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글창작) 무거워
herobin32
2023-01-22 17:49:42
조회 703
추천 30
잔잔한 바다를 보는 듯한, 그 푸른 눈동자가 흔들린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시선을 바로잡아 나를 향하게 한다.
불안과 혼란이 뒤섞인 그 작은 눈동자에는, 긴장해버린 내 모습이 비춰진다.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더 이상 물러서는 것은 할 수 없었기에,
아니, 하고 싶지 않았기에,
단 몇 cm도 되지 않는 거리를 실감하며 그 거리를 점점 더 좁혀간다.
분명 당황스럽고 갑작스럽다는 듯 했지만, 밀쳐내지 않기에, 그 눈동자를 눈꺼풀로 뒤덮어버리고 가만히 받아 들여버리기에,
더 이상 거울처럼 비춰지는, 망설이는 내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그 부드러운 입술 위에 내 것을ㅡ
[삐리리 삐리리]
"으음..."
시끄럽게 나를 괴롭히는 알람을, 내 옆에 놓여져 있는 폰을 집어들어 끈다.
그대로 다시 누워 씻으러 가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방금까지의 실감나는 상황이 아닌 매일 아침 보는 천장.
피로감에 잠시 몽롱해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가,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오니 꿈 속에서의 기억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서서히 머릿속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덕분에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으..."
그대로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을 하며 체념한다.
친구랑 키스하는 꿈이라니,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가 싶었다.
어째서 이런 꿈을 꿨는지, 어째서 이렇게나 기억이 생생한지 그 어느것도 자의가 아니기에 알 수 없었다.
"학교 가자..."
하룻밤 사이 잔뜩 온 이소스타의 알림을 다 지우고, 폰을 집어 화장실로 향했다.
수돗물을 틀어 물이 따뜻해지기만을 기다리던 도중에도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생생한 기억.
그 꿈의 기억이 비디오 테이프로 재탄생한 기분이다.
계속해서 그 비디오 테이프가 머릿속에서 틀어지고 있다.
씻을 때도, 아침밥을 먹을 때도, 집에서 나설 때도.
꿈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의 공간을 가득 채워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학교였다.
"키타, 오늘도 기타 연습?"
"아, 응... 오늘은 못 놀지도"
그렇구나. 오늘도 기타 연습이 있구나.
내가 말하고, 내가 수긍한다.
평소라면 정말 기대되고 좋아했을 터인데, 오늘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잠시만"
그야 꿈 속에서 키스했던, 푸른 눈동자의 주인은...
"...역시 오늘은 노래방 갈까..."
히토리 쨩이었으니까.
방과 후, 빈 교실의 문 앞에 섰다.
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반은 농담이었고, 안 그래도 밴드에서 가장 뒤쳐지는 내가 연습 시간을 스스로 져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아 결국 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는 비디오 테이프를 재생시켜준다.
이런 비디오 테이프 같은 건, 그냥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버리고 싶은데 말이다.
들어가기 전에, 문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본다.
그 교실의 안에는 가지런한, 벚꽃과도 같은 색을 띠는 머리카락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신의 앞에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를 둔 채, 홀로 기타를 치고 있다.
그래, 그녀가 히토리 쨩이다.
"..."
그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문의 창가 쪽을 향한, 그러니까 나를 향한 히토리 쨩의 눈과 마주쳐버렸다.
"키,키타 쨩..?!"
우리 사이에 놓인 문이 어느 정도 소리를 막아주어서, 안 그래도 작은 히토리 쨩의 목소리가 묻혀버린다.
하지만 그 작은 목소리에도 반사적으로 문 뒤로 숨어버렸다.
히토리 쨩의 눈동자와 눈이 맞아버리니,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
심장이 조금씩 뛰는 느낌도 든다.
"에? 키,키타 쨩..."
한 층 더 침울해진 목소리에 아차 싶었던 나는 곧장 문을 열었다.
"아아~! 미안해! 뭘 떨어뜨려서~..."
허울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평소대로라면 상대쪽에서 피했을텐데, 지금은 내가 서로의 시선이 얾매이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아,아뇨, 괜찮아요..."
뭔가 히토리 쨩도 평소랑 살짝 다른 느낌이다.
어쨌든 기타 연습을 위해 히토리 쨩의 앞자리에 앉는다.
히토리 쨩이 누군가를 위해 비워두었던 그 자리에 말이다.
이렇게나 반짝이는 별 같이 빛나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니, 이런 특권은 나만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권... 특권이라...
