. 응. 나중에 소개해 줄 게. 이제 그만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이죠?! 정말 소개 해 주실 거죠?!”
“아 그래!! 그리고 말 편하게 해! 난 그냥 동생이니깐.”
“알겠어. 니지카!”
뜬금없이 해맑게 미소 지으며 이름을 불러 주길래 낯부끄러웠지만 밴드라는 공통사를 가진 나름의 친근감의 표시라 생각했었기에 좋게 봐주면서 저 또한 해맑게 미소 지으며 대답해주었습니다.
“응, 나도 이제 편하게 부를 게 료. 이제 빨리 가 봐. 가게 닫아야 해서. 맞다. 문도 안 잠그고 있었네. 그냥 나가면 될 거야.”
“응, 나중에 학교에서 봐.”
등을 지며 떠나는 료를 배웅해주며 드디어 가게를 잠그고 직원용 휴게실에 들어왔습니다. 가게를 전부 정리했다는 안도감에 빠져들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쉬지 않고 오랜 연습을 통한 후유증이었습니다. 이마를 닦아보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으며 등 또한 완벽하게 젖어 있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역시.. 리나 선배는 봐주질 않아. 그래서 좋아. 조금은 꿈에 다가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깐 앉아 있다가 수건으로 어느 정도 땀을 닦은 다음 몸을 씻고 나와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휴게실에 준비돼 있던 소파에 누웠습니다. 박자를 잊지 않기 위해 손을 흐느적거렸습니다. 강박증에 걸릴 것 같은 박자들을 잠들려는 사이까지 다시 새겼습니다. 즐거워. 즐거워야 해. 포기해선 안 돼. 절대로. 저는 차갑게 밀려오는 현실을 피하고자 소파에 누운 채로 따뜻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조금은 길었던 연휴가 지났습니다. 연휴엔 아르바이트를 연속으로 했던지라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와 내일 학교를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일찍 잠들었습니다. 기상시간은 6시. 학교와는 걸어서 10분거리였지만 늘 언니의 밥을 챙겨줘야 했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할 준비를 해놓습니다. 음식이 머리칼이 들어가지 않게 머리를 뒤로 묶고, 칼로 야채들을 썰었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볶음밥을 만들어두고 랩에 포장해둡니다. 밥을 먹고 시간이 조금 남아 연습용 패드를 들고 와 잠시 연습을 하고 있자 언니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방 안에서 나왔습니다. 언니에게 밥은 다 해놓았다고 말하자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니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스태리 야간 운영 때문에 최근엔 많이 바빠져 피곤한 모양이었습니다. 별 신경 쓰지 않고 가방을 챙기고 현관 앞에 다가갔습니다.
“다녀 올게~ 언니!”
“어~ 잘 다녀와!”
언니에게 인사를 받고 집에서 나와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늘 지나가던 정문, 가을이 점점 지나는 계절, 봄으로 착각한 벚꽃들이 날리는 계절이었습니다. 금방 시들어가는 가을. 눈길이 갔습니다. 금방 져버리는 구나. 슬픈 감정이 들었습니다. 손바닥을 내밀자 벛꽃 잎이 한 장 손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아직은 따뜻한 느낌이 남아 있었습니다.
“확실히 가을이 되면 손바닥을 내밀고 벚꽃 한 장 정도는 받아보고 싶어지긴 하지.”
“으아앗?!”
어느샌가 사람이 와 있어 놀라 옆을 바라보니 푸른 머리의 소녀, 료가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있는 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복도 잘 어울렸지만.. 교복도 제법 잘 어울리네.”
“후후, 그렇지?”
“....은근 4차원이라고 말 듣지 않아?”
“데헷.”
왜 좋아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료의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저의 모습을 신경쓰지 않고 료 또한 방금 전의 저처럼 손바닥을 내밀었습니다. 조용히 벚꽃을 기다리는 료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얼굴만큼은 반반하다는 걸 스태리에서 처음 봤을 때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보니 남성 여럿 홀렸을 관상이었습니다. 4차원 적인 성격만 아니었으면 제법 인기 있었을 거 같은데. 학교에서도 소문났을 법한 얼굴이었는데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놀라웠습니다. 벚꽂 한 장이 료의 손바닥에 떨어지자, 료는 반쯤 눈을 감은 채 꽃잎 한 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에게 가을은 따뜻해. 늘 그렇듯.”
