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장문]일렉트릭 기타의 역사
I.일렉기타의 필요성
처음에 통기타를 칠 때는 오직 기타를 '리듬악기'의 역할로만 제한했었음.
왜냐면 통기타는 울림통이 지나치게 커서 하울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근데 그 짓도 소용이 없었는데, 어차피 볼륨을 크게 하든 작게 하든 픽업이라는 게 없는 그 당시에는 마이크를 기타에 갖다 대는 방식 뿐이라
하울링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거임.
그래 ㅅㅂ 마이크가 소리를 먹고 믹서로 들어가서 앰프로 증폭해서 스피커로 나오는데 이게 볼륨 작게 한다고 해결이 완벽히 되진 않았지
그 시점부터 기타라는 악기의 소리를 수음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전화기 송신부를 홀에 집어넣어서 받아오는 개 병신같은 방식이었음 그게 발전해서 나타난 것이 1920년대 쯤에 브릿지 부분에 탄소 버튼 마이크를 부착해서 진동을 끌어오는 방식의 시초였음.
나중에 이게 발전해서 트랜스듀서 픽업이 되는 거야 근데 당시에는 출력이 너무 낮아서 금방 사라지긴 했음
그 때 어떤 사람이 일렉트릭 기타의 시초를 제안함. 최초로 상업적으로 판매된 일렉기타는 1932년 조지 부쉬앰프와 폴 바스가 함께 만든 기타인데 프라이팬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다고 프라이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음.
이 기타를 발전시켜 피드백을 극도로 제한한 마그네틱 픽업을 만들어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아돌프 리켄베커.
II.일렉트릭 기타의 발전
아돌프 리켄베커는 프라이팬 탄생 이후 부쉬앰프와 바스와 함께 하였는데 1934년 돌연 회사 이름을 "Rickenbacker"로 바꿔버림.
이 후 생존한 모델이 싱글코일과 할로우 바디를 채용한 Rickenbacker 300시리즈.
이게 소프트락이나 컨트리 장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그 유저 중 유명한 인물이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이었음.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던 어쿠스틱 업체 깁-슨 또한 이에 지고 싶지 않았는지 1936년 자신들 기타에 픽업을 붙여 최초의 (리켄베커는 아치탑이 적용되지 않았는데, 이 때 깁슨이 상판에 아치탑을 박은 구조를 특허를 출원했기 때문이었음.) 아치탑 일렉트릭 기타 ES-150을 출시하게 됨.
당시 광고. 자신들이 원래 판매하던 아치탑 어쿠스틱 기타 L-5에 픽업을 붙여 출시했다.
150은 그저 150달러에 출시했다는 뜻으로 150을 붙였대
근데 이 때 일렉트릭 기타는 일렉트릭 기타라고 부르기엔 그저 통기타에 사운드홀을 옆으로 밀어 놓고 픽업을 붙였을 뿐이었기에 결국 하이게인 하이볼륨에서 하울링은 해결할 수가 없었고, 그 이유로 세미할로우 바디를 개발하게 됨
리켄베커가 이 당시 만들던 기타는 기타라고 하기도 뭐한 모양이었고, 1950년대에 가서야 진정한 현대 리켄베커의 모습을 한 기타를 개발하게 됨.
이게 리켄베커에서 1930년대에 개발하던 기타..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제 1940년대에 들어서서 세미할로우 바디를 개발하게 되지. 그 때 어쿠스틱엔 존재하지 않던 '센터블럭'을 집어 넣어 울림을 감소시킨 기타를 세미할로우라고 함. 존 레논, 노엘 갤러거, 글렌프레이 등 밴드 아티스트나 비비킹, 챗 앳킨스가 대표 유저였음.
III.레스 폴
다시 1920년대로 돌아가서, 레스 폴이라는 남자는원래 유명한 기타리스트였음. 그리고 동시에 루티어로서도 활동하고 있었음. 물론 기타를 자기 돈 써서 낼 만큼 용기가 있진 않고 기타를 만들어서 조수한테 체험 시키는 정도였는데, 기타 볼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폴은 생각했음
"아 ㅆ~ㅂ 생각해보니 이 씨발챔버만 없으면 하울링이 개 좆도 없겠노 ㅋㅋ"
맞음. 철 조각에 실험해보니까 귀신같이 피드백이 사라졌음.
그래서 레스폴씨는 1930년대까지 활동을 중단하고 훨씬 오래 유행하고 야무지게 될 기타를 고안하다가 1930년대에 복귀하게되지.