왠지 모르게 미소가 나오게 되는, 그런 느낌이 드는 단어다.
"히토리 쨩, 오늘도 힘내자!"
잠시 꿈에 대한 기억은 집어넣고, 평소대로의 나를 연기한다.
"아, 네. 오늘도."
대답이 들려오며 그렇게 평소와 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둘의 기타 소리가 섞이고,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역시나 노래방 보다는 히토리 쨩이 있는 빈 교실이 좋다.
그 허무맹랑한 꿈 때문에 이 좋은 시간을 져버릴 뻔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한 편으로는 이해도 되긴 하지만...
그야 히토리 쨩이랑 키스하는 꿈이라니, 왠지 모르게 계속 신경쓰게 되어서 오늘도
"에, 아, 그, ㄴ,네...?"
히토리 쨩의 목소리에 고개를 히토리 쨩 쪽으로 돌린다.
어째서인지 히토리 쨩은 과부하가 걸려버려서, 말을 더듬고 있었다.
마침내 마주칠 수 있게 된 눈동자는, 당혹감과 혼란을 품고 있어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히토리 쨩?!"
놀라서 묻자 돌아오는 것은 충격적인 말.
"저,저저저,저랑 키,키키스하는 꿈이란게 도대체..."
"...뭐?"
어지럽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방금, 내가 소리내어서 말했던가? 무의식적으로?
...
바보인가, 나는?
큰일이다. 당사자에게 들키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없는데.
그것도 내 실수로 내가 직접...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히토리 쨩은 날 이제 어떻게 생각할까?
친구랑, 그것도 동성이랑 키스하는 꿈이라니, 평소에 할복이니 뭐니 말하며 자존감이 낮은 히토리 쨩도 경악할만한 이야기라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래서 히토리 쨩의 손을 내 두 손으로 꽉 부여잡고는,
"아,아니...
사실은 말야, 내가 오늘 히토리 쨩이랑 키스하는 꿈을 꿨는데 그게 계속 신경쓰이고 계속 생각나다보니까 말이 헛나온 것 같아. 이,잊어주지 않을래?"
결국 망가지고 말았다.
변명하길 포기하고 이실직고 해버렸다.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당황한 내 목소리는 빨라지고 떨리기까지 한다.
"에, 아, 넷"
항상 있는 밀어붙이는 것에 약한 히토리 쨩의 대답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반사적인 대답.
하지만 그 대답에 살짝 안심이 되는 것은 왜일까.
이걸로 됐다고 생각해서?
정말 이 한마디에 히토리 쨩이 방금 있었던 일을 전부 잊어준다는 약속이 담겨있다고 믿어서?
"그, 근데"
복잡한 내 머릿속을 뚫고 들어오는 히토리 쨩의 목소리.
"그러면...키타 쨩은 저를 좋아...하시는건가요...?"
그 기어가는 목소리로, 평소의 히토리 쨩이라면 하지 않았을 대담한 질문이 이어졌다.
"에..."
내,내가 히토리 쨩을 좋아한다니, 그건 친구로써를 물어본걸까?
아니면...
"아아... 죄송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질문하는거 기분 나쁘시죠? 저,전부 잊어주세요...!"
매번 있는 히토리 쨩의 자신없는 전언철회다.
그래도, 생각에 빠지게 된다.
히토리 쨩에 대한 감정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분명 료 선배와 같은 동경심이 시작점이었을 텐데,
그 동경심에 이끌려 히토리 쨩이 그려놓은 선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샌가 너무 멀리 와버려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미 히토리 쨩은 나에게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래, 친구 이상의 특별한 존재라고,
전부터 그렇게 생각 해왔을지도 모른다.
이게 사랑이라면 내가 그런 꿈을 꾼 이유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신경 쓰게되는 이유도 전부 설명이 된다.
혹시,
어쩌면 정말로,
"그렇네, 히토리 쨩을 좋아할 지도..."
내가 직접 내뱉은 말에 무책임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열기와 수치심이 발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지금 내 얼굴을 히토리 쨩이 보지 않았으면 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대로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보게되는 바닥의 무늬.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던게 언제였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 아아..."
앓는 듯한 소리가 들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슬쩍 보니, 히토리 쨩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그마한 소리를 내보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이 온 얼굴이 토마토처럼 변한 히토리 쨩은 나를 착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동요한다는 것은 얼떨결에 고백해버린 나에게는, 지금 불안감에 휩싸여있는 나에게는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기 쉬워저서 그만 착각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꿈 속에서 봤던 것처럼, 히토리 쨩의 작은 바다는 해일이라도 일어난 듯이 요동친다.