4차원적인 발언이 또 튀어나왔지만,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속에 품고 있던 순수한 의문을 던졌습니다.
“서늘한게 아니고?”
“따뜻함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니깐. 난 가을을 따뜻하다고 말하고 싶어.”
“어째서?”
“이번 해의 마지막 잎을 피우는 거니깐. 마지막은 늘 따뜻해야 된다고 생각 해. 그 다음엔 언제 피울 수 있을지 모르니깐. 나무들에겐 그 순간들이 소중한 거지. 차가운 겨울에 잊혀지지 않게 따뜻하게 태어난 아이들을. 잎을 날리는 거니깐. 어쩌면 마지막으로 날리는 따뜻한 잎을. 그거 알아? 잎 하나하나마다 색의 차이가 있다는 거? 그 차이를 느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고, 감정이 하나씩 올라오는 걸 느껴. 저번이랑은 또 다른 감정이 여기서 태어나.”
이 시간이 아니면 느낄 수 없어. 그렇기에 이 감정들이 움트는 순간이 좋아. 료는 손바닥 안에 있던 벚꽃을 쥐었습니다. 감상에 빠진 료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 감상은 좋네. 문학적인 느낌이 들어.”
“글 읽는 것도 좋아하니깐. 최근엔 서점이 없어서 곤란 해. 그리고 디저트 가게도. 카페도.”
비디오 대여점도 생겼으면 좋겠는데. 아, 영화관도. 료는 끝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게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좋아하는게 많구나. 좋은 거지. 먼저 갈게. 저는 료의 어깨를 토닥이며 학교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하자 료가 나중에 점심 시간에 자신의 반인 3반 앞에서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알겠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점심시간이 되고, 3반 앞에 료가 같은 반 아이 2명에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료의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같은 심각한 발언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처음 듣는 내용이었기에 분위기를 살피다 저의 시선을 느낀 료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가자, 니지카.”
료는 저의 손 목을 잡더니 저를 목줄에 잡힌 강아지처럼 멋대로 끌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걷는 도중에 무슨 일이냐고 묻자 방과 후에 놀자고 상대방 쪽에서 먼저 권유했는데, 준비한 변명거리로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왜냐고 묻자 귀찮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정말 귀찮은 성격이네. 료.
료에게 끌려온 곳은 옥상 출입구 앞이었습니다. 최근엔 잠겨서 통제된 구역이었는데 어째서 여기로 왔냐고 묻자 씨익 웃고는 문 아래 틈새를 뒤적거렸습니다. 문 틈새에서 열쇠가 하나 나오더니 열쇠로 넣고 돌리더니 문이 열렸습니다. 이후 료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좋은 배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알았어?”
“이 이상 달면 다쳐."
기업의 숨은 비밀이라도 감춘 것 마냥 숨기려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따라가 보니 그런 마음은 싹 사라질 정도로 옥상은 바람이 상쾌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좋다. 운 좋게도 옥상에 비치해둔 의자도 있었기에 앉아서 밥을 먹기엔 충분했습니다. 저는 가지고 온 도시락을 열었습니다.
“오.. 오오...!”
료가 눈을 빛내며 다가오더니 저의 도시락 반찬을 보며 침을 흘렸습니다.
“계란말이에, 비엔나, 심지어 그 옆엔 케찹 올라가있는 볶음밥! 맛있겠다.”
“응, 내가 만들었어. 이쁘지!”
그럼, 잘 먹겠습니다. 젓가락을 쥐고 반찬을 하나 들려고 할 때, 료의 시선이 저에게 날아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저의 밥 반찬에. 분명 보이지도 않는데 확실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선이 느껴지자 료에게 물었습니다.
“밥, 안 가져왔어?”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료는 말했습니다.
“응. 안 가져왔어. 원래는 편의점에서 사려 했는데 도망치는데 바빠서 생각이 안 났어. 그러니까 나눠 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말이 안 나왔지만 비엔나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료의 입가에 갖다 줬습니다. 입에 넣자마자 입술이 물결 모양으로 움직이며 비엔나를 음미하더니 삼켰습니다. 어떻게 입술이 물결 모양으로 변하지. 인체에 신비에 감탄하고 있자 료는 눈을 반짝이며 말 했습니다. 맛있다! 니지카 솜씨 좋네. 맛있게 먹어주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 그럼 그냥 나눠먹자. 나중에 간식 아무거나 사줘. 료는 제가 건네준 계란말이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밥을 다 먹고 잠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료는 1년 전에 베이스에 입문 해 밴드에 관심이 생겼고, 그로 인해 라이브를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그 중 새로 생겼다는 스태리에 관심이 생겨 들렀다고 했습니다. 언니가 스태리를 운영한다고 하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어색했지만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습니다.