처음엔 소나무로 기타 넥을 만들고 옆에 날개부분은 존나게 무거운 메이플 넥으로 ㅈㄴ 크고 무거운 기타를 만든 데다가 집에서 직접 만든 핸드와이어드 픽업과 고물 트레몰로 암을 장착했음.
문제는 이 때 이 새끼도 보수적인 본능은 남아있었는지 끝까지 쓰루넥 기타에 옆에 장식으로 몸체를 붙이는 기행을 함.
레스폴씨는 1950년대에 드디어 생각을 바꿈. 도저히 이 챔버가 필요없다고 느꼈고 또한 녹음이 귀찮았는지 연주와 동시에 기타가 레코딩도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기타계의 노무현이라고 할 수 있는 기타를 생각해 내는데, 루퍼와 컨트롤보드, 일렬 노브를 채용한 54 커스텀 기타를 개발하였고,
그래도 뭐 새로운 형태의 기타를 개발했으니 폴끼얏호우~~~폴끼룩끼룩 외치며 깁슨에 찾아갔는데
깁슨은 이미 이 당시에도 애국보수틀딱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는 개병신장애도태기업이 되어야 마땅한 브랜드였고, 레스폴이 가져온 이 환상적 기타를 픽업달린 빗자루 같다며 운지시킴.
그리고 나중에 펜더에서 에스콰이어와 텔레캐스터를 출시해서 대박을 치기 전까진 관심이 없었지. 그리고 1950년쯤에, 화들짝 놀라서는 그제서야 레스폴을 출시함.
그게 바로 P90을 채용한 골드탑 깁슨 레스폴 오리지널. 1958년, 드디어 체리 썬버스트 험험 레스폴을 출시하는데, 지금 그 오리지널 1958이 1만달러가 넘는댔나,
암튼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하드락, 재즈, 레게 등 모든 장르에서 레스폴을 쓰는 기염을 토했음.
그런데, 사람들이 그럼에도 레스폴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깁슨은 헤드스탁이 과하게 꺾여있어 출시 때부터 이미 넥뿌 이슈가 너무 많았고, 튜닝 안정성도 떨어지고 너트도 윤활되지 않아서 치다가 혹은 튜닝하다가 너트가 폭발하는 등 사고가 있었다고 함. 그래도 이걸 사람들이 쓰는 이유?
"무대에서 아티스트들이 쓰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Only Gibson is enough."
그렇다. 그 때도 지금처럼 악성 깁빠들이 있었다. 저런.
IIII.넥과 바디가 분리가 된다고!!!
넥과 바디가 분리가 되는 기타 텔레캐스터. 레스폴씨가 레스폴을 만들려고 애쓰던 1940년대에 라디오 수리점을 부업으로 하던 레오 펜더씨에게 샌디에고에서 찾아온 손님이 통기타를 일렉기타로 개조해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하는데 그 때 T형 포드의 자석을 이용해서 마그네틱 픽업을 만들어서 개조해주는데 이걸 보고는 기타리스트 닥 커프먼이 함께 핸드메이드 커스텀 기타를 제작하자 제안하였고, 3년 뒤 커프먼이 떠나면서 펜더사가 설립되게 됨.
레스폴이 깁슨에 매몰차게 거절당한 그 시점 펜더는 Esquier 모델을 생산함. 문제는 이 때 텔레캐스터와 비슷한 형태였던 에스콰이어는 트러스로드가 없었고, 강성이 약한 병신목재 마호가니를 쓰는 대신 좆나게 무겁고 단단한 메이플 넥을 나사로 고정하는 방식을 채택함,
이유는 "어차피 단단해서 잘 휘지도 않는데, 어차피 넥은 소모품이니까 휘면 그냥 새로 사다 박으쇼~"라는 논리.
애초에 펜더는 ㅈㄴ 싼 목재와 ㅈㄴ 싼 공법으로 ㅈㄴ 싼 기타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거 사봤자 얼마 안하긴 했음.
픽업도 하나지만, 이쁘긴 이쁘다 이 기타가 브로드캐스터라는 이름으로 바꿨다가 그레치한테 고소쳐먹고 데칼 뗀 채로 팔아서 (No caster)노캐스터 라는 이름으로 팔다가 1951년 텔레캐스터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시한게 현재의 모습.
대표 유저로는 지미페이지, 리치코젠, 키스리처드, 프린스 등.
다음은 스트라토 캐스터로 넘어가는데,
스트라토 캐스터는 먼저 말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디자인이고 세상에서 가장 카피가 많은 디자인임.
