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팬픽) 크싸레 세이카가 봇치를 개같이 1
ㅇㅇ
2023-03-13 03:51:56
조회 1084
추천 25
-삑 삑삑삑 띠리리.
막 식사 준비를 마친 초저녁. 타이밍 좋게도 도어락 여는 소리가 들려 현관으로 나갔다.
“왔어. 아우, 춥다.”
신발장에 기댄 남편이 요란스럽게 코트를 벗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우편물이 들려있다.
퇴근한 남편에게서 코트와 함께 우편물을 넘겨받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생했어요. 이건 뭐야?”
“우편함에 있더라고. 자기 앞으로 온 거 같던데? 내용은 안 봤어.”
남편은 허리를 숙여 내 배에 키스했다. 이어서 내게도 키스하더니 손을 씻으러 부엌으로 가버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 안방으로 향하며 우편의 겉봉을 살폈다.
“보낸 곳이... 시모키타자와 정신건강의학병원? 신종 기부 광고인가? 어디 보자, 발신자가....”
그리고 다음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에 코트를 놓치고 말았다.
-오챠노미즈의 마왕.
빛바랜 애틋함이 묻어있는 별명에 숨이 턱 막혔다. 방금까지의 고요한 평화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왜....”
그동안 연락 한번 없더니 갑자기?
전화도 메시지도 아니고 뜬금없이 편지라고? 발신지는 왜 정신병원이지?
나는 찌릿하게 아파오는 가슴을 한동안 손으로 누르고서야 겨우 상념의 바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코트를 주워 옷장에 걸고, 남편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안방 문을 살포시 닫았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수면등을 켰다.
-찌익.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펼치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장수도 많고 수필로 빼곡하게 적혀있어 읽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른 배 위로 손을 얹어 태동을 느꼈다.
“오챠노미즈의 마왕....”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지치 세이카’의 마지막 모습. 그것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며, 침착하게 첫머리를 읽어나갔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둘도 없는 나의 사운드 콤비, 리나에게.
***
둘도 없는 나의 사운드 콤비, 리나에게.
내게 이런 편지를 쓸 자격이 있는지 진심으로 고민해봤다. 이제는 결단을 내렸지만, 한심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네게 민폐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나 정말 미쳐버릴지도 몰라.
나는 만신창이가 된 내 도덕적 관념의 아주 작은 일부만이라도 깨끗이 닦아 세상에 남겨두고 싶었고,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네게 편지를 쓰고 있다.
부디 네가 여기까지 읽으면서 느낀 호기심이 이 편지를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보다 더 컸으면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전부 읽어주었으면 한다.
살면서 글이라고는 가사집 몇 번 끄적여본 게 전부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군.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아, 그래.
그게 좋겠다.
너도 기억하고 있을 동생의 장례식부터 이야기하자.
*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팀을 위해 기자재 운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왠지 그날따라 몸이 근질근질해서 운전 대타 좀 뛰고 오겠다던 니지카 자신의 실책이었을까?
어쩌면 교차로 신호등을 점검하던 한 인부의 실수로 원래는 빨간불이었을 타이밍에 파란불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나의 소중하고 가엾은, 시모키타자와의 대천사는 하필 그 순간에 트럭을 몰아 교차로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고.
당시 감식반이 내놓았던 분석에 따르면 횡단보도의 보행자들을 치고 지나가 버렸다면 운전자인 니지카는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니지카는 절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아이였어.
녀석은 다급히 핸들을 꺾어 인도의 가로수를 향해 돌진한다는 선택지를 골랐지. 자신이 그 사상의 피해자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공리주의와 이타주의를 선택한 거야.
감식반장이 몹시도 유감이라는 표정으로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지치 니지카 씨의 판단 덕분에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판단이 최선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그 아이가 판단한 최선의 선택이 우리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는 게.
연락을 받은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니지카는 시체 보관소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싸늘한 껍데기가 되어있었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나는 니지카에게 씌워져 있던 검은 천을 들춰낸 후에도 그것이 내 동생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어.
인간의 신체가 맞나 싶을 만큼 기이한 구조로 찌그러진 소녀. 그녀의 샛노란 머리칼을 만지면서도, 어째서인지 그것이 니지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거야.
‘이건 이미 시체잖아? 니지카가 죽을 리가 없는데. 그러면 이 시체는 니지카가 아니군. 뭐야, 별일 아니네.’
