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응냨)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응냨이들
응냨이라는 이 문어처럼 생긴 생물들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겉보기에는 즐겁고 행복해보이지만 언제나 표정은 전부 >< 한 찡그린 표정이며 사소한것에도 찡찡거리면서 울기만 하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감정 자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우리 응냨이는 행복한데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지 우리의 시선에만 그렇게 보일 뿐, 응냨이들은 언제나 괴롭고 고달프다.
마침 관찰카메라가 뒷골목에 버려진 낡은 박스에 살던 응냨이의 모습을 담아냈다.
관찰 1일차,
시작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가뜩이나 낡아 헤진 오래된 완숙망고박스는 비의 습기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무너져간다.
가뜩이나 비오는 날이라 먹을것을 구하러 가지도 못하는 응냨이는 무너지는 박스를 고쳐보려고
거의 없는것이나 다름 없는 짜리몽땅한 팔을 이용해 나무막대를 세우는 등 나름의 보강을 해보지만…
쿠궁, 찌이익) 너무나 약해빠진 종이박스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너무나 무력하게 무너져내리고 만다.
다행히 응냨이는 몸을 피해서 목숨을 건지는데는 성공했지만, 잠자리로 쓰던 낡은 쿠션이 잔해더미에 깔리는 바람에 울상을 짓는다.
문제의 낡고 찢어진 쿠션은 응냨이의 유일하고 소중한 보금자리,
그걸 발견해 주워오기 전만 해도 맨바닥에서 자야했던 응냨이에게 푹신한 쿠션은 안락하고 포근한 안식처였다.
하지만 쿠션은 박스 잔해더미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져버렸고 그 뒤로 비가 그칠 때까지는 3일이나걸렸다.
응냨이는 무너져버린 박스의 약간 남은 귀퉁이에서 비를 피하며 3일간 쭉 울부짖었다.
관찰 4일차, 결국 응냨이의 집이었던 낡은 완숙망고박스는 완전히 복구할 수 없을 수준으로 파괴되어버렸다.
집을 잃게 된 응냨이는 훌쩍이면서도 새로운 먹이와 집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도중에 개나 고양이 등이 노려보거나 공격하려 하기도 했고, 배고픔을 못이겨 쓰레기장을 뒤져봤지만 먹을것을 구하기도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양파껍질 약간과 버섯 꼭지 정도를 발견해 먹긴 했지만 역시 응냨이에게도 먹을것은 못되는지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꾸역꾸역 먹었다.
그나마 다행히 가장 위험한 적인 인간에게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강가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분히 공원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자신이 이제부터 지낼 곳을 찾아보는 응냨이, 하지만 공원에 있는 것이라곤 가로수 몇그루와 가로등 3개, 벤치, 아이들용 놀이터가 끝이다.
식수대나 자판기, 화장실도 없을 정도로 단출한 공원, 덕분에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건 다행이지만 응냨이에게는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다.
일단 집으로 쓸 곳을 찾아 나무 밑둥 구멍에 들어가보려 하니 이미 다른 응냨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이들도 버려진 응냨이와 사정은 똑같아서 각자 버려진 채로 이곳저곳을 떠돌다 공원 나무에 겨우 살 집을 얻었다.
난데없는 불청객에 분노한 공원의 응냨이.
“미! 미미미! 응냐앜!”
우리로서는 저게 무슨 말인지 몰라 응냨이 연구의 선구자인 키타박사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저건… 여긴 내 집이니 들어올 생각하지 마! 빨리 꺼져!라는 엄격한 경고의 의미입니다. 아마 자신들의 집을 빼앗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네요”
응냨이는 사정을 설명하면서 들여보내줄것을 요청했지만, 집을 가진 응냨이들은 그 말을 듣지도 않고 욕을 하고 마구 때려대며 그를 집에서 억지로 쫒아냈다.
히이잉…
응냨이는 또다시 울상이 되어 외로움을 안고 공원을 떠나야 했다.
관찰 9일차,
우리의 응냨이는 결국 새로운 장소를 찾아냈다.
이곳은 옆동네에 있는 또다른 공원,
직전에 갔었던 강가 공원과 비슷한 조건이지만 여긴 식수대가 있어서 물이라도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다.
응냨이는 비어있던 나무 밑둥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는 그와 동시에 알을 하나 낳았다.
보통 응냨이는 어둡고 음침하며 자신이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하고 푹신한 공간에만 알을 낳는 특성이 있는데,
여기는 딱히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에도 알을 낳았다.
키타박사는 아마도 응냨이가 “여기는 외부로부터 안심해도 될 귀중한 내 집이다”라는 생각에 알을 낳은게 아닌가 추정한다.
한편 전에 지나온 강가 공원에도 관찰카메라를 설치해둔 제작진,
야심한 밤에 놀이터에서 기타를 치며 여유롭게 노는 응냨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 새끼들이 진짜 밤마다 지랄이네? 이걸로 벌써 한달째야 이 XX것들아! 제발 잠 좀 자자!”
