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소설,재업)키타와 고독과 푸른행성

ㅇㅇ
2023-06-06 21:59:15
조회 1317
추천 31










분량이 매우 긴 편이므로 시간 없으신 분들은 뒤로가기


심심하면 읽어 줘


노래랑 감상하면 더 좋아요~








저, 키타 이쿠요는 밴드의 걸림돌이 밖에 안 되어 밴드에서 나오려고 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밴드 멤버와 함께 했던 오디션에 있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된 저는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 새로 친해진 친구들에게 밴드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중 우연찮게도 밴드에 관심이 많이 있던 한 친구가 저에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결속 밴드의 멤버냐고 묻자 맞다고 대답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환한 표정으로 물어봤습니다.


"그럼, 거기에 기타치시는 분.. 혹시 진짜 기타 히어로..?"


어느새 이런 소문이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짓을 답할 순 없었기에 웃으며 고개를 뜨덕였습니다.


"진짜?! 나 진짜 완전 팬인데 싸인해주면 안 돼?!"


"본인한테 물어봐야할 거 같은데.. 히토리쨩이라면 팬이라면 엄청 좋아 할거야. 된다면 나중에 가져와 줄게!"


가식 섞인 웃음으로 대답해주자 좋아하는 친구의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은 좋아졌지만, 반면에 안쓰러운 감정도 있었습니다. 히토리쨩, 인기가 많구나. 내 노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까? 라이브를 하면서 늘 느끼던 감정이었습니다. 사람과 대할때도, 라이브를 할 때도, 누구에게 맞추는 건 정말 잘했지만 정작 저의 노래와 기타 실력에 대해 생각해보니 다른 멤버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력도 없고, 재능도 없어. 멤버 사이에 두각을 비추는 장점은 하나도 없는 건 저 자신조차도 잘 알고 있었기에 최근엔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멤버들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그런 소외감을.


홀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밴드를 좋아하는 친구가 최근에 오디션을 하고 있으니 밴드 멤버끼리 오디션을 한 번 도전해보지 않겠냐는 고마운 의견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근엔 라이브 일정도 없었고 니지카 선배가 일정이 없어 심심하다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어 좋은 일이 될 거 같아 고맙다고 말하고 친구들과 놀다 헤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벌써 밤이 되었습니다. 비가 한 방울 떨어졌습니다. 비가 내리나 싶어 위를 쳐다봤습니다. 별자리. 시모키타자와 도심지에서 빛나는 별 하나. 흐린 날씨였지만 유독 환하게 빛나고 있어 눈길이 갔습니다. 구름 사이에 흐릿하게 끼어 있음에도 늘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 별자리는 마치 나는 여기있다고 발버둥치는 소녀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최근이 되어서야 이지치 선배의 꿈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지치 선배는 첫 라이브때 갔던 이자카야 앞에서 말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좋아하던 밴드활동을 포기해버린 세이카 언니를 대신해 인기 있는 밴드가 되는 것이었다고. 그제야 밴드 활동에 필사적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 그 꿈의 첫 걸음을 망쳐버리게 할려 했던 장본인이었다는 거에 자신에게 더욱 환멸감이 들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과거에 있던 일을 재차 사과 하자 이지치 선배는 괜찮다며 웃어주었습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고개를 한 번 더 숙이려하자 이지치 선배가 도라에몽처럼 주먹을 쥐고 머리에 콩,하고 꿀밤 한 대를 때렸습니다. 아파.


과거에 한 번은 히토리쨩에 대해 료 선배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히토리쨩은 대학을 안 간다고 했는데 아시는거 있으신가요라고 묻자 료 선배는 봇치는 기타로 먹고 살고 있으니 상관 없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휴대폰 사이트에서 한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예리한 칼을 가는 장인처럼 기타를 치는 한 사람의 영상을. 몇 년전의 영상이었지만 경외감을 느낄 정도로의 기타 실력이었습니다. 이 동영상의 주인이 봇치야라고 료 선배가 말하자 저는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유튜브에서 기타를 치고 있던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몇 년전의 영상임에도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의 히토리쨩은 얼마나 더 발전해 있을까. 과연 히토리쨩을 내가 받쳐줄 수 있을까? 실은 나는 이 밴드에 필요가 없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기타 보컬, 오오츠키상을 만났습니다. 1등에 고집하는 승부욕의 화신 같은 사람이었지만 무대에 오르면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기타 보컬이였습니다. 오오츠키상이 원맨 라이브를 히토리쨩과 함께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적지 시찰이라는 의미로 보러 갔다가 결국은 즐기게 되어버린 꼴이 됐지만, 오오츠키상은 개성 있는 목소리로 무대를 휘어잡고 리듬감 있는 기타는 관객을 사로 잡았습니다. 많은 환호성이 울렸고, 같이 보러 왔던 히토리쨩은 눈을 빛내며 오오츠키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을 울리는, 자신이 여기 있다고 말하는 듯이 강한 빛을 바라는, 성좌 같은 빛을 내는 한 소녀를.


빛이 나. 반면에. 나는... 나 혼자서 저런 무대를 해낼 수 있을까. 결속 밴드의 멤버는 실은 저 사람이어야 했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부정적인 마음을 누르고 눌러, 계절은 변해갔습니다.




