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치 더 락과 화제의 '드라마성'

키타박사(1.239)
2023-03-07 13:55:07
조회 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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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까 웬 야마칸이라는 사람이 어쩌구 러키스타가 어쩌구 드라마성이 어쩌구하길래 슬쩍 훑어봤다

찾아보다가 니지카 키타 MBTI편 작성하기 전에 이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져서 이번 주제는 봇치 더 락의 드라마성이 되겠다



일단 선요약하자면 야마칸이라는 사람은 146% 봇치 더 락 애니메이션을 안 봤다고 할 수 있음



일상물, 특히 키라라 계열 일상물을 두고 영미권에서는 slice of life라고 장르명을 붙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장르는 일반적으로 '극적'이라고 볼 만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왜 이 장르가 극적이지 않냐면, 일상물이란게 애초에 '극적'인 것에 피로를 느낀 일부 소비층의 요구에 힘 입어 성장한 장르니까...

그런 면에서 케이온이나 봇치 더 락을 묶는 카테고리인 키라라계 일상물을 두고 드라마성을 방기했다고 하는 야마칸의 말이 완전히 빗나간 것은 아님


킹치만 하필 직접 언급하며 건드린 게 일상물 중에선 극히 예외사례인 봇치 더 락인 것이 문제였지



1. 드라마와 극적인 것


드라마는 행동하다는 뜻의 dran에서 나온 말인데 그리스어로 알고 있었지만 네이버 고대 그리스어 사전에 검색하면 또 안 나온다.

그치만 드라마라는 개념이 일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거의 확실함

시학에서는 드라마 대신 비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비극이란 현대 관점에서 생각하는 비극과는 좀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미리 짚고 넘어갈게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에 비극은 새드엔딩도 새드엔딩인데, 그보다는 위대한 인물의 일생과 그의 몰락으로 인해 관객이 영혼의 정화(=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걸 중요시하는 개념임

비극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행동의 형식을 통한 행동의 모방'이다.

모방은 그리스어로 미메시스인데 이것만 이해하려고 해도 꽤 장황한 내용이라 미메시스는 건너뛰고 저 아리송한 정의를 비전공자도 그나마 알아먹기 쉽게 번역을 하자면 의지(자각, 욕망, 목적)가 있는 행동이 바로 극적 행동이라는 말이다.

모든 극 중 등장인물이 이러한 극적 행동을 수행한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 갈등이다.

일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순응적, 점잖은 주인공으로부터 이러한 갈등이 발생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때문에 비극,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적인 인물이고 이는 주인공이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간단함


일상물의 주인공들이 일반적으로 의지를 가진 주체로 묘사되는가 생각해보면 왜 일상물이 드라마로 취급되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일상물의 주인공 및 주변인물들은 갈등 요소가 거세된 세계 속에서 평화롭고 목가적인 삶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괜히 미소녀 동물원 같은 말이 나오는 게 아니지


그런데 결속밴드 멤버들을 생각해보자.

봇붕이들이 맨날 결속밴드는 실존한다고 드립처럼 되뇌이는 건 단순히 과몰입을 씨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결속밴드는 키라라계 일상물치고는 각자 목적의식이 뚜렷한 주체로서의 성격이 알게모르게 강조된다.

결속밴드 내에서 제일 서사가 약하다고 평가받는 료조차 밴드를 하는 동기가 뚜렷하고 목표 의식도 드러나는데...

하다못해 조연인 세이카나 앞으로 나올 요요코, 포이즌 야미 같은 애들도 이 의지를 가진 행동을 수행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봇치 더 락에 일상물이라는 분류표를 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함

slice of life가 연속적인 삶의 일부분을 단순 일시정지하여 전시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임

봇치 더 락은 생각보다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slice가 단순 일시정지한 한 장면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면 안에 미장센이 곳곳에 배치되어 하나의 의미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고 그 화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또 몽타주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화에서 녹초가 된 니지카의 심신을 묘사하는 듯한 녹은 얼음컵이라던지




이건 몽타주 기법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아무튼 7~8화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숨은 연출 가라아게 떡밥이라던지


이런 연출들은 연속되는 삶의 순간순간을 단순 일시정지하여 외부에 전시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인물들이 살아숨쉬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요소들이다




2. 봇치 더 락과 영웅서사


드라마성 말고도 같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봇치 더 락에 은근히 깔려있는 영웅서사적 성격이다.