스트랫은 레오 펜더 혼자 디자인 한 게 아니라 펜더, 빌 칼슨, 조지 풀러튼, 프레디 탈리스만이 함께 디자인한 일마갤 콜라보급 초거명작이라고 할 수 있지
스트링 텐션 기반 트레몰로, 비브라토로 그냥 초 역대급 브릿지를 개발해내고, 범용성을 위해 텔레캐스터를 넘어서 미들픽업을 부여하고 5단 셀렉터를 이용하였음.
이 때의 트레몰로 브릿지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좋았다고 생각함. 초기 버전에 쓰인 스트랫은 트레몰로 브릿지를 트레몰로 모드와 고정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방식이었는데 고정 모드에선 튜닝 안정성이 훨씬 좋아졌다고 함. 또 더블 컷어웨이를 적용해서 훨씬 하이프렛 연주가 쉬워졌다는 장점도 있지.
IIIII.진보의 희망, 에디 반 헤일런
에디 반 헤일런, 약칭 EVH는 스트랫을 개조해서 스트랫의 연주능력과 깁슨 스타일의 묵직한 소리를 내기 위한 마개조 부기 바디로 시작했으며
플로이드로즈 브릿지와 라킹너트도 이 때 EVH가 의뢰해서 EVH를 위한 정교한 튜닝을 위해 개조되었음. 물론 이 당시의 플좆은 플좆이 아니라 플갓이라고 해도 될 수준으로 정교한 튜닝과 며칠간 떨어지지 않는 튜닝 안정성을 자랑했지만 스티브바이, 조 새트리아니 이새끼들이 "오 그럼 아밍을 더 깊게 해도 튜닝이 잘 안나가겠노 ㅋㅋ" 싶어서 바디를 더 깊게 파내고 아밍을 더 격하게 흔드는 주법이 개발된 이후로 진정한 플좆이라는 개념이 되었음.
감전은 안되냐?
근데 지금은 사업가라면서. 5150 난 안써봐서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때 고전적인 방식을 깬, 그러니까 테크닉이 강조된 시대가 오면서 슈퍼스트랫이라는 명칭이 쓰이게 된 것 또한 EVH의 업적임.
이후 스트랫이나 레스폴같은 클래식하고 스테디한 기타들은 더이상 변형될 필요가 없었고, 그 자체로서 이미 상징이고 기본이 된 반면에
프랑켄슈타인으로 시작한 슈퍼스트랫이라는 기타에서 뻗어나간 기타들이 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음.
예를 들면 몽키그립을 채용하고 무한에 가까운 서스테인을 자랑하는 서스테니악 픽업을 장착한 스티브 바이 시그네쳐 모델 등이 있겠고,
슈퍼스트랫은 레스폴, 텔레캐스터 등과 이종교배하면서 더욱 끔찍하고 악랄한 후세대 기타가 탄생하게 됨.
존 페트루치가 사랑하는 뮤직맨 마제스티 모델은 피에조를 일렉기타에 채용한 동시에 사틴 마감으로 속주가 쉬운 부드러운 재질이 적용되었고,
토신 아바시같은 8현 기타들도 생기거나 헤드리스기타도 탄생하게 됨.
헤드리스 기타는 헤드스톡이 없고 플좆보다 튜닝이 간편하고 튜닝이 더 안정적이라고 함. 실제로 브릿지가 바디 끝에 달려 있어 트레몰로도 플좆만큼 내려가기도 하고.
그,,
난 헤드리스 안좋아함.
이렇게 기타 이야기가 끝났는데, 역사 소개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재미는 별로 없을 수도 있고 나도 여러 자료를 참고한 거다 보니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음
가볍게 봐주면 고맙겠고, Prs는 소개하지 않아서 아쉽지만
이새끼들은 역사가 너무 짧음. EVH보다 더 완벽한 스트랫겸 레스폴을 만들고 싶어서 폴햄이 1985년에 설립하고 만든건데 기타를 너무 못쳐서 기타를 잘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루티어가 되었다고 함. 끗~
그리고 내가 조사하다가 신기한 기타를 하나 발견했는데, Relish guitar라고 아는 게이가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스위스 브랜드임.
와 이쁘다.. 그런데
자체 앰프 프리앰프 내장, 여러 픽업들에 자신들의 파츠를 붙이면 탈부착 가능한 진정한 초 범용 기타라고 함.
이 브랜드는 기본 500만원은 넘어가고 비싼건 1000만원도 넘는다던데 그렇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