멤버들에게 오디션을 한 번 가보자는 의견을 말해보자 니지카 선배는 좋네 하자라며 해맑은 미소를 건네왔습니다. 료 선배 또한 요즘 자극이 부족했었다며 풀을 뜯으며 말했습니다. 그 옆엔 자연스럽게 풀을 조공하는 히토리쨩이 있었습니다. 늘 있던 일이었기에 화제를 넘기려하려다가 니지카 선배가 또 빚졌냐며 딴지를 걸었습니다. 료 선배는 최근에 또 봇치한테 빚을 값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이제 풀 좀 그만 뜯어주세요.. 그러다 몸 상해요.."


"맞다구! 봇치쨩 말 좀 들어! 료! 키타쨩! 너도 뭐라 한 마디 해 줘!"


"이쿠요오오..."


만담을 방영하는 개그 프로그램 같은 셋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지어졌습니다. 저는 역시 이 밴드가 너무나 좋습니다. 언제나 가족같은 분위기를 유지해주는 이 가족이. 저는... 너무나도. 좋아져 버렸습니다. 절대 벗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사건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만장일치로 연습을 마치고 난 이후, 저희 결속 밴드는 오디션장에 들어섰습니다. 많은 밴드 멤버들이 심사장을 들락날락 거렸습니다. 한 밴드 멤버는 울면서 심사장을 나왔습니다. 심사원이 독한 사람이 왔다고 심사장 내부가 소란스러웠습니다. 살벌한 긴장감이 유지되면서 천천히 저희 차례가 왔습니다. 오디션을 통과하면 이지치 선배와 모두의 꿈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어. 내가.. 내가 모두를 받쳐야 해. 할 수 있어. 기타를 들고 굳게 서 있는 앰프들 사이로 넘어 들어왔습니다. 1명의 심사위원이 무대 앞에 앉아 있었고 날카로운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습니다.


"듣겠습니다. 시작해주세요."




결속 밴드의 노래가 끝나고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시선을 아래로 한 채 공책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남성은 한숨을 뱉으며 딱 한마디를 뱉었습니다.


"왜 10년차 장인 멤버들 사이에서 햇병아리가 있는 건가요? 특히 역할 중 제일 중요한 기타 보컬이."


한 마디에,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핵심을 찌르는 단 한 마디었습니다.


"기타는 그렇다고 쳐요. 연습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니까요. 또 기타의 감정의 역할은 메인 기타가 담당하면 돼요. 그렇게 하기 위해 메인 기타를 남겨 두는 거니깐. 그런데 보컬에선 기타를 뛰어넘는 감정선을 뱉어내야 해요.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기타와 드럼, 베이스를 모두를 치고 나가야 하는데 키타씨의 목소리엔 그러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요. 오히려 기타에 끌려 다녀요. 잡아 먹혔어요. 그냥 부르면 되겠지. 모두에게 민폐 끼치지 말아야지. 받쳐야지. 자신이 보이질 않아요.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제일 중요한 보컬이 다른 멤버들 떠 받드는데 바빠요. 그 목소리에서 자신이 어딨어요? 이럼 밴드에 민폐에요! 저 셋 한테. 왜 밴드에 있는 거에요? 뭐 밴드 놀려고 왔어요?"


"아니 말이 너무.."


히토리쨩이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할려 했기에 저는 손짓으로 만류했습니다. 히토리쨩은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밴드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걸. 저는 필사적으로 밴드를 바칠 마음이 없다는 걸 예리하게 간파당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손으로 기타를 부러질 듯 쥐었습니다. 심사위원분은 독설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아니 너무 안타깝잖아요. 왜 그러는 거에요? 1년전에 결속 밴드 라이브 저도 한 번 가 봤어요. 스태리에서 활동 할 때 부터 세이카씨에게 들었던 유망주였어요. 밴드계에서 이름 크게 날렸던 세이카씨가 그렇게까지 말하길래 어떤 인물인지 알아 볼려구요. 정말 좋았어요. 근데 보컬만, 그 때 부터 늘 그랬어요! 심지어 그때랑 다를 바가 없어. 아니, 그 보다 더 안 좋아. 지금 감정에는 나아가려는 감정조차도 보이지 않아. 1년이 지났는데 달라지기는커녕 더 못해졌어. 왜?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에 오오츠키상이나 다른 유망주 기타 보컬 넣으면 무조건.."


"아, 그만 지껄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히토리쨩에 모두가 놀라 히토리쨩을 바라 보았습니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에 겁이 많았던 히토리쨩이 언성을 높히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정말 나는.. 저는 눈물을 훔치며 기타를 내 던지고 심사장 뛰어 나갔습니다. 모두가 날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 채 계속 뛰어나갔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 동안 멤버들에게 발목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꿈엔 저는 그저 방해꾼이었을 뿐이였습니다.