“내가 라이브 보러 가는 걸 좋아하니깐. 언니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장소라고 생각해. 드럼 실력을 키우고 나선 밴드를 만들 거야. 그래서 언니보다 더 멋진, 유명한 밴드를 만들어서 스태리를 유명하게 만들 거야! 그게 내 꿈이야.”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래서 연습을 하고 있던 거구나. 료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철창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조금의 정적이 흘렀지만, 이러한 정적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나름 후련한 느낌이 들어 기지개를 폈습니다. 슬슬 다 쉬었으니깐 내려갈 까? 저의 말에 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와 함께 옥상 아래 계단을 향했습니다.
그녀와 있는 건 즐겁다.
항상 웃는 얼굴엔 긍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드럼을 칠 때도. 나의 4차원적인 감상을 들어줬을 때도, 밥을 먹으면서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교 할때도.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스태리에 있던 일을 이야기 할 때도 늘 그녀에 미소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그녀가 라이브 하우스로 데려오니 라이브 하우스에 대해 일일이 소개시켜 주었다.
“알고 있겠지만 여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기타 치던 늙은 호랑이 언니인데 츤이 엄청 심해!”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소개시켜줬다. 세이카 선배님은 호랑이처럼 으르릉거리더니 그녀를 쓰레기 치우듯 쓰레기 통으로 처박아버렸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냐고 묻자 항상 이런 식이라고 했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록하십니다. 세이카 선배님.”
“점장님이라고 불러라.”
알겠습니다 점장님이라고 대답했더니 그에 반응하듯 쓰레기통 안에서 나온 그녀는 나에게 따라오라 하더니 드링크바로 향했다. 드링크는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소개해줬다. 왜 이런 걸 알려주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나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아? 내가 아르바이트를 왜 하냐고 묻자 최근에 새로운 기타를 살 돈 없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깐 잠자코 배우라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돈을 헤프게 쓰는 버릇을 고쳐줄 순 없으니, 일을 시키면서 돈을 벌 방법을 알려주는 그녀였다. 나름의 배려가 느껴지는 그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스태리에 있던 거울을 보고 나서, 그제야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나는 나에게 놀랐다. 내가 이렇게 웃음이 많았었나? 항상 주변에서 무뚝뚝하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최근 들어선 그 웃음이 제법 늘어났었다. 누군가에 의해 변화가 있었나보다. 그 누군가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다. 밝고 명랑한. 그런 사람.
료와 만난 지 몇 주가 지났습니다. 자연스럽게 료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일이 늘었습니다. 접객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료에게 드링크바에서 현관 티켓 배분 담당을 맡기게 되었고, 저는 드링크바를 맡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료와 함께 라이브 하우스로 내려오던 중, 검은 장발의 한 여성이 눈에 띄어 쳐다봤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자주 마주치지 못했지만 예전에 언니가 말했던 음향 담당을 하시는 PA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건네기 위해 다가갔습니다만,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피어싱을 달고 있는 무서워 보이는 언니였기에 겁이 나 료 뒤에 숨었습니다.
“언니 만나고 싶어..!”
“얼굴 무너지는 니지카 처음 봐. 이런 얼굴도 하는 구나. 재밌어.”
저의 무너지는 얼굴을 감상하는 료 옆으로 보고 싶었던 언니가 드링크 바 뒤에서 나타나더니 PA씨를 바라보더니 소개해주었습니다.
“얼굴은 처음보지? 동창이던 친구야. 인사 해. 내 친 동생이랑 그 친구.”
“안녕하세요. PA라고 불러주세요.”
어두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주었습니다. 좋은 사람이구나. 저 또한 PA씨 앞으로 다가가 해 맑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PA씨! 만나서 반가워요! 이지치 니지카에요!”
“그 옆에 있는 분은..”
