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제비, 학대) 봇제비일족을 위한 구원의 섬
이곳은 태평양 어딘가의 무인도,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이 섬은 세계대전의 격전지로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피비린내 나던 섬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저 고요한 평화의 섬이다.
파도가 살랑살랑 밀려오는 해안가, 식수로서 사용할 수 있을법한 물이 있는 동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열매가 자라는 나무들도 있어서 생존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이 섬에 난데없이 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건축자재, 발전기, 통신망 구축설비 등이 내려지기 시작해 한동안 섬에 건물을 짓는 작업이 이어졌고, 건물이 완공되고 전력설비와 통신을 쓸 수 있게 된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 섬에 살 사람들이 이주해왔다.
마침 멀리서 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세계평화…?”
갑판에는 사람이 아닌 나무늘보 아니면 개미핥기처럼 생긴 분홍색 생물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린 영원히 저기서 살게 될거야, 그동안 사람들에게 학살당하며 학대와 멸시를 받던 수모도 더이상은 없을거고”
함께 이주한 사람들이 그 생물들에게 섬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생물들의 이름은 봇제비,
정확히는 원래 이름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다보니 정착된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녀석들은 원래 “봇치과 봇치속 봇제비“라는 분류로서 응냨이나 노코와 같은 봇치종에 속하는 생물이긴 했지만 다른 종들과 너무나 다른 특성 탓에 사람들에게 학대와 멸시를 당해오던 생물이다.
털이 없는 다른 종들에 비해 유일하게 털이 있는데다 잘 날리는 탓에 알러지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거나 노코들의 정상진화를 방해하는 ”퍼리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유해조수 취급을 받았고, 응냨이나 노코가 환장하는 가라아게도 깨작깨작거리는 대신 돼지국밥우동이라는 음식에 환장하기 때문에 키우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응냨이도 울음소리가 시끄럽긴 하지만 “미!” “히잉!” “응냨!”과 같은 의성어라 오히려 화를 내도 귀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 녀석들은 “세계평화!”라고 울어대서 “시끄럽고 비위생적인 주제에 세계평화는 무슨 얼어 죽을 세계평화냐?”며 반감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봇제비들은 사냥용 장난감으로서 학살당하거나 보양식집들에서 봇제비탕, 봇제비 통구이, 봇제비즙 등으로 사용되는 운명이었고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거나 이지메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름 애호파들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서명운동과 보호법 입안을 해봤지만 현실은 압도적 부결.
결국 최종적으로 남은 방법이 봇제비들을 데리고 아예 무인도에 이주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배에는 애호파들이 데리고 탈출한 봇제비와 후타리봇제비, 그리고 함께 데리고 온 키댕이와 니지토끼 수백마리와 이들을 관리해줄 애호파들만이 타고 있다.
오다가 태풍을 지나느라 한동안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고생은 끝났다.
섬 한 구석의 모래사장에서 이들은 당당히 섬에 무혈입성했다.
이 섬은 봇제비와 그 일족들을 애호하는 사람들만 입국을 허가하며, 식량은 주기적으로 배에 실어 가져오는 한편 건물을 지을때 미리 가꿔놓은 텃밭 자리에 작물을 심어 자급자족으로 키워먹기로 했다.
건물은 인간들이 상주하면서 야생에 풀어준 봇제비나 키댕이, 니지토끼가 부상을 입으면 데리고와 치료하거나 출입국심사, 유사시 대피소 또는 통신관리를 하는 곳으로서 쓰기로 했다.
나름 국기도 만들어왔는데 천둥이 칠때마다 봇제비가 취한다는 “천둥이 번쩍” 자세를 그대로 박아놓았고 이들의 교대인사도 천둥이 번쩍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 사람들 이거 완전히 맛이 갔네”라고 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봇제비와 키댕이, 니지토끼들을 야생에 풀어주고 후타리봇제비들은 야생으로 보내기 전 교육 등을 위해건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들을 내려준 배는 다음 정기일정에 새로운 봇제비 일족과 식량을 내려주기로 하고 다시 떠났다.
봇제비들은 바로 섬의 어둡고 음침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고, 키댕이와 니지토끼들은 일단 섬을 돌아보며 지형확인과 음식, 식수 등을 확보하기 위한 정찰을 했다.
섬의 대부분은 바위로 되어있었고, 열매가 나는 나무 약간과 봇제비들이 숨어살기 좋은데다 식수로서 쓰기 좋은 동굴이있는 정도.