심사장 밖으로 나서자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걸 알았지만 비를 맞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골목길을 돌아서 뛰어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차올라 다리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습니다. 도로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다 지쳐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멈추지 않는 빗속에서, 멈추지 않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빗소리에 내 목소리를 담듯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한 없이 울었습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초 겨울의 비를 맞아 집에 도착했을 땐 자연스럽게 감기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머릿속이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몽롱한 상태로 있는 그러한 상태. 어지럼증에 벽을 짚었습니다. 대학에 가까이 있는 월세방에 홀로 있는 풍경. 처음 방을 마련했을 땐 자립 했다는 기분에 드디어 잔소리 많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났다고 좋아했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한 마디가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귀여운 것들을 모아둔 저의 침실 방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곡을 연습하기 위해 만들어 둔 방에 들어갔습니다. 가지런히 정리된 악보들을 하나씩 집어 열어보았습니다. C코드,E코드, 배킹 반주에 대한 연습, 슬라이드, 해머링같은 기타 테크닉에 관한 자료들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기타를 연습해야 돼. 모두를 받쳐줘야 해.'


항상 책상 옆에 두었던 기타가 없었기에 기타를 찾기 위해 거실에 혹여나 기타가 있나 찾아 보았습니다. 거실 옆에 매일 두지 않았으면, 혹시 내가 방에 들렀었나? 방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싱크대에 있나 싶어 싱크대 주변도 뒤졌습니다. 그렇게 10분을 지나도 찾지를 못하자 그제야 심사장에 기타를 내 던지고 온 것을 떠올렸습니다. 중증이구나. 감기 기운에 쓰러지듯 책상 앞 의자에 앉아있자 심사장에 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럼 밴드에 민폐에요! 저 셋 한테. 1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없어. 여기에 오오츠키상이나 다른 유망주 기타 보컬 넣으면 무조건.. 무조건.. 멤버들은, 더 멀리. 모두가 더 빠르게 행복해졌을거야.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훔치려다 악보 옆으로 무언가 흘러내리듯 책이 넘어졌습니다. 어지럼증과 눈물에 흐릿하게 보였지만 보컬이라는 문구가 들어왔습니다.


'맞아, 나 보컬이었지.'


몇 년을 그녀들과 함께 밴드를 했음에도 어리석은 키타 이쿠요는 이제서야 자신이 보컬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연습해야 돼. 노래를 불렀습니다. 멤버들을 떠 받쳐야 해. 노래를 다시 불렀습니다. 목이 점점 건조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멤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노래를 또 다시 불렀습니다. 목이 타들어가도 몇 시간이 지나던, 그냥, 그냥 불렀습니다. 지금 속으로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지고서.


이대로.. 멤버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넓디 넓은 이 푸른 행성에서,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많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친해지며 재미있게, 만족해온 학교생활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기에.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베이스를 치던 소녀에게 눈길이 갔을까.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드럽을 치던 소녀에게 눈길이 갔을까.

홀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기타를 치던 소녀에게 눈길이 갔을 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의식이 깨어났습니다. 이마 위에 차가운 무언가가 가지런히 올라가 있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침대 옆엔 이지치 선배가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어제 보컬 연습을 하다 쓰러졌다는 걸 깨닫고 선배에게 말을 걸으려 했습니다. 기침과 함께 목에서 격통이 느껴졌습니다. 기침 소리에 어깨를 흠칫거리며 입가를 닦는 이지치 선배는 정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키타쨩! 괜찮아? 어디 안 아파? 방 안에 쓰러져 있었는데 열이 상당했었다구!"


"저.. 정말 괜찮아요."


저는 격통을 참고 이지치 선배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지치 선배는 저의 목소리를 듣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안 되겠다. 병원 가야겠어. 료 최근에 면허증 땄으니깐... 아니다. 료는 못 믿겠다. 택시 불러야겠어. 악보가 책상위에 널브러져 있어서 설마 설마 했었는데 감기가 걸린 상태로 노래를 불러서 아예 목소리가 바뀔 정도로.... 하, 아니야.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저기 xxx번지 xx인데요. 택시 빠르게 한 대만 여기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


저는 기침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 모습에 이지치 선배는 걱정스러웠는지 전화를 하는 도중이었음에도 저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선배의 손은 따뜻했습니다. 이지치 선배 상냥해. 헤헤헤 하며 해맑게 웃자 이지치 선배는 웃음이 나오냐며 딴지를 걸었습니다. 선배는 택시가 올 때 까지 저의 손을 붙잡으며 저의 옆에 있어주었습니다.


병원의 검사 결과 성대결절까진 아니지만 당분간은 목을 쓰는 일을 자제하라고 했고, 감기 기운과 더불어 경과를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며 하루 입원을 하라는 권유 또한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같이 듣던 이지치 선배는 병실에 누워있는 저를 바라보며 당분간은 밴드활동은 절대 금지라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저는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이지치 선배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완고하게 말했습니다.


".....기분은 알지만 절대 안 돼. 감기가 나으면 차라리 기타를 쳐. 기타 가져와 줄 게. 검사 때문에 하루 입원할 정도인데 무리 하면 안 돼. 말로 대답도 하지 마. 고개를 끄덕여. 알겠지?"


저는 어머니에게만 보여주었던 설득용 필살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병실 이불에 얼굴을 반쯤 넣은 채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어떻게든 안 되나요? 선배? 이지치 선배는 윽,하며 저의 간절한 눈빛을 피하듯 시선을 돌렸습니다만 결국 손날치기로 머리를 콩하고 맞아버렸습니다. 치사해. 이지치 선배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넸습니다.


"료한테 병문안 오라고 전화 해야겠다. 봇치쨩에게는... 아무래도 못하겠네."


