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갤문학] 도쿄 좀비 (1)
낙타성애자
2023-01-22 11:27:59
조회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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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이 잔뜩 슨 철창 너머, 먼지가 잔뜩 낀 기타를 품에 안고 잠을 청하는 한 인물이 있다.
빛바랜 분홍색 머리의 그녀는, 여느때처럼 죄수복을 입고 철창 안에서 잠들어있었다.
죄수복에 '1988'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그녀의 이름은 고토 히토리였다.
그녀는 마냥 잠을 자는 것으로, 6년 3개월이라는 남은 형량을 보내기 위해, 같은 죄수들이 거는 말도 무시하고 잠을 잔다.
"...야, 1988번."
"...."
"1988번, 씨발, 안 들리냐?"
"거 냅두쇼, 그 새끼 원래 저럽디다."
"하아... 거 참... 저 새끼 뭐 저런다요?"
"뭐라더라, 마약을 했다던가. 원래 음악 하는 새끼들이 다 약하고 그런 거 아니우?"
"에라이... 쯔쯧.... 약을 할거면 들키지를 말던가..."
"그러게, 그냥 시체처럼 취급하는 게 맞다니깐 그래. 어차피 밥 먹을때 빼고는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고토 히토리가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누구의 말에도 응답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다.
오늘도 그런 평범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으나, 어째서인지 경관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1988번, 나와라."
"에?"
"....에이.. 씨발.."
혼잣말로 궁시렁대며 욕을 해대는 경관을 따라, 고토 히토리는 항상 몸에서 떼놓지 않는 기타를 들고 어디론가 따라간다. 꽤 긴 복도를 지나, 이윽고 고토 히토리는 면회장 쪽으로 자신을 끌고 가는 경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어디로 데려가시는.."
"너, 동생 있었냐. 그 녀석이 보석금을 대줬다고 하더라. 자세한 이야기는 본인한테 들어라."
"...후타리가.. 드문 일이네.."
감옥에 들어온 이후, 후타리와는 일절 연락을 하지 않던 상태이다. 드문드문 부모님이 면회를 와주기는 하였지만, 그것도 2년 전 쯤부턴가 끊긴 뒤로는 줄곧 아무와도 연락이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타리가 자신에게 일부러 면회를 왔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고토 히토리는 면회실에 들어가, 자신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후타리 앞에 앉았다.
"후, 후타리...여긴 무슨 일이야..?"
"...본론부터 말하자면, 엄마 아빠가 죽었어."
"죽었다니?"
"얼마 전 연휴 때 할머니네 댁에서 돌아오시던 중, 차를 타고 가다가 차 앞으로 까마귀가 달려들어서 이리저리 핸들 돌리시다가 그대로 길가에 차를 박으셨대나봐. 워낙 크게 다치셔서 얼마 안 가 돌아가셨다더라."
"...."
"언니, 슬프지도 않아? 엄마가 항상 나한테 뭐라고 했는데, 내가 언니의 유일한 자매니까 나보고 언닐 잘 챙겨주라고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하셨어. 엄마는 그 정도로 언니를 생각했었다고. 슬퍼하는 척이라도 할 순 없어?"
"...."
"하아... 내가 약쟁이한테 뭘 바라겠어..."
후타리는 짜증이 뻗친 듯 머리를 심하게 긁적거리며 책상을 한 번 강하게 내리친 뒤, 악어의 눈물조차도 흘리지 않는 자신의 언니에게 카드를 하나 내밀었다.
"언니의 보석금은, 죽은 엄마와 아빠의 보험금이야. 이 카드 안에도 엄마와 아빠의 유산이랑 보험금이 일부 들어있어. 물론 보석금은 언니 몫에서 뺐고. 언니랑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매라서 나눠가져야만 하거든."
어쩔 수 없이, 라는 단어 선택에서, 후타리가 얼마나 자신을 원망하고, 혐오하고, 기피하는 지, 고토 히토리는 알 수 있었다. 고토 히토리는 무기력하게 카드를 집어들고는, 후타리에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미안하면 제발 좀 똑바로 살아. 이번 보석금도 자매로서의 마지막 정으로 내 준거니까,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는 살아달란 말이야. 앞으로 나 찾지도 말고."
"....알았어."
"그리고, 니지카 언니가 연락 좀 해달라더라. 누군지 기억하지?"
"...."
"하... 진짜... 약에 얼마나 쩔어 살았었던거야..."
자매의 인사는, 이렇게 끝났다.
고토 히토리는 면회가 끝나자, 교도소장의 안내를 받아 죄수복을 반납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자, 네 핸드폰이다. 개통은 동생이 해놓았다고 하니까, 따로 신고 할 필요 없이 들고 가면 된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토 히토리는 기타 가방과 핸드폰, 그리고 언제나 입던 핑크색 저지를 입고서 밖에 나왔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햇살이 살짝 눈부시기까지 했다. 고토 히토리는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유치장의 문을 열고 밖을 향해 발을 옮겼다.
"....드디어.. 밖이네..."