쓸만한 땅은 인간들이 건물을 짓고 텃밭을 만들어둬서 이들이 생활하기에 그리 적당하진 않았다.
그래도 뭐 눈앞에서 살해당한 동족을 뜯어먹으며 굶주림을 채워야 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분명 천국임은 틀림없기에 녀석들도 웃으며 식량을 구해보았다.
이들이 섬… 아니, “봇제비 공화국(?)”에 당도한지 며칠이 지나서 섬은 활기를 띄었다.
아무리 열심히 PR을 해도 아직 관광객이 한명도 오지 않았다는게 흠이긴 하지만 봇제비 일족은 점점 안정된 생활에 차츰개체수를 늘려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육과 사냥, 천둥이 번쩍 훈련을 받은 후타리봇제비들도 야생으로 풀려나와 자립활동을 시작했고, 낙뢰로 인해산불이 발생했을때는 제일 먼저 뛰어와서 천둥이 번쩍 자세를 취하며 “불나쪄! 불나쪄!”라고 외쳐 화재가 섬 전체로 번지는것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 봇제비공화국에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는것 같지만… 아직 건국 한달도 채 되기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뭔가 이상한데?”
“왜 그러는데?”
“아니… 분명 배가 오기로 한 날인데 배가 안와, 연락을 해봐도 받지도 않고…”
섬에서 쓸 식량과 의약품, 새 봇제비 일족을 실은 배가 도착해야 하는데 약속한 날로부터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배와는 연락이 안되고, 선사와 연락해도 신호만 갈뿐 받지를 않는다.
“이상하네… 일단 예비식 있으니까 그거 좀 먹으면서 버티고 안되면 낚시 좀 하지 뭐”
현재로서는 아직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식이 있고, 여차하면 모터보트 같은걸 끌고 가서 낚시라도 하면 버틸 수는 있을테니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결정한다.
배가 오기로 한 날로부터 한달이 지났다.
약속한 배는 지금도 오지 않았다.
예비식도 이젠 다 떨어진데다 전에 벌어진 산불로 열매를 구할 나무가 1/2 정도 타버렸고, 심한 불길 속에서 살기 위해 허둥지둥 뛰어다니던 키댕이와 니지토끼들 상당수가 심한 화상을 입어 치료를 해줘야 하지만… 최대한 아끼고 아껴가며 썼던 치료약과 붕대도 이젠 끝났다.
“사… 살려줘… 너무… 아파…”
키댕이 한마리가 상처에 괴로워하며 신음을 냈다.
하지만 이들을 고쳐줄 인간들이 할 수 있는거라곤 약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는것 뿐이다.
결국 화상치료가 중단되면서 키댕이와 니지토끼들 몇마리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편에서는 왜 아직도 배를 보내지 않는거냐며 압박을 하지만 “세관에서의 통관 거부 및 압류로 인해 물건을 보내주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다, 봇제비 일족이라도 보내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폐사되었다” 라는 선사측의 답변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 건 밀수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세관과 경찰에서 적극적으로 막는 것이다.
결국 유일한 보급길이 끊어져버린 이들로서는 텃밭과 낚시만이 식량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인데…
텃밭마저도 환경이 안맞아 가뜩이나 잘 자라지도 않는데 그마저도 봇제비일족이 마음대로 파먹어버리는 바람에 써먹을수 있는게 거의 없다.
텃밭은 인간들이 먹을 작물을 키우는건 맞지만 유사시 봇제비들의 비상식량으로서 돼지국밥우동의 고명을 만들기 위해만들어둔 것이다.
고기는 배에 실어오고 면을 만들 밀이나 고명으로 쓸 야채들을 직접 키워서 봇제비들이 식량을 전혀 구할 수 없는 경우돼지국밥우동을 만들어 임시식으로 먹여주려 했던 것인데, 녀석들이 밭을 털어 고명으로 쓸 부추나 마늘, 양파 등을 훔쳐가서 몰래 먹어버리는 바람에 사람이 먹을 분량마저도 부족한 실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은 어쩔 수 없이 죽은 키댕이와 니지토끼를 육식으로서 소비하며 낚시등을 해서 보급을 하기로 한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섬의 유일한 모터보트와 낚시팀을 잃었다.
비가 오기 전에 최대한 낚아오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출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에 휩쓸려버렸다고 한다.
섬에도 엄청난 비와 낙뢰가 쏟아져서 모든 봇제비들은 천둥이 번쩍 자세를 취하며 서있고 사람들은 전력시설과 통신시설을 살피며 대비에 나섰다.