히토리쨩이 못와? 저는 이지치 선배에게 의문의 표정을 보여주자 곤란한 듯 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한숨을 쉬면서 대답해주었습니다.


"봇치쨩.. 실은 어제 키타쨩 찾으려고 하루 종일 비맞으면서 심사장 주변을 몇 시간이나 돌아 다녔거든. 그래서 키타짱처럼 똑같이 감기 걸린 채로 집에 있어."


"네?! 히토리쨩... 콜록! 콜록!"


"아아! 말하지 말라니깐. 물 가져올 게."


기침을 하던 저에게 이지치 선배가 가져온 물을 마셨습니다. 이지치 선배는 조금 망설이다 어제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심사위원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키타쨩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키타쨩이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왔는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심사장을 박차고 나와 키타쨩을 전속력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키타쟝과 날 어떻게든 떨어뜨리려고 하는 하늘의 저주인거 같아 더욱 화가났다. 저 너머로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키타쨩의 모습이 보인거 같았다. 키타쨩이 보인 방향으로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기 시작했다. 평소에 운동을 싫어해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이번만큼은 정말 원망스러웠다. 숨이 차도 계속 달렸다. 눈물을 훔치며 달아나는 키타상이 떠올랐다. 항상 환하게 웃으며 나를 지켜주던, 내 어두운 학창 시절을 구해준 히어로가 눈물을 흘리는 그 장면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이대로 놓치면 안 될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을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면 놓치고 말아.. 그것만은.. 절대 안 돼..! 나는 젖 먹던 힘을 다 해 달려가 키타쨩의 손 목을 잡았다.


"키타쨩!!"


손목을 잡자 키타쨩이 아닌 다른 여성이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뒷 모습이 닮아 착각을 해버렸다. 낯선 사람과는 너무나도 대하기 힘들었던 나는 어버버거리기 바빴고 손목을 붙잡힌 여성은 뭐냐는 듯이 노려보고는 내 손을 뿌리치고 가버렸다. 오늘도 흑역사 한 페이지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심사장 주변을 돌아 다니며 키타쨩이 지나간 흔적을 찾으려 했다. 주택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의 구석에도, 큰 번화가로 이어지는 큰 도로로, 그리고 혹시나 기타를 다시 주우러 심사상 주변의 거리로 돌아왔을까 하고 다시 심사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마음속에 깊게 박힌 감정을 품으며, 다시 달렸다.


이대로... 키타쨩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이지치 선배는 히토리쨩의 이야기를 마치고 주머니 속에 울리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세이카씨에게 온 전화인듯 싶었고 오디션에 관한 결과 발표와 라이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전화를 마치고는 이지치 선배는 급한 용무가 생겼다면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오히려 신세를 졌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니지카 선배를 보내줬습니다. 홀로 남아 있어 쓸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러한 감정도 잠시, 보고 싶었던 료 선배가 어제 심사장에 내 던지고 간 기타를 가지고 병문안을 와줬습니다. 병문안을 와준게 너무나 고마워서 표현을 하려던 순간 료 선배는 기타를 건네주며 훌쩍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이쿠요.. 내가 빌려준 기타가 그렇게 싫었던 거야?"


살짝 눈물이 맺힌 료 선배의 모습에 히토리쨩이 얼굴을 흔들었던 것처럼 저도 극구 부정하듯 흔들었습니다. 그 모습에 료 선배는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역시 이쿠요. 점점 봇치를 닮아가는게 마음에 들어. 선배의 말에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 순간 헤벌쭉 해졌습니다. 료 선배는 덩달아 좋아해주었습니다. 그 헤벌쭉한 표정도 역시 봇치를 닮았어. 기타를 배우면서 같이 배웠나 보구나. 히토리쨩에게 배운 건 아니었지만 료 선배가 좋아해주니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료 선배에게 기타를 받은 후,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종이에 글을 적는 식으로 료 선배에게 필담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카페나, 최근에 들었던 곡들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마음에 걸리는 마음을 적어내렸습니다. 오디션에 있던, 그 일을.


[저는 결속밴드에 어울리지 않는거 같아요]


저의 한 마디에 료 선배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더니, 투명하고 맑은 눈으로 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글을 다시 써내려 나갔습니다.


[밴드에선 저는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기타도 히토리쨩을 받쳐줄 뿐이고, 보컬마저도 기타에 잡아먹힌 허접한 실력. 모두를 받쳐주기만 하는 그저 그런 반푼이 보컬. 아무것도 없는, 그런 보컬.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특출나고, 빛나고 있는데 저만 없었다면 밴드는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요?]


글을 본 료 선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뜨더니 잠시 가만히 있더니 고민 하듯 두 눈을 반쯤 감았습니다. 길게 늘어진 속 눈썹, 카리스마 있는, 제가 동경하던 료 선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모습이었습니다. 료 선배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너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가 해야 할 일은 뭐라고 생각해?"


