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제비, 학대) 갈곳 없어진 봇제비들의 빛과 어둠

ㅇㅇ(106.246)
2023-07-17 11:41:28
조회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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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파 3분전! 발파 3분전! 현장은 빠르게 철수하십시오!”


어느 동굴 속에서 터널을 뚫는 작업이 한창이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 전용 드릴을 사용해 뚫으면서 개척이 가능하다지만, 이곳은 지형상의 문제로 발파개척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한편 동굴 구석에는 분홍색의 족제비…는 아니고 무슨 나무늘보 같은 녀석들이 벽에 붙어 바들바들 떨며 웅크려있다.


녀석들의 이름은 봇제비, 원래 이 동굴의 주인이다.


녀석들은 이 동굴을 중심으로 숲속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특성이 있었지만 도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숲이 밀린데다, 동굴마저도 터널의 입구 역할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이들로서는 갈 곳이 완전히 없어졌다.


“발파 10초 전!”


봇제비들은 매일 터널을 뚫는 폭발음과 강한 라이트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다.


녀석들은 “강한 빛을 쬐면 죽는다“라는 어이털리는 특성이 있어서 이곳을 나가고 싶어도 도저히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밖에서도 공사를 해야 하니 라이트를 써대고, 여기서도 터널을 뚫고 진행해야 하니 라이트가 필수.


게다가 숲을 밀어버려서 햇빛까지 강하게 들어오니 봇제비들은 도저히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오죽하면 사전조사 첫날부터 손전등만 비췄을 뿐인데 ”세계평화!“라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녀석들이 상당수였다.


빛만 비춰도 죽는다니 이게 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날, 녀석들이 차량이나 장비들의 라이트를 본 순간은 아예 잊을 수도 없을 정도다.


빛을 피하겠다고 집단으로 뛰쳐나갔다가 햇빛에 쓰러지고, 아예 동굴 벽에 들러붙어 살려달라며 “세계평화! 세계평화!” 이러는 모습은 참…


처음에는 우리에게 달려들거나 시끄럽게 공사를 방해하길래 어떻게든 내쫒으려 했지만 현실적으론 그것도 안되는 형편이니 어쩔 수 없이 방치하고 작업을 이어간다.


우리가 처음 현장에 온 이후부터 모든 현장의 전등은 최대밝기로 상시유지되고 있어서 봇제비들은 그저 벽에 붙어 타들어갈것 같은 눈을 감거나 웅크린채 버티는것 말고는 할 수 없다.




“수고하셨습니다! 밥이나 한끼 하고 좀 쉬다 다음 가죠!”


발파를 마치고 맞이한 식사시간,

오늘의 메뉴는 봇제비들이 환장한다는 돼지국밥우동이다.


우리 현장과 계약한 함바집이 유독 이것만 자주 올려보내서 이젠 보기만 해도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저 배고픔을 참으며 웅크려 있을 뿐 달려와서 돼지국밥우동을 훔치거나 달라고 구걸하지도 못한다.


왜나면 우리가 식사하는 곳도 강한 라이트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가끔씩 죽지나 말라고 조금씩 주지 않는 이상 녀석들은 스스로 배도 못 채울 정도로 나약해져 있다.


근데 이러고 있으면 의문이 들지?


저런 동물이 있다면 빨리 보호조치를 했어야지 왜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냐고.


그럴 이유가 있는게 녀석들은 사회적으로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있는데다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종도 아니라서 보호의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응냨이라고 하는 분홍색 문어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보호에 들어갔다는 말은 들은것 같은데 이 녀석들이보호대상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것 같다고 전문가들이 말한것 같다.


아무튼… 면 사리를 약간 집어 녀석들이 있는 벽쪽으로 던졌다.


몇마리가 달려들어 맛도 못느낄 속도로 허겁지겁 먹고는 다시 벽에 얼굴을 묻는다.


이렇게 보니 녀석들도 참… 그래.


발파후 잔해를 치우고 다음 발파를 준비할 때 교대시간이 되어 나는 현장을 나왔다.


밥 먹기 전에 교대했으면 좀 좋았겠냐만…




다음날 다시 교대를 하며 현장에 들어서니 벽에 있던 봇제비들이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소장 말로는 “저렇게 버티고 있는게 벌써 몇달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환경청 유해조수처리과에 협조를 해서 모조리 수거해 폐기했다. 이제 세계평화인지 뭐시긴지 시끄러운 소리 안 들어도 되겠구만”이라고 한다.


하긴 초반에 녀석들이 달려들며 공사를 방해하려 하기도 했고, “세계평화! 세계평화” 외쳐대며 시끄럽기도 했고, 라이트만 비췄다 하면 시체투성이가 되어버리는지라 처리하는데 애먹었던 적도 있지.


그래도 지금쯤 되니 먹이도 조금씩 주고 슬슬 친해진것 같았는데…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현실은 내 알바냐?


아무튼 우리는 오늘의 일을 해야지.


봇제비들이 앞으로는 더욱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빛 없는 어둠속에서 평화롭게 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과 함께 오늘도 발파작업을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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