몇명은 밖으로 나가 키댕이와 니지토끼들을 건물 안으로 피난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건물 대피소로 모인 녀석들은 부르르 몸을 떨면서 물기를 털어냈다.
피난이 한참 진행되던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건물 전체가 정전되었고 밖에서는 유도하던 사람들과 건물로 들어서지 못한 키댕이, 니지토끼들이 지락전류에 의해 감전되어 쓰러진채 널려있었다.
하필 이때 문은 열려있었고 바닥이 젖어있어서 물기를 털어낸 뒤 엎드려 휴식을 취하던 녀석들까지 덤으로 감전사 당하고 말았다.
한편 낙뢰로 인해 모든 전력과 통신시설도 과전압 손상을 입어 복구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면서 곳곳에서 고성이 오가는상황이 벌어졌다.
그나마 손전등과 핸드폰의 라이트 기능이라도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결국 비가 그치고, 통신장비와 발전기는 복구불능 판정을 받았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어서 유선인터넷과 와이파이라도 썼는데 이젠 위성통신장비가 아니면 지상과 연락할 수단이 없다.
충전도 못하는 상황이기에 최대한 배터리도 아껴야 한다.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 사람들이 피해조사를 다녀보니 그나마 멀리 있는 동굴에 숨어있던 봇제비와 후타리봇제비들의 생존률이 가장 높았고, 인간의 말을 따라 피난하던 키댕이와 니지토끼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봇제비들이 동굴에서 오래 생활한 나머지 더 이상 동굴의 물은 식수로서 쓸 수 없을 정도로 털에 오염되어 있었다.
인간이 쓰는 물은 해수를 식수로 바꿔서 사용해오고 있었지만 발전기가 완전히 망가진 지금으로서는 이 물을 써야만 한다.
떠다니는 털을 걷어내 물을 살펴보니… 상했다.
이 물을 마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화알약이 있으면 정화라도 시도해보겠지만 문제는 담수화기술을 너무 믿고 있어서 정화알약을 후발대에 실어오기로했었는데 배가 묶여버리면서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물을 끓이려 해도 이젠 연료가 부족하다.
이제 인간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불을 땔 가스나 연료마저도 부족해져버린 봇제비공화국, 일단은 본국에 도움을 요청해보려 하지만 이들의 연락에 응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 둘 배터리가 다된 핸드폰들이 꺼져버리고, 마지막 사람이 연결을 했을 때 막 상대가 받는 순간 전원이 꺼져버리고말았다.
봇제비들의 털로 오염된 물을 홀짝이면서 그나마 건물에 있던 것들을 이용해 불을 지펴 죽은 키댕이와 니지토끼들의 고기를 봇제비들과 나눠먹기는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 고된 괴로움과 현타에 지쳐버렸다.
처음에는 봇제비들을 보며 학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왔지만 보급선은 압류당했고, 식량은 함께 온 생물들이 빼앗아먹는데다 유일한 연락수단마저도 천둥이 번쩍과 함께 모조리 날아가버렸다.
동료들 상당수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낚시 나갔다가 죽고, 낙뢰 치는 상황에서 키댕이와 니지토끼들을 구해주겠다며 피난 유도하다 감전으로 죽고… 현타가 안 오는게 이상할 지경이다.
결국 이들도 무의식적으로 분노가 차올라 “세계평화?”라며 다가오는 봇제비의 멱살을 잡고는 동굴 벽에 패대기 쳐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봇제비들이 이들을 말리려고 다가오거나 천둥이 번쩍 자세를 취하며 눈을 감으니 분노한 인간들은 알 수 없는 말을 외쳐대며 이들을 벽이나 바닥에 패대기 치거나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세계평화! 세계평화!”
한동안 동굴 속에서는 살려달라고 외치는 봇제비들의 비명소리만이 들리고는 결국 잠잠해졌다.
며칠 뒤… 구조선이 구. 봇제비공화국에 도착했다.
마지막 구조요청자의 연락을 받은 키타박사가 구조선을 보내자고 정부를 설득해서 겨우 섬에 도착한 것이다.
내리자마자 구조대는 섬에서 감전사당했던 사람들의 묘지와 곳곳에 널린 키댕이, 니지토끼를 발견했다.
건물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식수와 전력을 쓸 수 없게 된 뒤로는 봇제비들이 살던 동굴로 베이스를 옮겼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참의 수색 끝에 이들이 옮겨간 동굴에 도착했지만 다들 참혹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곳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구조 및 탐사보고서에는 당시의 상황이 “기밀”로 처리되었고, 아마 아무도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