제가.. 할 수 있는 일. 당연히 밴드에 민폐를 끼치지 않게 연습을 해야한다고 글을 적어내리자 료 선배는 저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연습을 한다는 것 자체는 맞아. 밴드는 결국 우리 멤버간의 조화이니깐. 연습이라기보단, 교류야. 악기라는 각각 다른 감정에 깃든 교류. 우리는 그 감정들을 조율하기 위해 드럼이 리듬을 맞추고, 베이스가 토대를 잡아주고, 기타로 치고 나가고. 보컬은 빛나는 거야. 그러한 과정들은 연습을 통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니깐.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해 보는게 직접 빠르니깐 연습을 통해 이미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의 너의 감정이야. 밴드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착각으로 이뤄진 감정. 진지한 표정으로 료 선배는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떠 받든다. 자신의 목소리가 없다. 심사위원처럼 말을 심하게 할 필요까진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너의 목소리에서 어느 정도 그런 감정을 느꼈어. 최근에는 그 감정이 더 무거워졌지. 최근에, 혹시 니지카에 대해 무슨 이야기라도 들었었니?"


쪽집게처럼 정확한 료 선배의 지적에 속으로 감탄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지치 선배의 꿈에 대해 본인에게 들은 적이 있다고 글을 적어내리자 료 선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감정이 무거워질 수밖에.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밴드 멤버 한명의 실수는 밴드 모두의 잘 못이야. 예전에도 말했지? 멤버들의 고통은 4분의 1이라고. 너를 케어해주지 못한 니지카의 실수고, 신경써주지 못한 나와 봇치의 몫이기도 해. 그리고 니지카의 꿈은 생각하면 나도 버거우니깐. 니지카를 너무 싫어하진 말아 줘."


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격하게 부정했습니다. 이지치 선배를 싫어한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를. 료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쿠요. 밴드 활동에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 멤버 둘이 대학을 안 가긴 했지만 봇치짱은 유x브 조회수 빨아먹으면서 어떻게든 살거고, 난 부모님이 부자니깐. 여차하면 부모님 등에 타야지. 니지카는... 니지카는 엄마니깐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


니지카 선배가 엄마라는 말에 너무나 닮은거 같아 미소가 지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료 선배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쿠요. 너는 너가 원하는 감정을 찾아가면 돼. 그런 감정을 못 찾겠다면 생각을 해. 생각을 못한다면 여러 번 행동해 봐.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습해서 내질러. 그럼에도 정답을 찾지 못해서 목이 쉴 지도 몰라. 목을 다시 쉬었다가 그 감정들을 찾아나서겠지. 정말 지쳐서 한 번은 오래 쉬게 될 지도 몰라. 정말.. 정말 힘들어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전까지 필사적으로 찾는거야. 그렇게 필사적으로 파고, 또 파고 또 다시 파내어서 진심으로 닿고 싶다고 마음이 간절하게 바라게 됐을 때."


그게 진짜 너 자신이 되어 있을 거야.





료 선배가 가고 밤이 되었습니다. 적적함이 흐르는 병실 안.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료 선배의 말을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 제 자신은 어떤 걸까요? 생각에 잠겨 있자 병실 문 쪽에서 조용히 문이 열리고 저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걸음은 가까워졌고 커튼을 걷으려 하길래 간호사 분이신가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놀라고 말았습니다.


"키타쨩.. 몸은 괜찮으세요..?"


저에게 말을 걸어왔던 건 병실에 몰래 들어온 히토리쨩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병실을 알고 왔냐고 히토리쨩에게 물었더니 라인으로 료 선배가 주소를 보내주었다고 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휴대폰을 다시 들어 글귀를 적어나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기 걸렸다고 했는데 몸은 괜찮아?]


히토리쨩에게 이 글귀를 보여주니 방정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감기 따위 써내려 갔던 가사처럼 식은 죽 먹기에요. 휙 하면 나을거에요! 활발하게 드럼 스틱을 치는 행동을 취하며 까부는 히토리쨩의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그 행동 속엔 저를 배려하는 모습이 있었다는 것 조차도 알고 있었기에 안쓰러운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소녀가 어째서 학창 시절을 홀로 보냈을까요.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많은게 바뀌었을까요.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저는 이런 무력감을 느낄 수 없지 않았을까요. 밀려오는 슬픔에 일그러지는 저는 고개를 떨궜습니다.


저의 모습을 보고 히토리쨩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옵니다.


"키타상이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결속밴드는 없어요."


저 또한 여기에 있지 않았을 거구요. 저는 히토리쨩에 말에 놀라 고개를 들어 히토리쨩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깨지지 않는, 결연한 표정을 지은 히토리쨩. 라이브에서 항상 밴드의 위기를 구해주었던 기타 히어로가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가사를 쓰면서 최근 글을 읽는 일이 많아졌어요. 료 선배에게서 좋은 가사는 좋은 소설이나 시에서 자주 인용한다고 들었거든요. 연기설이라고 아시나요? 불교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에요.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설이에요. 저는 3년간 6시간 동안 꾸준히 홀로 기타를 쳤어요. 세계 평화... 그런 거창한 것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요. 친구를 원했거든요. 누군가 제 기타를 들어주면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인기인이 되고 싶어 기타를 시작했어요. 죄송해요. 그땐 거짓말을 해서."