"...히토리 쨩은?"
"에? 아, 네?!"
그래서 무심코 답을 재촉한다.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이어지고,
심장은 터져버릴 것 같이 시끄럽게 군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머릿속의 소음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느껴진다.
이대로는 얼마 가지 못해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으니까 빨리 대답해줘, 히토리 쨩.
"아, 그..."
이따금씩 더듬거리며 내뱉는 소리들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한 어떤 추진력이라도 되는 것일까?
몇 번이고 봐왔었고 기다려왔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조금 길게 느껴진다.
"저,저기!! 죄,죄송함다!!"
"에? 히,히토리 쨩?!"
너에게 너무나도 큰 부담을 안겨버린 것일까.
히토리 쨩은 사과를 작별 인사 삼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마치 히토리 쨩을 처음 만나서, 휴먼 비트박스를 했을 때처럼 말이다.
다만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히토리 쨩을 따라갈만한 행동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
기타 소리도 들리지 않는 빈 교실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허무할 정도로 활짝 열려있는 문 밖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히토리 쨩이 도망가버린 이유를.
"이건 차였다...라고 해야하나...?"
보류라는 보험도 들이지 못한 채 대답을 피해져버렸다.
이건,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밖에.
갈 곳 잃은 시선은 한 지점에 도착했다.
히토리 쨩의 기타로.
히토리 쨩은 몸만 들고 가버린 것이었다.
...
그렇게나,
그렇게나 곤란했을까?
아무런 위화감 없이 홀로 놓인 기타가,
내가 전한 말이 히토리 쨩을 몰아세웠다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거절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니까, 히토리 쨩은.
어쩌다가 대답이 나와버려서, 수락해버리는 경우가 몇몇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근데 그런 히토리 쨩조차 대답을 피해버릴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표현해버렸다.
어쩌면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것이, 한 편으로는 히토리 쨩이 내가 무안하지 않도록, 이 관계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도 방금 전까지 미친 듯이 요동치던 심장은 잔잔한 수면처럼 안정되었다.
이대로 내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행동한다면 히토리 쨩은 분명 아무런 이의 없이 오늘의 일을 그대로 시간의 흐름에 흘려보낼 수 있다.
히토리 쨩이 그걸로 괜찮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하아..."
무엇부터 잘못된 걸까.
고백한 것?
히토리 쨩이 그런 질문을 한 것?
오늘 빈 교실에 온 것?
아니면 그런 꿈을 꾼 것?
애초에 히토리 쨩에게 고백이라던가, 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고백이 진심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물론 히토리 쨩을 동경한다고, 받쳐주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그건 사랑과는 별개다.
그야 그건 내가 료 선배에게도 가지고 있는 감정이니까.
만약 그것이 사랑이고, 그 붉은 실이 두 명과 이어졌다 하더라도 어째서 꿈에 나온 사람은 히토리 쨩인 걸까.
만약 오늘 잠에 들면 이번에는 료 선배가 나올까?
"..."
어쨌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고백을 한 것은 실수였다.
높은 벽이 쌓여있으니까.
그리고 그 벽은 '동성'이라는 그 무엇보다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졌으니까 혼자서 허물기에는 역부족이다.
더 이상 머릿속에서 비디오 테이프가 재생되지 않는 것은 희소식이었지만,
방금의 기억이 새로운 비디오가 되어 재생된다.
앞에 보이는 것은 덩그러니 놓여진 기타와 의자 뿐.
원래라면 이 의자에 앉아 그 기타를 들고 멋있는 연주를 하는 너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망쳐버렸다.
...
이제 그만 돌아갈까.
히토리 쨩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놀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깨작깨작 기타를 치는 오른손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가방을 등에 메고 교실을 나서려는 순간 히토리 쨩의 검은 기타가 눈에 띈다.
히토리 쨩이 다시 돌아올까?
"...나는 히토리 쨩을 잘 알아"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히토리 쨩은.
다시 돌아온다면 마주할지도 모르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항상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장롱 안의 먼지로 뒤덮인 기타를 가방에 넣어주고는, 오른손에 그 가방을 쥐고 집으로 향한다.
로인으로 히토리 쨩에게 기타를 가져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잠시 뒤에 '읽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잠시동안 화면 속을 들여다 봤지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폰을 도로 집어넣고 걸어가는 도중, 오른팔에 기타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건, 무겁구나.
ㅡㅡㅡㅡㅡㅡㅡㅡ
이런거 괜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