영웅에게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비범한 능력

2. 소속 공동체를 위한 희생 정신

3. 공동체 구성원의 추앙


모두 우상화와 무관하지 않은 키워드인데, 미국에선 특히 이런 우상화 성격의 서사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MCU, 특히 엔드게임만 봐도 신화적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인간적이고 목가적인 은퇴 이후의 삶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진흙탕 속에 빠진 현실의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언맨이 핑거스냅과 함께 세계를 구하고 장렬히 산화하는 모습의 대비를 통해 두 영웅의 우상화 작업을 거의 완벽하게 마무리지었음

페이즈4에서 그 위대한 유산들을 PC를 위해 다 꼬라박고는 있지만 ㅋㅋ


중국도 동아시아권에서 이런 영웅과 우상화 서사 제작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스포츠 영웅이 국위선양하는 내용이라거나 어딘가 굉장히 기시감이 든다면 그것은 2000년대 한국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 맞음


한편 한국과 일본은 어떠하냐? 이미 두 나라 모두 국가 소멸 전 라스트 댄스에 돌입했는지 영웅 만들기에 제법 회의적인 모습이다.

물론 아직 두 나라 모두 이세계로 넘어가서 활약하는 선생님들이 서브컬처에서 주류이긴 한데 이건 현실에서 더 이상 뭘 어찌 해볼수가 없는 개인들이 미개척지로 넘어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집단의식의 발로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적어도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영웅이 등장할 때 한일 양국 모두 그 인물이 정말로 영웅에 걸맞는 사람인지 의심하고 끊임없이 검증하고 있을 거다.


여기서 눈치챌 수 있는 것이 동조선과 서일본은 영웅의 등장은 갈망하고 있지만 우상화에 꽤나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봇치 더 락 얘기로 돌아와보자.

이게 우상화가 적용되는 단순 영웅서사였다면 봇치는 기타히어로로서 탈주기타로 인해 위기에 처한 결속밴드를 일방적으로 구원하는 스토리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니지카 료 키타는 봇치만을 바라보고 봇치에게만 의존하는 흔한 이세계물 플롯이 되었겠지


그런데 봇치는 기타히어로라는 비범한 신분과 능력을 가진 프로급 여고생 기타리스트라는 사기 스펙을 가지고도 합주에선 개벌레급 실력을 뽐내는 초보자가 된다

성격에 엄청난 결함이 있는 봇치를 결속밴드의 멤버들은 부둥부둥 케어해주고 어떻게든 사람 구실을 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고

봇치는 그 노력들에 힘 입어 오디션에서 1차 각성(5화), 라이브 관객을 덜 무서워하게 되고(6화), 라이브 중 망해버린 흐름을 과감한 기타 솔로로 끊어 버리고 리셋(8화)하는 등 공동체를 위해 성장하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8화는 영웅서사로서 봇치가 고점에 이르는 구간이면서, 한편으로는 이세계물로 가버릴 위기에 처한 구간이기도 하다.

니지카는 봇치가 기타히어로라는 걸 눈치채버리고, 비밀로 해왔던 꿈을 봇치에게 털어놓고 그 무게를 같이 짊어져주길 무의식적으로 원하게 되버리기 때문임

그렇게 불안불안하게 봇치가 성장한 듯 안 한 듯 이세계물로 가나 안가나 삐걱대는 도중 12화 라이브에서 줄이 끊어져버리는 대형사고가 일어나버리고 만다.

여기서 봇치 더 락은 이세계물로 안 가는 세계선이 확정된다고 볼 수 있는데 8화에서 봇치의 1인칭 시점에서 독백과 함께 봇치의 정신세계로 집중되는 연출이 12화에서는 봇치의 독백보다는 외부 세계가 더 중요시되는 연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 공식도 인정한 12화 해설만화 봇붕이들은 많이 봐서 익숙하겠지? 거기서 얼마나 많은 시선 교환이 있었고 눈치 싸움이 있었는지

12화는 봇치한테만 집중해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그 전말을 파악할 수가 없게 표현이 되어있음

결속밴드 네 명이 모두 각자 자리에서 닥쳐온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니까

그래서 봇치는 별, 그러니까 우상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었고 결속밴드 네 명이서 함께 별자리라는 새로운 의미체계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거임




결론: 별자리가 되고싶어는 단순한 띵곡이 아니라 봇치 애니 1기의 테마를 직접적으로 관통하는 곡이기 때문에 스킵하면 안 된다.




드라마의 악마 출현 덕분에 또 재미있게 써봤네

읽어줬다면 무한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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