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히토리쨩은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불교 용어를 꺼낸 이유가... 종교 권유 같은 게 아니에요! 저는 그저... 이 상황 자체가 이 설이랑 참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키타쨩이 밴드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니지카쨩이 홀로 공원에 있던 절 찾아내지도 않았을거고, 밴드 또한 들어오지 못했을거고, 저는 그렇게 잊혀질 수도 있었을거에요. 아니, 무조건 잊혀졌을거에요. 전 낯선 사람에겐 다가갈 수도 없는 한심한 녀석이니까. 말도 못 걸어본 채 고교 생활은 잊혀졌을거에요. 문화제에서 라이브 조차도 못 했을거에요. 망상 속에서 허황된 꿈만 가지고 있는 채 그대로 기타랑 같이 방 안에 썩어 세월을 흘러 보냈을 거에요. 그렇게 니지카쨩을 만나고, 료상을 만나고, 키타상을 만나고, 그렇게 밴드가 되고, 결속밴드가 되었어요. 각자의 꿈은 다르지만 반짝이는 별들이 되기 위한 소녀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만났어요. 니지카쨩은 언니의 꿈을 대신해 더 인기 많은 밴드를, 료 상은 자신만의 음악을 찾기 위해, 저는... 저는 소중한 결속밴드를 최고의 밴드로 만들기 위해. 키타쨩은 예전에 말했었죠? 특별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기에 밴드에 들어왔다고. 즐겁게 보내던 학교 생활에서, 자신 안에 비어있는 공허함을 느꼈다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그렇게 결심해주셔서 모두는, 최소한 저는 고교 생활에서 빛날 수 있었어요. 전 이 만남들이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니지카쨩이 있었기에, 료 상이 있었기에, ...키타쨩이 있었기에, 모두가 있었기에 지금의 결속밴드가 있는 거에요."


절대, 자신 때문에 밴드에 민폐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히토리쨩은 저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저의 꿈이 되어 준, 저희들의 꿈의 일부가 되어 준 키타쨩이 없으면 안 돼요. 앞으로도 같이.. 같이 밴드를 하고 싶어요. 붙 잡은 가느다란 손은 떨림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보다도 몸의 열이 뜨거웠던 히토리쨩은 저의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히토리쨩을 간호사 분에게 알려주기 위해 격통을 참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간호사 분은 히토리쨩을 데려갔습니다. 어째서.. 저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필사적으로 부탁하는 걸까요. 하도 흘려서 이젠 흐르지 않을 거 같았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어째서 나 따위를.."


이불에 얼굴을 파 묻고 웅크렸습니다. 과거 멤버들과 만나면서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헤에, 기타 칠 줄 아는 구나. 키타상! 그럼 우리 밴드 들어오지 않을래?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쿠요는 목소리가 좋네. 보컬로 해도 되겠어. 좋은 인스피레이션이 떠오를거야.


헤어지고 싶지 않아.


키타상, 어제 보다 많이 늘었어요! 이 코드 생각보다 어려운데.. 역시 키타상은 재능이 있네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러기 위해선.


저는 이불 속에서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습니다.




퇴원하고 2주일 뒤, 밴드내에서 큰 라이브 소식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라이브는 3달 뒤, 그 동안에 연습을 최대한 해보자며 해맑게 니지카 선배가 말해주었습니다. 합을 맞추는 연습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집에서 8시간 노래와 기타 연습을 각각 4시간 씩 나눠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좋아하던 이소스타의 계정을 잠그고, 대학 친구들의 놀러가자는 권유를 전부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와 노래를 전력으로 연습했습니다. 밴드 멤버들을 어떻게 해서든 쫒아가기 위해. 반푼이인 저를 바꾸기 위해.


8시간 연습을 쉬지도 않고 1주일 차가 지났습니다. 목이 아팠기에 반주를 연습했습니다. 미리 녹음해둔 니지카 선배의 드럼 패턴에 맞춰 반주를 쳤습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러면 니지카 선배의 드럼에 쫓아갈 수 없어. 히토리쨩이라면 이런 반주 따위 식은 죽 먹기로 해낼 거야. 기타 테크닉에 관한 연습을 이어나갔습니다. 료 선배의 베이스는 정말 감정적이야. 여유로움 까지 느껴지는 베이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타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감정선을 따라가려면 더 많이 불러야 돼.


1달 차가 지났습니다. 목소리가 잠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괴로워.


홀로 방 안에서 고독히 노래를 부르고 난 뒤엔 차가운 정적이 돌아왔습니다. 노력은 뜨겁다고 했지만, 실은 노력은 고요한 차가움이었습니다. 히토리쨩은 이런 고통을 3년 동안 버텨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홀로 기타를 쳐 오던 소녀는 역시 기타 히어로였습니다. 기타에 감정이 담긴다고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 넣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줄 하나에 감정을 실는다는 건 실은 불가능한게 아니인가 하던 생각을 하던 찰나 밴드를 위기해서 구해준 히토리쨩의 날카로운 스트로크가 떠올랐습니다. 예리한 칼과 같이 빛나던 기타의 현 소리. 날이 서 있는 그녀의 기타. 마치 나는 여기 있다고 강조하며 빛을 바라는, 눈부신 기타. 저는 입술을 깨물으며 피크로 기타를 쳐 내려갔습니다.


2달차.


