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글창작) 그것의 이름은

herobin32
2023-01-27 23:19:06
조회 475
추천 27


"안녕하세요..."

"어ㅡ그래"

스태리의 입구를 통해 계단을 내려오면, 바 앞에서 언제나처럼 노트북을 사용하시는 점장님이 보인다.

매번 이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하는 점장님이 오늘은 고마울지도 모르겠다.

나 지금 분명히 표정관리 못하고 있을테니까.

계단을 내려온 뒤에 신속히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의 문을 열어 재빨리 그 속에 몸을 집어놓고는, 내가 지나온 통로를 다시 막은 후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하아..."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고는, 기대어 있는 벽을 따라 주르륵 내려앉는다.

이 좁은 공간을 환하게 비추는 불빛이, 지금 나에게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렇게 잠시 동안 멍하니 가만히 있다가,
눈에 들어오는 세면대를 보고는 도로 일어나서 세면대 앞에 선다.

그러자 거울 속의 사람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그 한심한 얼굴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수도꼭지를 틀어 흘러가는 물에 손을 대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서 그대로 내 얼굴에 뿌린다.

피부로부터 온도를 빼앗아가버리는 이 차가운 물방울들이 나를 다잡아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이제 모두와 연습해야하니까 아까의 실수는 잠시 넣어두고 오로지 연주에만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다시 바깥으로 향했다.




"키타 쨩, 오늘은 어쩐지 뭔가~..."

연습 도중 계속해서 남발하는 실수들에, 이지치 선배가 한마디 한다.

당연히 평소에는 이렇지 않다.

어제와 오늘의 사건들이 나를 몇 번이고 걸고 넘어뜨려서, 상태는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오늘은 집중이 잘 안돼서... 다시 한번 해보면 안될까요?"

돌아가고 싶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

지친 몸과 마음을, 어딘가에서 홀로 위로하고 싶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택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쩐지...'

계속해서 평소에 얾매이고 있다.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어하던 '평범'이 그리워지는 순간.

하지만 밴드는 나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여럿이 이루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부탁한다.

이지치 선배는 료 선배와 눈을 마주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교환한 끝에 히토리 쨩을 한번 돌아본다.

그 후에 떨어지는 말.

"오늘은 여기서 해산할까"

갑작스러운 불호령에 당황하고 만다.

아직 합을 맞춘지 1시간은 커녕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여기서 해산이라니.

그 원인은 나에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만큼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없었다.

"아니, 정말로..."

"나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말야~"

분명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이상 입 밖으로 말을 꺼내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여기서는 그저 나한테 솔직해지자고, 선배에게는 감사를 전해두는 것으로 타협한다.

"료는 나랑 잠시 볼일이 있어서, 봇치 쨩이랑 먼저 가"

"어? 지금 해산할거면 집 갈 건데, 나"

"먹고 싶은거 사줄테니까"

"맛집 갈거라고. 먼저 가, 이쿠요"

나와 히토리 쨩과의 어색한 공기를 느꼈었구나, 이지치 선배.

그야 뭐, 스태리에 오고 나서는 히토리 쨩이랑 단 한마디도 말을 섞은 적이 없고,

히토리 쨩도 평소보다는 실수가 조금 있었으니까.

알아차리지 못하는 편이 더 이상하다.

그런 이지치 선배의 상냥한 배려는 고맙지만, 지금은 용기가 아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저, 그러면 화장실 좀 들렀다가 갈게요"

다시 비겁하게 숨어버린다.

역시, 지금은 마주볼 용기가 없다.

너의 그 가냘픈 마음에 흠집을 한번이라도 더 내어버린다면 나에게 수천, 수만 배로 되돌아와 나를 갈갈이 찢어놓을 것만 같아서, 결국 무능함에 몸이 잠식당한다.

"아~...그렇지! 지금부터 가게 청소할거라 화장실은 다른 곳에서 부탁해!"

"어엉? 무슨 이 시간에 청소를..."

"언니, 눈치 좀..."

"피곤한데 청소 하는거야?"

"료는 그냥 조용히 하고 있어..!"

굉장히 필사적인 이지치 선배를 보고 있자니, 한 번쯤은 뒤로 물러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선배는 우리 쪽을 힐긋 바라보고는 등 뒤를 떠밀며 바깥 쪽으로 우리들을 안내했다.

"어,어쨌든 조심해서 들어가!"

"아니, 저..."


눈 앞에서 매정하게 닫혀버린 문에 배신감을 느낀다.

바깥에 남겨진 것은 나와 히토리 쨩 둘 뿐.

늦지 않은 시간인데도, 해가 저물어 있었다.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의 불빛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밖에 없다.

분명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는데도 느껴지는 거리감이 너무나도 거대하다.

모처럼 이지치 선배가 만들어준 둘만의 시간.

그 시간을 적막으로 낭비하고 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히토리 쨩은, 그... 집가는 거야?"

몇 번이고 함께했던 순간이었기에 이미 답을 알면서도, 변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라도 너에게 향하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한참의 침묵 끝에, 의미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 네. 저야 항상 그렇죠 뭐..."

가로등의 불빛에 비치는 너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땅바닥을 향한 채 나를 봐주지 않는다.

그건 평소대로의 네 모습일까, 아니면 오늘만의 네 모습일까.

그것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되어서, 가슴 안쪽에서 욱씬거림이 느껴진다.

"그럼 내일 보자, 히토리 쨩"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아까의 기억에 기분 나쁜 감정이 등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런 나를 붙잡기라도 하듯이, 뒤에서 나를 부르는 히토리 쨩의 목소리.

"키,키타 쨩!"

너가 서있는 곳의 반대편을 바라본 채로, 막 움직이기 시작한 다리를 그 자리에 멈춰 세운다.

