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봇치가 밴드를 시작한뒤 일년이 되었다.
그날의 날씨는 특이했다, 비가 오지만 먹구름 자체는 많지 않아 하늘이 그저 약간 구름이 낀 날 정도로 보이는, 그런 특이한 날씨였다.
조금 일찍 연습이 끝나고, 난 우산을 쓰고 시모키타자와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자, 겉으로 보기엔 맑아 보이는 날씨가 분홍빛 노을과 맞나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에 난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겨 마치 세상에 노을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다른 존재는 인지하지 못한 채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노을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봇치짱!”
“아직 안 갔네, 여기서 뭐해?”
“앗, 노을을 보고 있었어요, 오늘 하늘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그 말을 듣고, 니지카 선배도 노을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아닌 노을을 보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정말 아름답네, 특히 저 구름이랑 노을이 잘 어울린다”
“위쪽이요?”
“응, 저기, 큰 구름 두개가 합쳐지는 곳”
니지카 선배가 말한 곳은 우산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니지카 선배는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
“앗, 선배, 그러고 보니까 우산 안 쓰고 계시네요.”
“오늘은 비가 많이 오는 편도 아니고, 가끔은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히 오늘같이 하늘이 아름다운 날에는.”
나도 우산을 걷을까? 태양빛을 한껏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구름을 보고 싶긴 하지만, 지금 비를 맞기에는 나중에 감기에 걸리는 것이 걱정됐다. 내일 아르바이트도 있는데.
“봇치짱, 그거 알아? 오늘이 봇치가 결속밴드에 들어온지 딱 일년이 되는 날이야.
“그 날 내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불구하고 밴드에 들어와 줘서, 정말 고마워”
다행이다. 아셨구나, 아무도 얘기를 안 하길래 그냥 까먹고 넘어가는건가 싶었다.
“앗, 고개 드세요. 저야말로 밴드에 권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앗, 아니에요, 그날 니지카 선배가 권유를 해주신게, 저에게 있어선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기에, 항상 니지카 선배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흠… 갑자기 생각난건데, 봇치는 가끔 너무 이타적인거 같아”
“네?”
“이걸 해서 남이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무슨 말을 해야 기뻐할까, 이런 고민을 봇치가 누구보다 깊게 하는게 느껴져. 그래서 순간의 감정을 아무에게도 영향주지 않는 봇치 타임이라는 형태로 해소한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남에게 너무 감정을 드러내도 좋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순간의 감정을 본인을 위해 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확실히 난 옛날부터 남 앞에만 서면 긴장을 했다.
지금까진 그냥 내가 내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난 나를 남에게 드러내는게 싫었다,
그야 남들이 모두 친구를 만나고, 공부를 하고, 청춘을 쌓아갈 시간에 난 방구석 옷장에서 홀로 있었다.
청춘을 쌓은, 일반적인, 그 자체만으로도 활기가 보이는 학생이라는 존재를 이런 외로운 내가 마주한다는 것은 나에게 내가 홀로 있었던 시간을 상기시켜 주었고, 그건 나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난 지금까지 내성적이란 걸 방패삼아 남들 앞에서 필사적으로 날 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의미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모두 나름의 싹을 틔웠다.
나도 추억을 쌓았고, 열심히 노력했고, 친구가 생겼다.
이젠 나도 지난 학창생활이 의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산을 접었다. 비를 맞는 것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조금 해방감을 느꼈다.
“봇치짱, 오늘 내내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았어?”
“밴드한지 1주년인데 멤버들이랑 연습만 하고 헤어지는건 너무 하잖아.”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료 선배와 키타가 내 뒤로 왔다.
“1주년인데 케이크라도 먹어야죠!”
“봇치, 밴드 1년된거 축하해”
순간적으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참으며, 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기억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뭘, 우리가 감사해야지. 봇치가 1년이나 우리랑 같이 해줬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아까 니지카 선배가 말해준 구름이 보였다.
노을을 받은 구름은 생각보다 더 영롱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만으로도 너무 따뜻해서, 비를 맞고 있음에도 아까보다 춥지 않았다.
“라이브 하우스에 케이크 사놨어, 점장님도 기다리고 계셔. 같이 가자.”
“네!”
아마 일년전에 나에게 지난 학창시절을 후회하냐 묻는다면 그렇다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밴드를 시작하고 나선,
친구가 생겼기에,
나를 알렸기에,
내가 의미있는 존재란 걸 확인했기에,
그 모든 시간들이 의미있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