“야마다 료라고 합니다. 전에 라이브 하우스에선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아~ 전에 다니던 라이브 하우스에 자주 방문해주던 분이셨군요. 반가워요.”
PA씨가 료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료 또한 악수를 받아줬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구나. 저는 속으로 료의 대인관계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순수하게 료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른 라이브 하우스도 자주 다녔었나 보구나.”
“응, 예전에도 말했듯이 베이스 때문에 라이브 하우스를 자주 들렀으니깐. 이외에 곡 만드는 것도 알고 싶어서 PA씨에게 자주 물어봤었어.”
“료 곡도 만들 줄 알아?”
“간단한거라면. 나중에 한 번 들려줄 게. 최근에 빠진 건 펑크록인데 펑크록이란 1970년대 록의 하위 장르지만 대중음악이 뿌리 잡은 음악이고 파워코드를 반복해서 이어가는게 이 장르의 특징...”
료의 밴드 오타쿠 기질과 함께 PA씨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언니와 료, 저만 남은 상황에서 언니는 이 번 주 휴일 때, 일손이 바빠질 거 같다는 언니는 저희에게 스태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 날은 드럼을 연습을 해야 했던 날이라 잠시 고민했지만 언니의 가게에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에 알겠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료는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였지만 일이 끝나면 나중에 같이 새로 생긴 디저트 가게를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그 말에 료는 눈을 빛내며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디저트를 좋아하는 소녀였습니다.
휴일 당일 날이 되고, 드럼 연습을 위해 개점 시간보다 빠른 시간에 가게에 들어와 드럼을 쳤습니다. 좀 더 연습해서.. 연습해서. 꿈에 다가가야 해. 손목이 저릿거리는 걸 느꼈습니다. 고통을 무시하고 드럼을 쳤습니다. 더 빠른 템포를 칠 줄 알게 돼야 돼.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템포에 리듬을 맡겼습니다. 드럼 스틱을 쥐고 있던 오른 팔에서 드럼 스틱을 놓쳤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드럼 스틱을 주으려 하자 오른 손에 통증이 왔습니다.
“읏..”
오른 손 목이 통증으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무리한 연습을 한 탓이었습니다. 드링크 바에 있는 얼음을 얼음주머니에 담아 손목에 댔습니다. 차가운 기운에 잠시 통증이 가라 앉았습니다. 어느 정도 통증이 완화되어 얼음팩과 싱크대를 정리하고 있자 언니가 라이브 하우스에 왔습니다.
“니지카, 뭐 해?”
“아, 응. 잠시 정리 중이었어. 싱크대 좀 더러운 것 같아서.”
“성실하네. 홀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깐 잠시 쉬고 있어. 오늘은 사람들 많이 방문하니깐 개점 전엔 좀 쉬어둬야지.”
“아.. 응. 고마워.”
칭찬과 함께 홀로 떠나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들키진 않은 것 같아. 오른 손을 쥐었다 폈다 하니 통증이 조금 있었지만 참을 만 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잠시 쉬기 위해 휴게실을 들어갔는데 거기엔 료가 있었습니다.
“료 여기서 뭐해..?”
“일하기 싫어서 숨어 있어.”
여전한 료의 태도에 피식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료는 변함없구나. 료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언니가 알면 혼 낼거라구? 난 미리 와서 정리하고 있었는데.”
“니지카가 다 해주니깐 내가 할 일이 없는 거야.”
그러므로 난 합법적으로 쉴 수 있는 거지. 료의 말에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중엔 일찍 오지 말고 료 먼저 끌고 와야겠다. 언니한테 그렇게 말 해야지.”
“에에..”
싫어~ 일하고 싶지 않아. 아티스트가 일하면 패배자라고~ 심한 아티스트 병에 걸린 료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했습니다.
“아티스트도 굶으면 답 없다고. 그럼 내가 일 안하면 어쩌려구?”
“니지카는 상냥하니깐 그럴리 없어.”
상냥하다. 료의 한 마디에 가슴속에 무언가 걸렸습니다. 복잡하고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뒤로하고 저는 쓴 미소를 지으면서 능청스럽고, 작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까지 상냥하지 않아. 료.”
“니지카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자 일어나! 일 하러 가야지! 자 가자!”
“에에에...엑! 커헉, 니지카 알겠어. 갈게. 갈게. 이 멱살 좀 풀어..”