"...내일 봐요..."

그 목소리는 방금까지 담고 있던 목적을 지운 채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꺼내려던 말이 그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떠한 말도 되묻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에 히토리 쨩을 홀로 남겨놓고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

히토리 쨩이 아직 결속밴드에 없었을 무렵, 라이브 당일 날에  도망쳐 버리고 말았던 적이 있다.

기타를 칠 줄 모른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거짓으로 들어온 내가 모두에게 비난과 질타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아마도 그래서 결국 도망쳤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던, 그 순간의 뉘우침은 시간이 지나자 포장만 예쁜 말이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노력해서 만든 기회를, 기대를 다시 한번 저버렸다.

사과와 용서가 오간 후에 정식적으로 밴드에 들어온 후에는 나 스스로도 많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시간만이 흘러갔을 뿐, 바뀐 것은 없었다.

"...쨩!"

이미 뒤틀릴대로 뒤틀려버린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키타 쨩! 앞에!!"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덕에 퍼뜩 정신이 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빠아아앙

그러자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나에게로 돌진하는 거대한 트럭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어느샌가 나는 검은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를 향해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트럭에 공포를 느낄 틈도 없이 그대로...

"꺄악!"

그 거대한 트럭이 내 코 앞을 스쳐지나갔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에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고 있을 때, 팔에서 따뜻한 감각이 느껴졌다.

"허,허억...하아...키,키타 쨩...사,살아있는거죠, 그렇죠?"

내 팔을 꽉 쥔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히토리 쨩의 얼굴은, 공포에 가득 차있었다.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과 이마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식은땀에도 무슨 상황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트럭에서 뛰쳐내려 달려오는 아저씨를 보자, 모든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괜찮니? 다친 데 없어?"

"네에..."

우리들의 상태를 살피는 아저씨를 향해, 짧은 대답 밖에 내어주지 못한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사실에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방금 전의 일을 머릿속에서 되감으며 드는 생각.

나, 정말로 죽을 뻔했구나.





사각지대에서 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아저씨도 놀랐다고 한다.

책임은 분명 내 쪽에 있는데도,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전화하라고 아저씨가 전화번호를 남겨주시고는, 바쁜 업무가 있다고 해서 돌아가셨다.

가까스로 힘이 풀린 다리를 이끌고 일어났지만
히토리 쨩은 아직까지도 놓아줄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이, 놀란 얼굴로 내 팔을 붙들고 있다.

"히,히토리 쨩..."

이름을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기나긴 침묵.

그 뒤로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히토리 쨩이 안겨왔다.

"흑...흐윽...다행이에요..."

내 어깨에 파묻혀 우는 히토리 쨩을 가만히 받아준다.

나는 너에게 그렇게나 모질게 대했는데도, 너는 나를 구해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구나.

그 상냥함에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반해버릴 것만 같아서,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직 서투른 이 감정을 조절할 수 없어서, 내 의지와는 다르게 지금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린다.

이제, 거짓말은 싫다.

숨어버리는 것도, 도망쳐버리는 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너무나도 싫다.

솔직해지고 싶어.

솔직해질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히토리 쨩, 미안해...!"

입에서 말이 나오기 무섭게 흘러넘치는 눈물들이 나를 방해한다.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들이, 네가 항상 입는 저지 속에 스며든다.

"너를 울려버린 것도, 차갑게 말해버린 것도, 그냥 얼버무리려고 했던 것들 모두 다...!"

진실된 말들이 퍼지는 입 안은, 이렇게나 고통스러우면서도 편안하구나.

모든 걸 토해내 듯이 외치는 내 목소리만이 거리를 가득 채워서, 그것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미안해..."

뼈를 부서뜨릴 기세로 온 힘을 다해 너를 끌어안는다.

그 체온이 전달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고양감을 느끼게 되어서, 그 가녀린 등을 품에 안고서는 한참을 그 상태로 있는다.

이후는 생각하기 싫다.

아픈 기억으로 남더라도,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도 좋다.

더 이상 거짓된 나를 보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말을 꺼낸다.

"...저기, 히토리 쨩, 들려?"

가까스로 눈물을 그치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히토리 쨩과 맞닿아 있는 가슴 속의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내 감정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전달해주어서 죽을만큼 창피하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다.

"...네..."

어느샌가 울음을 멈춘 히토리 쨩은 그렇게 대답해주었다.

내 품에 안겨있는 히토리 쨩의 귀는, 완전히 빨개져서 익을 것만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게 솔직하게 드러나는, 그대로의 순수한 부분부터 시작되었을까.

그곳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역경과 거대한 장애물을 지나서 마침내 지금까지 도달했다.

"...이거, 왜 이러는지 알아?"

고동은 더욱 거세지고, 목소리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얼굴은 뜨겁고, 말 한마디조차 하기 힘들다.

"...아뇨..."

우리의 주위를 맴도는 저녁의 서늘한 공기는 열을 머금어가고, 빨간 물감이 번지듯이 볼은 빨갛게 상기된다.

칭찬을 해주면 저항 없이 기쁨이 드러나는 얼굴도,
무대에 들어서는 순간의 별과도 같이 빛나는 모습도,

되돌아보면 참을 수 없이 감정이 흘러 넘쳐버려서
그 새하얀 존재 속에 나라는 불순물을 끼워 넣고 만다.

내 안에서 상당히 거대한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너에게로 향하는 무언가.

전하기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입에 담기 가장 괴로우면서도 가장 입에 담고 싶은 것.

"...히토리 쨩을, 좋아하니까..."

그것은 분명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담화는...있으려나?




- dc official App
An error has occurred. This application may no longer respond until reloaded. Reloa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