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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제비) 한밤중 산업도로에서 생긴 일

ㅇㅇ
2023-06-16 11:45:02
조회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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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아… 졸려 죽겠네”


야심한 밤에 산업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거대한 벌크 트레일러, 23톤의 플라스틱 원재료 파우더를 싣고 어제 항구를 출발한 이 트럭은 아직도 목적지인 화학 산업단지까지 한참을 더 달려야 한다.


트레일러를 운전하는 젊은 남자는 졸린 눈을 비비며 피로와 싸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졸음을 참을 수는 없는지 하품과 함께 차가 좌우로 비틀비틀 갈지자로 주행한다.


차선이탈방지장치가 요란한 경고음을 내며 주의를 환기시키려 하지만 아무래도 남자의 피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이 도로에는 이 거대한 차를 세울만한 여유공간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남자는 일단 감기려는 눈을 애써 참으며 계속 운전해야만 했다.


“이쪽은 뭐 이렇게 차 세울 곳이 없냐… 어우, 눈 감기네”


휴게소도, 졸음쉼터도 없는 산업도로 위에서 졸음을 이기는 방법이란 그저 노래를 듣고 커피를 마시거나 껌을 씹는게 전부.


남자는 오디오를 조작해 큰 소리로 “기타와 고독과 푸른행성“을 틀며 센터콘솔 쪽에 놓여있던 졸음 방지 껌을 씹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아주 잠시나마 정신이 돌아온듯 했지만 그 순간 트럭 하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응…? 뭐지?“


기분탓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큰 소리였기 때문에 남자는 바로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운 뒤 상황을 살폈다.


왼쪽 하부 범퍼가 깨지고 안개등이 틀어졌다.


깨진 범퍼에는 분홍색과 빨간색의 털이 약간 남아있고, 측면에도 뭔가 피 비슷한 것이 묻어있었다.


왠지 불안한 느낌에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가드레일을 넘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보니, 지나가던 다른 트레일러의 하이빔이 도로 한복판에 죽어있는 봇제비와 키댕이를 비췄다.


“휴… 뭐야, 죽어도 되는 놈들이잖아? 사람이 아니어서 십년감수했네… 덕분에 잠이 확 달아났군“


남자는 사람을 치지 않은것만이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차로 돌아가서는 그대로 현장을 떠나 목적지를 향해 갔다.



봇제비와 키댕이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중이었다.


이들은 특유의 털 날림 때문에 인간으로부터 멸시를 받기도 하고 몸보신에 좋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남획당하는 등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에 요즘은 주로 인적이 드문 산에 숨어살고 있었다.


산속에 숨어사니 목숨이 위험한 일이야 줄었지만, 대신 먹이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특히 봇제비는 “돼지국밥우동”을 먹어야 힘을 제대로 발휘하는 녀석들이기 때문에 산에서 나는 나물이나 버섯류를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처음에는 인접 밭들도 털어 봤지만, 점차 농부들도 강하게 맞서서 전기울타리를 놓거나 봇제비용 맹독을 뿌려두거나, 이들이 나타나면 농기구를 들고 때려 죽이는 등의 학살이 벌어져 지금은 훨씬 먼 거리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 이동경로 상에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 이 산업도로.


20톤 이상의 화물을 적재한 대형 화물차들이 고속으로 달리는 이 도로를 무사히 건너기란 쉽지 않다.


이들은 들키지 않기 위해 가급적 야간에 빠르게 이동해야 하지만, 하필 화물차들의 주요 이동시간도 야심한 밤.


게다가 봇제비와 키댕이들은 거의 좌우를 보지 않고 무작정 직진으로 건너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완전 무방비한 상태로차에 치여버린다.


이번에도 먹이 구하기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 없이 급하게 건너던 봇제비와 키댕이는 손쓸 틈도 없이 남자의 트레일러에 치여 즉사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남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봇제비와 키댕이는 그저 “유해생물로 지정되어 있던데 그런거 따위 죽어도 상관없잖아? 휴, 사람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네” 수준의 취급.


그나마 보신에 좋다는 이유로 가져가서 조리해 먹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끔찍한 몰골이 된 녀석들을 손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다음날 오전 인접지역 순찰을 돌던 경찰 순찰차가 그들을 발견해 치울 때까지 그 누구도 이들을 건드리지 않고 현장을 통과했다.



도로 이용자들과 봇제비 애호가들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해도 경찰도, 해당 도로의 관할부서도 봇제비들의 죽음에는 한숨만 내쉴 뿐 전혀 문제를 개선할 생각이 없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녀석들이 오히려 빨리 없어져줬으면 하는 귀찮기만 한 일이니까.


봇제비 애호가들은 빨리 이들의 안전을 위해 생태통로를 놓아달라며 민원을 넣어대지만 관할 부서들은 계속해서 반려만을 보낸다.


이미 주변 산에는 봇제비와 키댕이들이 토속종들을 몰아내고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완전히 유해동물 밭이 되어버렸는데 그런 유해동물만을 위해 생태통로를 놓으라니 이 무슨 예산낭비란 말인가…


게다가 당연하게 녀석들에게 피해를 입은 인접마을주민들이 결사반대하며 항의서한을 보내고 시위를 하기 때문에 아마 이들의 안전이 보장되는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 오늘도 트럭들이 오가는 산업도로에서는 계속해서 봇제비와 키댕이들이 길을 건너다 목숨을 잃고 있다.


절대 찾아오지 않을 그들의 밝은 내일과 세계평화 따위를 망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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