휴게실에서 뭉그적거리는 료의 멱살을 잡고 억지로 끌고 와 일을 시작한 지 2시간 뒤,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해 접객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평소라면 어찌어찌 막을 수 있었지만, 다친 오른 손목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진 것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점점 사람들의 행렬을 이루고, 그 현상이 몇 십분이나 유지 되자 드링크 바 앞에서 맨 뒤에 줄을 서고 있던 한 남성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드링크 바로 다가오더니 너무 늦는다고 건네 드리고 있던 드링크를 쳤습니다. 엎질러지는 드링크와 소리 지르는 고객에 웅성거림이 들렸습니다.
“대체 몇 분을 기다리게 하는 거야! 라이브 벌써 다 끝나가고 있잖아! 환불 해줄 거야? 어?!”
손님의 언성에 겁을 먹어버려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습니다. 라이브 하우스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아 고개를 숙이고 있자 언니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아르바이트 생인지라 경험이 부족해 그렇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언니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가슴이 내려 앉아버리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남성에게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남성은 혀를 내두르더니 라이브 하우스를 나갔습니다.
라이브 하우스 영업이 끝나고, 언니는 휴게실로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평소처럼 혼을 내려고 부른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쇼파에 앉아있던 언니는 저를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오른 손 목, 줘 바.”
저는 고개를 저으며 오른 손을 숨겼지만, 언니는 강제로 제 오른 팔을 잡더니 다른 한 손으로 살포시 얼음을 오른 손목에 올렸습니다. 통증이 차가운 기운으로 감싸져 점차 완화되는 기분이 느껴졌습니다. 언니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리나랑 연습하고 그렇게 됐지? 그 개 같은 년. 얼마나 처 굴린 거야. 나중에 한 번 붙어야..”
“아냐. 그러지 마. 언니. 내가 무리하게 연습해서 그래.”
서글펐던 얼굴이 더욱 서글퍼지는 언니의 모습에 고개를 숙여버렸습니다. 언니의 슬픈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올 거 같아 억지로 참았습니다. 강해져야 돼. 이런 일 하나하나에 울어선.. 안 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언니. 일단 병원이라도 가보고 관리 제대로 할 테니깐! 드럼은.. 조금 쉬었다 하지 뭐! 드럼보단 몸이 더 중요하니깐.”
저의 말에 쓴 미소를 짓고는 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 무리하지 말고.”
“응.. 알겠어.”
학교가 끝나고 병원에 들러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들어보니 다행히 가벼운 염좌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경과를 지켜보자며 소염제와 함께 1주일 뒤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병원 밖을 나서자 정문 앞에서 료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때? 손목은 괜찮아?”
“괜찮아. 호들갑은. 굳이 안 따라 와도 됐는데.”
“...니지카가 없으면 저녁 밥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곤란 해.”
최근에는 같이 저녁밥을 먹을 정도로 친해졌습니다만 료에게 이런 직설적인 말을 들으니 낯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순진무구한 료의 말에 복잡한 감정을 속으로 정리하고 미소 지으며 농담삼아 말했습니다.
“그냥 밥 얻어먹고 싶어서 그런 거지~?”
“응. 실은 그게 맞아. 니지카 집에서 밥 얻어먹으려고 기다렸어.”
“훈훈했던 기분 돌려 줘! 인간말종! 쓰레기! 버료지!”
“버..버료지?”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니지카아.. 울먹이는 료를 무시하고 저는 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아리처럼 저의 뒤를 따라오는 료에, 마음이 약해진 저는 고개를 살짝 돌려보자 버려진 강아지마냥 눈빛을 보내는 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미안해.. 니지카아...”
“아.. 알겠어! 알겠다구! 밥 먹으러 가자!”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바로 식당을 향했습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료의 모습을 보며, 저도 덩달아 기분이 금세 풀렸습니다.
행복한 시간은. 이렇게 계속 됐으면 좋았을텐데.
늘 사건은, 갑작스럽게 터지곤 합니다.
니지카.
응? 왜?
같이 밴드하지 않을래? 이번에 제법 진심으로 모으고 있거든. 꼭 너가 들어와줬으면, 좋겠어.
...진심이면.. 더욱 안 될 거 같아.
어째서. 니지카, 열심히 하잖아.