이젠 목소리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걱정스러워 하던 멤버들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와 다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생활 패턴은 이미 어긋나 대학교 강의에선 잠이 들어 혼났습니다.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바뀔 수는 있는 건가? 정신을 부여잡고 기타를 쥐어 기타를 쳤습니다. 실은 노력 따윈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닐까? 음악은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올라 갈 수 있는, 그러한 영역이 아닐까?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기타를 놓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저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료 선배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파고, 또 파고 또 다시 파내어서 진심으로 닿고 싶다고 마음이 간절하게 바라게 됐을 때. 그게 진짜 너 자신이 되어 있을 거야. 자신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누구일까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소스타 중독자? 대인관계 원활한 흔한 인싸?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저는..


문득, 히토리쨩과 별장에서 대화했던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속 마음을 처음 이야기 한 그날의 기억을. 히토리쨩은 저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가사를 생각 하고 있었을까요? 가사를 생각하니 이번에 부를 밴드의 곡에서, 저의 첫 라이브 곡이었던 기타와 고독과 푸른 행성이 생각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정리된 악보를 하나 쥐었습니다. 색이 바래버린 악보. 한 소녀의 감정을 담은, 한 가사가 여기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불러왔던, 저의 첫 보컬 곡. 이렇게나 가까이 있던 소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가사. 차근차근 읽으며, 곱씹으며, 간절히 노래 부르며, 드디어, 드디어, 그제서야. 이제서야.


히토리쨩의 본 모습이 보이게 된 것 같았습니다.







라이브 당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관객들의 함성들이 지나가고, 저희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무대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저희는 천천히 걸어나갔습니다. 야외 무대를 빌린 커다란 야외 라이브 장소였습니다. 수백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뺴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무대 안으로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결속밴드 화이팅!" "왜 아직도 인디즈냐!!! 대박 나라!" "꺄아아악! 료씨 멋있어!" "기타 히어로씨! 칼 같은 스트로크 기대할게요!!" "니지카엘! 천사 같은 우리 리더 화이팅!!" "저 밴드 사람들 몇 년 전엔 문화제 때 메이드복 입으면서 알바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까지.."


수십개의 팻말들과 형광등이 날리는 라이브 현장, 결속밴드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관중들 중 유독 가만히 있던 한 남성이 있었는데, 예전 심사위원 또한 눈을 날카롭게 뜨며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에 겁에 질려 어깨를 흠칫거렸습니다만 옆에 있던 히토리쨩이 기타 헤드 쪽으로 저의 어깨를 툭,하고 쳤습니다. 놀라 돌아보자 히토리쨩은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자신있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할 수 있어요. 키타상. 그렇게 연습했잖아요.’


료 선배도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보냈습니다.


‘괜찮아. 이쿠요. 너를 보여 줘.’


이지치 선배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드럼 스틱을 쥔 채 시선을 보냈습니다.


‘할 수 있어. 키타쨩. 타인의 인식 따위. 멋지게 부숴버려!’


이지치 선배는 드럼 스틱을 들어, 노래를 시작하기 위해, 크래쉬 심벌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가사에, 나의 진심을 담아서.


1절이 지나고, 2절에 들어서자, 실린 가사들에 이입돼듯, 감정들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나는 무력해

하지만 그 손으로 이 쇠를 연주하면

무언가가 변한 것 같은...

눈부셔 눈부셔 그렇게 빛나지 말아줘

나의 촌스러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져 버리겠지


이번 3달간, 아니, 예전 밴드 멤버로서 활동하면서도 느꼈던 무력한 감정. 그럼에도 발버둥 치며 하무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그 감정을 가사에 필사적으로 담은, 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고독을 안은 채.


어째서 이렇게 뜨거워진걸까 멈출 수 없어

바보같은 나는 노래 부를 뿐

시끄럽다고 심장


격하게 흘러가던 반전 되듯, 전주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날카로운 히토리쨩의 솔로 기타. 격하게 리듬을 맞추는 드럼.

저는, 이 곡에 감정을 담아. 불렀습니다.


푸른 행성 외톨이

많은 소리를 들어 왔어


기타의 감정이 두각되는 파트, 일렉의 잔잔한 감정이 흘러 들어오고, 저의 감정은, 점점 깊은 심해로 들어가듯 빠졌습니다. 베이스의 진득한 울림과 드럼이 저의 보컬을 감싸 주었습니다.


돌고 돌아 수억년


모두가 있어. 저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까.


한순간이라도 좋으니까...아아



저는...



들어줘




나는!!




들으라고!




나는 나는 나는 여기에 있어

휘갈겨 쓴 듯한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로 외쳤어

무엇이든 되고싶어 되고싶어 누구든지 좋아

바보같은 나는 노래 부를 뿐

털어내버릴까 별에




기타의 예리한 솔로로 끝나고, 라이브 무대는 정적으로 가득 채워졌다. 멍하니 바라보는 관객들. 무언가 잘못 되었는가 싶었더니 한 쪽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흐르고 있었다. 실은 마지막 부분으로 들어갔을 땐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지, 어떠한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르고 있던 건지 모르고 벙쪄있던 찰나, 심사위원이었던 남성은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더니 박수를 보냈다. 한 박수로 시작된 그 소리에, 전염되듯 박수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컬 미쳤다!!!" "결속 밴드 최고야!!!!" "기타, 드럼, 베이스도 좋았지만 보컬이 최고다!" "나 진짜 눈물 흘렸어" "오이오이.. 마지카요! 보컬!" “키타상! 진짜 좋아요!!!” "이제 앞으론 키타 코인이다. 빨리 투입해! 빨리!"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옆에 있는 히토리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미소를 지으며 웃는 히토리쨩의 모습을 보며 마이크를 잡고 팬들에 마음에 호응하듯 대답했다.