고토 히토리는 눈부신 햇살을 등지고,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에는 죽은 엄마 아빠의 번호, 히로이 언니, 니지카 언니, 그리고 결속 밴드 멤버들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후타리의 연락처는 말끔히 삭제된 것으로 보아, 후타리가 개통을 하며 갱신해놓은 것임이 분명했다. 고토 히토리는 이지치 니지카에게 연락을 취해야 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니지카나 키타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를 굉장히 번거롭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봇치의 손가락은, 니지카가 아닌 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고토 히토리인데요.."
"봇치."
"네...."
"유치장은 나왔구나. 축하한다."
".....네.."
"근데, 너한테 볼일이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니지카 아니었나? 후타리한테 못 들었어?"
"드, 들었는데요.. 그게..."
"대충 알 거 같으니까, 그 옛날에 스태리 건물 있지? 그 쪽으로 와. 택시비는 내가 내 줄게."
"아... 네... 감사합니다.."
고토 히토리는 전화를 끊고, 택시를 불러 시모키타자와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고토 히토리는 방금 전의 통화를 회상한다. 봇치.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네, 하고 피식 웃음을 짓는다. 고토 히토리를 태운 택시가 시모키타자와의 한 카페에 도착하자, 그 곳에는 파란 머리의 한 밴드맨이 있었다.
"...료, 료씨..."
"봇치, 못 본 사이에 많이 초췌해졌네. 교도소 안에서도 기타는 친 거야?"
"그, 그게.. 친 게 아니라..."
"...그렇구나. 그럼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네, 네..?"
"걱정 마. 모두한테는 잘 말해뒀어."
"모두라뇨..?"
고토 히토리는 야마다 료에게 끌려가며, 설마 그 '모두'라는 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 '모두'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부정했다.
그러나, 한때 스태리가 있었던 공간에 자리한 카페 안의 광경은 고토 히토리의 그런 나쁜 예감을 완전히 관통하는 것이었다.
"....료, 고마워. 봇치 데려와 줬구나."
"..."
"괜찮아, 봇치. 별 이야기 아니니까."
료는 히토리를 니지카가 있는 곳에 앉혔다. 오랜만에 보는 니지카는 반갑기야 했지만, 뭐랄까 복잡한 기분이 히토리 안에서 꿈틀거렸다.
"...봇치, 우리 다시 결속밴드를 하지 않을래?"
"...."
"실은 료가 새로 앨범을 내는데, 이번에는 결속 밴드의 이름으로 내고 싶다고 하서 말이야."
"알아. 넌 진작에 메이저 데뷔까지 했고, 우리는 그런 널 따라갈 수 없다는 것 쯤은. 그래도, 우린 봇치의 그 기타가 그리운걸."
고토 히토리는 망설였다. 자신이 홀로 메이저 데뷔를 한 후, 나머지 결속 밴드의 멤버들은 자신을 밀어주고, 뒤에서 응원해주었었다. 이후 야마다 료 역시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를 바탕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데뷔를 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결속 밴드가 해체되었다는 건 듣지 못 했다. 무엇보다, 그 멤버들 중에는 기타가 한 명 더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던 히토리는 말을 이었다.
"그, 근데... 키타 씨가..."
"걔는 얼마 전에 이미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갔다더라."
"아이돌이요..?"
생각치 못할 것은 아니었다. 키타의 그런 밝고 활동적인 분위기는, 뭐랄까 밴드보다는 아이돌에 가까운 그것이었으니. 하지만, 굳이 결속 밴드를 버리고 아이돌로 갈아탈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기도 하면서 또 그게 사실이라니 혼란만 가중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히토리였다.
하지만, 그걸 모두 제치고서도 자신은 밴드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해요. 저, 밴드는 좀 무리일지도..."
"봇치.."
"괘, 괜찮아! 아하하... 그럴 수도 있지! 료도 너무 마음 상하지 말고..."
"안 상했어."
료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무언가 욱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먼저 자리를 뜬다. 니지카는 그런 료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뒤이어 히토리 역시 따로 자리를 뜨는 바람에 큰 효과는 없었다고 볼 수 있었다.
고토 히토리는 카페에서 나온 뒤, 홀로 걸어갔다. 아마 그 집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토 히토리는 은행에 가서 통장을 보고는, 작은 자취방 하나는 세들어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집을 구했다.
"...."
옮길 짐도 없이 기타만 들고 세든 집에 바로 들어간 고토 히토리는, 교도소에서 그랬듯 무념하게 누워있었다. 히토리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찰을 할 기분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을 멈추고, 집 안에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런 히토리의 집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 것은 의외였다.
"...누, 누구세요..."
"고, 고토 히토리 씨 맞죠?! 저, 저..."
"...?"
"...당신의 팬이에요!"
"팬..."
고토 히토리는 문에 달려있는 작은 창으로 밖을 보았다. 확실히, 이 얼굴은 예전에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긴 갈색 머리. 확실히 아는 얼굴이었다. 자신을 처음으로 멀리서 응원해준, 자신에게 처음 생긴 '팬'의 얼굴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다. 히토리는 문을 열고 그녀를 맞이했다.
"...저, 여긴 무슨 일로.."
"그, 죄송해요, 갑자기 부동산에서 나오시는 걸 봐서..."
".....그래서, 용건이...?"
그녀의 팬을 자처하는 여자는, 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저...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