그야, 난 아직 멀었으니깐. 료도 알잖아. 아직은 아니야. 난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때 까진 밴드 멤버를 구하고 싶지 않아. 내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따라와 주겠어. 내 꿈은.. 내가 이끌고 싶어.
......
그리구! 난 언제나 리더이고 싶으니깐! 멤버들 막 굴릴거라고!
그게 목표였어? 니지카 생각보다 능구렁이네
그치. 실은 저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헤헤. 그러니깐, 나중에 기대하라구!
응. 기대 할 게. 니지카.
밖에서 료와 함께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최근 이 시간대에 언니는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스태리를 운영하는 시간이 많아져 자리를 비우는 게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외출하는 일이 잦아 얼굴을 보기 힘들어 홀로 남아 집을 지키곤 합니다. 그런 날은, 적적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적적함을 잊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깜짝 손님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게 니지카의 방이구나.”
히로이 언니외에 다른 사람을 집에 들인 건 처음이었습니다. 료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체감하기도 전에 제 방에 들어온 료는 고양이 같은 눈매를 짓더니 저의 침대에 뛰어 들었습니다. 료가 침대 위에서 좌우로 구르는 모습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제야 료가 저의 방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에 눈치 챘습니다.
“아! 외출복으로 뒹굴지 마! 자는 곳인데!”
료는 저의 대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의 침대에 얼굴을 파고들더니 말했습니다.
“니지카 방은 정말 깨끗하네. 향기도 좋아. 여기 며칠 머무를래. 아니, 앞으로 여기서 살래. 이사 할 거야. 짐도 가져 올테니깐 잘 부탁해. 니지카 엄마. 그리고 밥 줘. 배고파.”
“밥은 아까 먹었잖아. 그리고 난 엄마가 아니야!”
평소 언니가 고맙다를 인사를 전할 때마다 보람을 느껴,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건 좋아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이러다간 이 집에 빌붙으려는 베이시스트가 한 명 더 생겨버릴 것 같아 거절의 의사표시를 더욱 강경히 했습니다.
“절대! 안 돼! 나도 개인적인 공간은 있어야지!”
저의 강한 의사 표현에 료는 깜짝 놀라더니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라..? 설마 우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료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쓸쓸한 걸..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데..”
료의 한마디에 에 마음이 누그러지고 말았습니다. 홀로 집을 지켰던 8살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홀로 아빠가 만들어 준 밥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그 시절을. 홀로 집을 지키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 동질감을 느껴버려 할 수 없이 한 숨을 쉬면서 대답했습니다.
“알겠어. 며칠 만이니깐. 대신 밥 값이나 생활비 같은 건 돈을 내고. 언니한테 허락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알겠지?”
“정말?! 알겠어. 니지카! 사랑해!”
호들갑은, 너무 좋아하는 료의 모습에 저도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어리광을 받아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좋아하는 료의 모습에 버릇이 나빠질 거 같았습니다.
방에 들어오고 나서 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언니의 옛날에 기타를 쳤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료에게 질문하자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예전 대학 후배였던, 히로이 선배라는 분에게 들었던 건데, 기타를 미친 듯이 잘 친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있었다고 해서. 따라 올라가보니 세이카 선배님이었다는 걸 알았어. 저는 리나 선배에 이어, 히로이 언니 또한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히로이 언니 술에 찌들어서 불시에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온다고 료에게 말해주자 눈빛을 반짝이더니 말했습니다. 혹시 오늘도 만날 수 있을까? 료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워낙 자기 오고 싶은 데로 사는 사람인지라 올지 안 올지는 잘 모르겠어. 저의 말에 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역시 히로이 선배님. 마이웨이야.
몇 분이 지나고 잠시 밀린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침대 옆에 누워 있는 료의 모습이 신경 쓰여 바라보았습니다. 혼자 만에 세계에 빠져든 료는 기분이 좋다는 듯 이어폰을 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료가 듣고 있던 노래가 궁금했기에 료에가 가까이 다가가 이어폰 한 쪽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료는 남은 한 쪽의 이어폰을 건네줬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노래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베이스의 진득한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감정 있는 노래. 곡이 끝나자 료는 저에게 말 했습니다.
“지금 만드는 곡인데, 이걸 토대로 해서 나중에 곡을 만들어볼까 해. 어때?”