"모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늘을 뚫을 것 같은 함성 소리가 울렸다.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을, 팬들의 함성 소리가 라이브장을 가득 채운다. 나는 그 모습에, 진정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라이브의 뒷풀이를 위해 시모키타자와로 넘어와 첫 라이브 성공을 기념했던 그 이자카야를 방문했다. 세이카 언니는 기쁜 듯이 모든 음식을 시키더니 한 상 가득 채웠다. 얼마나 좋았냐면 히로이 선배가 밥을 먹겠다고 넘어왔는데 관대하게 봐줄 정도였으니 그녀의 기쁨은 상당했었던 모양이었다. 밴드의 일을 마치 가족처럼 대해주는 세이카 언니에게 정말 감사한 감정이 들었다.


심사위원 또한 이자카야를 방문 해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번의 폭언은 철회하고 예의 없게 군 점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히토리 쨩은 나의 뒤에 숨어 심사위원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겁 많은 강아지가 주인을 위해 경계는 하지만 겁이 많아 뒤에 숨은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물면 안 돼, 히토리쨩. 끼잉거리며 꼬리를 내리는 히토리쨩을 뒤로하자 남성은 말을 걸어왔다.


"오디션의 심사위원으로 발탁되고, 전 그들의 인생을 쥐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밴드를 차리고 진심으로 라이브를 하다 인생이 몇 망해버린 케이스도 여러 번 보았었기에, 비판적이라는 걸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떤 곡이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저는 그들의 지탱이 되어 줘야 하기에, 독설을 내 뱉게 되는 점 또한,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전 변하진 않을 겁니다. 강압적이지 않으면, 진심을 담은 말이지 않으면 저의 조언을 다른 이들에게 진심으로 받아드리지 않을 거거든요."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뒷풀이 잘 즐기십쇼. 남성은 고개를 숙이고 이자카야를 떠났다. 히로이 선배는 나 저 사람 싫어 하고 입을 삐죽 내밀며 술을 마셨다. 세이카 언니는 너무 그러지 말라며 언짢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점장님? 언니... 설마.. 호오오..? 여자의 촉이 발동한 나와 니지카 선배는 점장님에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무슨 관계야?! 언니! 그래요! 점장님! 알려주세요! 점장님은 시끄러하며 말을 돌리려 했다. 료 선배는 히로이 선배와 이야기 하고 있었고, 나와 니지카 선배는 점장님에게 진득하게 남성 분에 대해 물고 늘어지려 했었지만 어느샌가 히토리쨩이 없어진 걸 눈치챘다. 밖으로 나갔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이야기하고 화장실을 가는 척 이자카야 정문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자카야 앞엔 히토리쨩이 있었다.


"아, 키타상, 고생하셨어요. 화장실 가시려구요?"


"응, 화장실 갈려고 했는데 히토리쨩 여기 있었네."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이어나갔다. 날마다 거짓말이 늘어나는 것 같았지만 진심을 말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거 같았기에 앞으로도 철저히 숨기는 게 맞겠..지? 나는 히토리짱에게 말했다.


"히토리쨩, 굉장하네. 3년 동안 6시간 기타라니. 나도 이번에 그렇게 연습해봤었거든. 정말 어렵더라. 3년이라니. 난 못 할거 같아."


그래도, 이제야 알 것 같았어. 가사의 의미를. 나의 그 말에 히토리쨩은 놀라 바라보았다.


“네..?”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봤었지만, 이제야.. 이제야 말 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고독했던 3년간을 그 가사에 담았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작게 말했다.


"그 3년 동안.. 정말 괴롭지 않았어?"


나의 한 마디에, 히토리쨩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3년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홀로 기타를 치던 소녀. 누군가는 봐달라고 대리 만족으로 유x브 채널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은 히토리쨩의 감정을. 홀로 고독하게 3년간을 보낸 그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기에 지어진 그녀의 세계는 기타와 함께 고독을 끌어 담은 그녀의 마음을, 푸른 행성에 때려 박고 싶었던 것이다. 진심을 담은 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곱씹으며, 기타를 치며, 이제야.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히토리쨩은 갑자기 두 손으로 뺨을 치더니 고개를 가로 젓더니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이젠 괜찮아요!"


이젠 모두가 있으니까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소녀는 너무나도 눈부신 기타 히어로였다. 성장했었구나. 히토리쨩. 역시, 성장하지 않았던 건 나 뿐이었던 거야.


예전, 밴드에 대한 성장에 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저 막연하게 기타를 친다, 노래를 부르면 그걸 밴드로서의 성장으로서 연결이 되는지, 마음을 성장시켜야 밴드도 성장을 하는지, 어떤 것이 밴드에 도움이 될까.


이제 진실된 감정에 첫 걸음을 내딘 나는, 과연 밴드로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야 감정의 한 걸음을 내딘 내가 밴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많은 곡들의 해석을 다시 정리하고, 다시 나아가야 했다. 나는 아직 멀었어. 그래도, 이 진심만큼은..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나는 나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감정을, 이제야 알아차린 내 마음을 말했다.


"히토리쨩."


"네?"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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