그래서 보험 회사에서 왔다느니, 지역 신문사에서 왔다느니 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병원에서 뛰쳐나가 버렸지.
내가 니지카의 죽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건 장례식이 전부 끝난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부엌에서 토스트 굽는 소리나 커피 내리는 소리가 나질 않는 거야.
식장에서 관을 들었을 때도. 결속 밴드 꼬맹이들이 울음을 터트렸을 때도. 리나 네가 내 멱살을 잡고 니지카를 살려내라며 비명을 질렀을 때도 실감하지 못했던 감각이, 그제야 평범한 일상에서 솟아나 현실을 일깨우더군.
첫날엔 식음을 전폐했고, 둘째 날엔 하루 종일 울었다.
하지만 셋째 날이 찾아오자 문득 화가 치밀었어.
그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나는 더 이상 일상을 살아갈 수 없는 니자카가 불쌍해서 슬펐던 게 아니야.
세이카가 니지카를 잃었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었던 거지.
그걸 깨달은 후로는 매일 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모멸감을 곱씹어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네 말이 전부 맞았다, 리나.
나는 최악의 언니고 동생을 죽인 건 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해도 내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살해당했던 거야, 니지카는.
장례식을 끝으로 나나 스태리 직원들과 연락을 끊어버린 네 마음도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리나, 나는 시시콜콜한 변명으로 너와의 옛 우정을 복구하려 할 만큼 양심 없는 얼간이는 아니야.
말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지.
나는 이제부터 이지치 세이카라는 년이 얼마나 잔인하고 구제할 길이 없는 쓰레기인지 설명하려고 한다.
오직 이 길뿐이야.
결속 밴드를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만들 방법은.
*
인간이 괴로워해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그건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어.
추풍낙엽과 함께 찾아온 세월의 법칙이 점차 니지카의 빈자리를 감추는 듯했다.
나는 어느 날 불쑥 스태리에 출근했고, 스탭들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묵묵히 나를 맞이해줬다.
할 일이 많았다.
그동안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를 스탭들이 맡아주고 있었기 때문에 재검토해야 할 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어.
놀랍게도 일에 집중하다 보니 니지카의 일은 까맣게 잊혔다.
나는 일부러 더 무리해가며 라이브 하우스를 돌봤지. 슬퍼할 겨를조차 없도록 스스로를 몰아붙인 거야.
PA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결속 밴드 꼬맹이들은 장례식 이후로 몇 번 모임을 가지다가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리더인 니지카의 부재가 밴드 전체에 기술적, 정신적 타격을 준 거 같더군.
녀석들에게 연락을 돌려볼까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나로서는 어떻게든 결속 밴드를 부활시키고 싶었지만... 당사자들에게 강요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어?
대신 나는 다른 신생 밴드와 하우스 공연팀들을 주목하기로 했다.
근래 정석적인 록보다 믹스쳐 록이나 와록을 신봉하는 밴드의 비율이 많아져서 자연스레 내 취향도 그쪽으로 기울었다.
하우스 매출은 꾸준히 상승세를 그렸고, 직원들과의 분쟁도 없었다. 초겨울쯤에는 스태리에서 공연한 뉴 메탈 밴드 하나가 sns에서 화제가 되어 덩달아 하우스 유입도 늘었다.
리나 너도 공감하겠지만, 음악이 지닌 마약과의 유일한 차이점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든다는 거지.
음악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나 자신도 놀랄 만큼 극적인 변화들이 생겨났다.
주변인들이 내가 전보다 많이 웃는다며 보기 좋다고 칭찬했다.
스탭들의 권유로 휴일에는 무대에 서보기도 했다. 수년만에 다시 작곡을 공부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지.
그 일련의 과정은 뭐랄까... 오래된 꿈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았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적에 놓아버린, 니지카에게 떠넘기듯이 맡겨버린 그 꿈 말이야.
어느새 니지카나 결속 밴드는 아득한 추억 정도로만 남아있게 됐다. 하지만 전처럼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하지는 않았어.
어렴풋이 내 안의 뭔가가 어긋나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행복했다. 아니, 행복해야만 했다.
내가 니지카의 몫까지 짊어지고 있으니까.
그 아이와 결속 밴드의 음악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 아.... 오랜만이에요. 점장님....”
바로 그때였다.
“너... 봇치짱?”
수척해진 얼굴의 고토 히토리가 2년 만에 스태리에 찾아온 것은.
“여, 연습실 좀 빌리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