“괜찮을 거 같아. 초반 기타 도입부를 좀 더 날카롭게 들어가면 좋을 거 같아.”
“니지카도 그렇게 생각 해? 분명 더 좋아질 거야.”
“응.”
이어폰에 노래에 집중하는 료의 모습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곡을 듣자마자 직감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언니의 기타구나. 료 또한 언니의 기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 구석에 두었던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언니의 기타는, 언니의 꿈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을까요. 감정 있는 기타의 소리가 귓가를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치고 싶었던, 그 선율들에 대면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지금의 저에게 또 다시 실망해버리고 맙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잘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손님용 이불을 바닥에 깔아주고, 료와 함께 이를 닦았습니다. 료는 갑작스럽게 와서 잠옷도 없었기에 제가 쓰던 잠옷을 료에게 빌려주었습니다. 사이즈가 맞을까 고민했지만 저보다 신장이 큰 료에겐 역시나 옷이 맞지 않았습니다. 니지카 잠옷. 너무 작아. 투정을 부리는 료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럼 입지 말구 자든 가. 그러자 료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잠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알겠어! 언니 꺼 빌려줄 게! 벗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결국 언니의 방에 몰래 들어가 잠옷 하나를 빼오면서 저는 료의 행동에 투덜거렸습니다. 그렇다고 진짜로 벗어버리냐구. 진짜 4차원이야. 언니의 옷을 가지고 제 방으로 돌아오는 길,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언니가 돌아왔는가 싶어 재빠르게 제 방으로 들어가 료에게 옷을 건네주고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언니 왔어? 고생했....”
“야! 호! 니지카! 오랜 만!”
밝은 목소리와 함께 인사를 건네오는 언니, 히로이 언니가 익숙한 듯 현관문을 넘어서더니 방 안쪽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술 냄새가 강하게 나 코를 막았습니다. 오늘도 한 잔 마시고 들어왔구나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그 뒤로는 언니가 들어왔습니다. 얼굴이 약간 상기 된 게, 느낌상으로 히로이 언니와 한잔 마시고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니지카아아아.. 우리 사랑스런 니지카아아..”
“으아! 언니도 술 마셨어?!”
“안.. 마셨어! 안 마셨다구우! 아닌가..? 조금.. 마셨나..? 헤..”
저를 붙잡고 술주정을 부리는 언니, 이런 날이 자주 있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엄숙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언니의 뒷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술에 약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있고 다음 날 일어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언니의 술 취한 모습은 저의 비밀 폴더에 고이 모셔두곤 합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귀엽게 느껴져 보기에는 좋지만 오늘만큼은 히로이 언니와 함께 들어와 2명을 보살펴야 할 것 같아서 더욱 번거로워질 것 같았습니다.
“언니가 미안해에.. 맨날 챙겨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챙겨 받기만 하고.. 우리 니지카.. 정말 잘 컸어.. 칭찬해줄 게. 뽀뽀~”
정정하겠습니니다. 오늘의 언니는 몇 배 더 귀찮아질 것 같았습니다. 평소보다 더 귀찮게 구네..! 강제로 얼굴을 들이미는 언니를 밀어내며 오늘의 언니는 히로이 언니와 비견될 정도로의 귀찮음을 감지해버렸습니다.
“도와줄까? 니지카.”
고맙게도 료가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와 주었습니다. 료와 저는 언니를 끌고 방 안 침대에 던져두었습니다. 흐물거리는 액체 괴물마냥 침대에 녹아내린 언니는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내 인형.. 팬더.. 토끼.. 그거 없음.. 못자아..”
“그럴 줄 알고 챙겨놨지. 자, 여기.”
“헤.. 인형쨩이다아아..”
인형을 건네주자 기분 좋다는 듯이 인형을 끌어안더니 언니는 지렁이마냥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에 료는 웃음을 참으려고 입을 막았습니다. 그럼에도 웃겼던 모양이었는지, 끅끅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점장님.. 술 마신 날은 진짜 매력 넘치시네. 매일 술 마시고 들어 오셨으면 좋겠다.”
“이런 날엔 뒤처리가 힘들다구. 아, 그러고 보니 히로이 언니 거실에 들어갔..”