새벽까지 이어진 응냨이들의 기타소리에 분노한 인근 주민들이 참다 못해 공원으로 달려와
기타를 빼앗아 부수거나 던져버리고, 항의하거나 도망치는 응냨이들을 보이는대로 걷어차고 밟아버렸다.
새끼응냨이들도 예외가 되진 못해서 아직 부화하지 못한 알을 나무나 바닥에 던져 깨버리거나,
갓 태어나 삐삐 울고 있는 새끼를 그대로 짓밟아버리는 등 대학살의 연속이었다.
아마 우리의 응냨이가 그 공원에 눌러앉았다면 지금쯤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다시 우리 응냨이의 모습을 보자.
새로운 집 구석에 알을 낳은 응냨이는 이번에도 울면서 소중하게 알을 쓰다듬고는 먹을것을 구하러 새 집을 나선다.
당연히 가장 좋아하는 가라아게나 콜라는 꿈도 못 꾸고, 몇시간 동안 먹을 것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그날은 허탕을 치는바람에 물배만 채워야 했다.
관찰 16일차,
놀랍게도 아직 응냨이는 살아있었다.
키타박사가 설명하기로는 버려진 응냨이들의 평균수명은 2주를 넘기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개나 고양이, 봇제비 등과 같은 포식자 또는 상위개체에게 장난감으로서 쓰이거나 잡아먹히고,
기타를 쳐서 승인욕구를 채워야 한다는 특성과 야행성이라는 점이 겹쳐 야간에 기타를 치다
수면장애 등으로 분노한 인근주민들에게 학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응냨이는 관찰로만 16일차,
그리고 초기에 부서져버린 박스에서도 최소 1년 이상은 산 것으로 보이니 상당히 장수하고 있는 셈이었다.
언제나처럼 겨우 구한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알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우리의 응냨이.
응냨이의 알은 일주일 정도면 부화한다고 하니 곧 태어나려는 반응이 있어야 하지만 알은 요지부동이다.
불안해진 응냨이는 먹던 사과껍질을 내려놓고 알에 다가서서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먹이를 구하러 갈때를 제외하면 늘 따스하게 품고 있던 소중한 알,
빨리 아이가 태어나서 기타 치는 법을 가르쳐주고 세계에서 제일 가는 기타리스트로 키우고 싶은 응냨이.
그때였다.
달그락) 미?! 미~!
알이 조금씩 달그락거리며 움직였다.
알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태어난다는 신호였다.
응냨이는 눈물을 흘리며 태어날 아이를 안을 준비를 했다.
아마 이것이 응냨이로 하여금 유일할 수 밖에 없는 기쁨의 눈물일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찰나일 뿐…
“여기 유해조수 XXXX-XX번 응냨이 발견했습니다, 구제를 위해 회수 및 소각하겠습니다”
순찰을 돌던 환경청의 유해조수 대응팀이 나무 밑둥에서 울던 응냨이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강제로 끄집어내 가버린다.
미~! 미이이~! 응냐앜!
“하아아, 거 더럽게 시끄럽네”
적어도 자신의 아이를 한번이라도 안아보고 싶은 응냨이지만 인간은 그런 응냨이의 말과 의미를 알아들을 리가 없다.
응냨이는 선천적으로 “미” “히잉” “응냨”이라는 단어 밖에 말할 수 없고,
우리는 그들의 말을 유추하며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동안 쭉 살아서 우리의 관찰카메라에 협조해준 응냨이는 그렇게 소각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고…
쩍, 쩌적) 삐~! 삐이이!
갓 태어난 새끼응냨이는 영원히 볼 수 없을 엄마를 찾아 울기 시작한다.
점차 시력이 생겨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삐삐 우는것 밖에 못하는 나약하고 약해빠진 새끼응냨이.
울음소리를 듣고 뭔가가 찾아온 소리에 기쁜듯 삐~!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니…
“노코? 노코노코?”
응냨이들의 천적중 하나인 새끼 봇치노코였다.
삐…?! 삐이이~!
새끼응냨이도 유전자에 내재된 본능에 “저건 천적이야! 살려줘!”라며 소리를 지르는데 오히려 그런점이 천적을 자극해버리는 역효과를 내고 만다.
결국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새끼 봇치노코와 함께 관찰카메라는 끝을 맺었다.
우리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응냨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렇게 비극적인 운명을맞는다.
키타박사는 “아무리 응냨이들을 소중히 키운다 해도 그들은 언제나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키우는 아이들도 늘 괴로워하며 울곤 하죠.
하지만 이건 응냨이들의 고유적인 특성으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로서도 괴로움을 이기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더 많은 승인욕구와 보호를 요구하는 걸테니까요” 라며
응냨이들이 찡찡대고 우는 현상을 이들에게 필요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언제나 괴롭고 슬프고 아픈 감정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응냨이라는 생물들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존재하지않는다는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