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제비, 학대) 봇제비보호구역의 산불
나는 언제나와 다른 느낌에 눈을 떴다.
뭔가 타는 냄새가 난다, 주변이 뜨겁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과 매캐한 연기가 괴롭다.
“켁, 케헥… 세, 세계평… 쿠헥”
필사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청해보지만 시뻘건 불길 속에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다.
무슨 일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내가 방금전까지 자고 있던 숲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있었다.
주변에 있을 내 소중한 친구인 키댕이를 목놓아 불러봐도 대답이 없고, 아이들은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 위로 불붙은 소나무가 쓰러져버렸다.
쓰러진 나무를 치워보려 하지만 너무 뜨겁고 무겁다.
게다가 내 몸에도 불이 붙어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덮쳐온다.
결국 아이들은 포기하고 일단은 살기 위해 무작정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한걸음 한걸음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흐려진다.
근처에 계곡이 있으니 거기로 가면 괜찮을거라 생각하지만 방향감각이 없어졌다.
아마 등에 있던 털이 다 타버린 모양이다.
숨도 쉬기 어려워서 쉼없이 헥헥대지만…
갈수록 뜨거운 뭔가가 온몸에 들어오는것 같다.
몸에 힘이 빠진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ㅇㅇ산 봇제비 국립공원
이곳은 전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봇제비 또는 케모보라고 하는 생물과 그 일족인 니지토끼, 키댕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립공원이다.
정확히는 인간들이 이 생물들을 밀렵 또는 학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실상 격리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보호종과 교류할수 있는 다른 국립공원들과 달리 철조망 등의 시설을 이용해 절대 교류할 수 없게 만든것이 특징이다.
이곳에는 전국에서 학대당하거나 밀렵당하던 봇제비, 키댕이, 니지토끼들 수천마리를 강제격리시켜 절대 나가지 못하도록 해두고 있으며 식량은 야생에서 알아서 구해먹도록 하고 있다.
일단 격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면적은 충분히 넓고 버섯이나 나무열매 같은 채집을 하기에도 환경이 나쁘지는 않기 때문에 사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철조망 구획을 벗어나 자유를 찾는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서, 탈출을 시도한 녀석들은 전기철조망에 의해 감전되거나 마취총에 맞고 돌아오거나 아예 사냥꾼에 의해 사살당하기도 했다.
이 국립공원은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유지되어야 하니까.
해가 지고 있을 쯤, 봇제비 가족이 단란하고 조촐한 저녁식사를 했다.
그토록 환장하는 돼지국밥우동은 커녕 가라아게도 없는 첩첩산중, 버섯 몇개와 나무열매로 배를 채우기에는 택도 없지만 새끼들은 애써 투정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전에 살던 다른 산에서 처음 잡혀왔을 때는 인간들이 자신들을 봇제비탕 집으로 끌고가거나 죽이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안도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들의 생활에 그 어떤것도 개입하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이들도 승인욕구는 있기에 기타를 치고 싶어한다던가, 돼지국밥우동 한사바리 시원하게 때리고 싶다던가, 자신들을 키워준다던가 하는 요구를 해보지만…
인간들은 “말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는 듯한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들을 몰아넣고는 교류를 완전히 끊었다.
그나마 다른 봇제비, 키댕이와 니지토끼들이 적응하는걸 도와줬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겠지.
저녁을 먹은 봇제비 가족이 잠들었을 쯤,
국립공원 외부에서 작은 산불이 발생했다.
건조한 날씨탓에 나무들이 바짝 말라있었는데 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다 자연마찰로 불이 난것이었다.
초반의 작은 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갔고,
국립공원 직원들도 사실을 인지해 소방대를 불렀다.
이미 해는 졌기 때문에 소방헬기를 이용한 작업은 무리, 철조망 안쪽의 봇제비 보호구역은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철조망 바깥의 화재진압을 우선으로 해서 작전을 진행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불길은 빠르게 안쪽으로 번져가고 있었고, 키댕이들이 제일 먼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챘다.
봇제비 가족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음을 알려주러 왔지만 이들은 먹고난 직후 깊게도 잠든 뒤.
돼지국밥우동을 먹지 못하면 힘을 거의 못쓰기 때문에 체력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먹자마자 자버리는 것이다.
특히 버섯이나 야채류를 거의 선호하지 않으니 억지로라도 먹고 자버려서 체력을 보존하는데 이게 운명을 갈랐다.
키댕이는 소리를 질러보고 몸을 흔들어도 보지만 반응이 없는 봇제비에 흥미를 잃고 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봇제비가 눈을 떴을 때는…
주변이 온통 불바다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봇제비는 이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키댕이를 찾으며 계곡을 찾아 무작정걸었다.
키댕이는 불이 번져오자마자 자기 가족과 새끼들을 데리고 이미 먼저 피난을 떠나버린 후였다.
점점 몸에 힘이 빠져 한발짝도 걷지 못하게 된 봇제비는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먹은것도 거의 없었고, 숨쉬기는 힘들고, 억지로 무리해서 움직이고 소리친 결과였다.
봇제비는 자신의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아이들은 엄마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세계평화! 세계평화!”
아이들은 엄마에게 “여긴 돼지국밥우동을 무한리필로 줘! 언제든 원하는대로 먹을 수 있어!”라며 봇제비를 끌고 간 뒤 무한 돼지국밥우동을 먹였다.
그리고 니지토끼와 키댕이들도 환영인사를 해주며 봇제비에게 기타를 주고 치야호야 해주었다.
봇제비는 난데없는 상황이었지만 으헤헤하면서 이들의 환영 속에 즐겁게 기타를 치고 춤을 추며 승인욕구를 즐겼다.
국립공원의 숲은 전소되고 말았다.
산불이 완전히 진화될 때까지는 3일이 걸렸다.
철조망 안의 동물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가족들과 새끼들을 데리고 먼저 도망친 키댕이는 전기 철조망에 가로막힌채 불길에 휩싸였다.
니지토끼들은 이곳저곳에 널린채 발견되었고,
봇제비들도 특유의 위협 도발자세인 “천둥이 번쩍”을 취한채 그 자리에 널려있었다.
계곡에는 심하게 화상을 입고 숨진 동물들이 떠있었고,
봇제비는 계곡까지 고작 몇걸음을 남긴채 쓰러져있었다.
결국 현장에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피해조사를 하러 온 환경청과 국립공원 직원, 그리고 소방서 조사관 뿐이었다.
숲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동물들의 마지막 흔적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세계 유일의 봇제비 보호구역도 그렇게 짧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봇제비와 일족들을 식용, 연구용 이외의 목적으로 키우거나 먹이를 주거나 줍는 행위를 불법으로 처벌하고 있으며, 화재로 소실된 ㅇㅇ산 봇제비 보호구역은 구역해제 후 철조망을 철거하고 나무를 다시 심는 사업이 진행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