히로이 언니의 언급이 나오자마자 웃음을 멈추고 바로 거실로 뛰어가는 료의 모습에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언니가 걸리적 거린다는 듯이 이불을 말고 침대 아래로 던져버리길래 다시 이불을 바로 펴고 덮어 주었습니다. 잠버릇이 심한 언니를 잠시 지켜보고, 안정적으로 호흡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확인 한 뒤, 자리에 일어나 거실로 향했습니다. 거실의 쇼파 위에서 료와 히로이 선배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옆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락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이키델릭록.. 오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환각적인 분위기가 특징.. 그런 장르는 또 처음 들어보네요! 나중에 들으러 갈게요!”
“얘 재밌네! 오! 니지카도 왔네! 네 친구야?”
“응. 이번에 새로 사귄 친구. 인사는 나눈 것 같으니깐 이제 들어가서 자 봐야지. 료.”
“에에..”
우린 학생이니깐 빨리 자야 한다구. 저는 료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잡아당겼습니다. 히로이 선배! 나중에 꼭 더 이야기해요! 반드시! 울먹이며 끌려가는 료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시간은 벌써 2시를 향해가고 있었기에 무시하고 계속 끌고 가 방 안으로 들어가 료와 함께 잠을 청했습니다.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지만, 료가 바닥은 딱딱하다며 싫다고 하더니 제가 자고 있는 침대 위로 베개를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가까이에 붙은 료의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눈을 감고 곤히 자고 있는 료의 모습을 바라보니 뭔가 낯부끄러운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남성성도 어느 정도 섞인, 미소녀의 얼굴이 매우 가까이에 있자 료의 얼굴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하얀 눈처럼 새하얀 피부, 뺨은 연분홍색으로 물들었습니다. 눈물 점을 타고 눈썹을 바라보았습니다. 눈썹.. 길구나. 료. 속눈썹도 이뻐. 새근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습니다. 숨소리가 나오는 코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똑하고 잘 정돈 되어 있는 코. 그 아래로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는게 보였습니다. 아주 작게 입을 여는 버릇이 있었지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입술도.. 저는 이상한 감정이 들어버려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니지카!’
저는 료를 두고 재빨리 제 방 안을 나왔습니다. 료에게 침대를 넘겨주고 방 바닥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내려와 냉수 한잔을 마시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거실 탁자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달빛이 유난히 강한 날이었습니다. 조금은 적적한 기분이 들지만 그러한 감성도 조금은 좋게 느껴지는, 짙은 새벽이었습니다.
“왁.”
“후아아아아아ㅇ앙아앙아아아!!!”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깜작 놀란 저는 책상을 걷어차 버리고 말았습니다. 의자와 함께 넘어진 저의 꼴사나운 모습에 키득키득 웃는, 히로이 언니. 그나마 책상위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다행이었지 큰일 날 뻔했기에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을 지으며 히로이 언니의 멱살을 쥐었습니다.
“미.. 미안해! 니지카! 한 번 만 봐줘! 응...!?”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분노를 가라 앉히고 멱살을 풀어주자 히로이 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죽을 뻔했어.. 진짜 죽을 뻔 했어. 세이카 선배보다 무서워.. 저에게 거리를 두며 쇼파 위에 웅크리는 언니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히로이 언니는 이런 언니였지.
“앞으론 그러지 마요. 언니.”
“응 알겠어.. 살려줘서 고마워.”
“오늘은.. 언니랑 무슨 일 있었어요? 보통은 언니 술 마시는 일은 거의 없는데.”
“아? 아아~ 그게. 저기..”
머뭇머뭇거리며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다시 주먹을 쥐어보자 알겠다고 말해줄게라며 울먹이는 히로이 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긴 했지만, 히로이 언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냉수를 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히로이 언니가.. 냉수를..? 물 대신 술을 달고 다니는 언니가..?!”
“대체 날 얼마나 쓰레기로 보는 거야! 니지카! 맞긴 하지만..”
냉수를 한 잔 가져다주자 벌컥벌컥 마시더니 캬, 하며 쥐고 있던 컵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더니,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꼭, 들어야겠어? 니지카?”
듣는다고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 어린 아이 취급하는 것 같아 살짝 오기가 생겨버렸습니다. 말해요. 언니. 괜찮으니깐. 히로이 언니는 저의 표정에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알겠어.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니깐.”
그 뒤로, 흘러나오는 히로이 언니의 단 한마디 말에, 저는 두 귀를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리나 선배, 이제 밴드 그만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