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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스압 글많음 추석 특선 음악사 -재즈 1-
재즈의 시초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햄한테 누군가 질문했어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루이:궁금해도 우린 알 수 없어용~
이 말이 정확한 게 재즈가 하나로 딱 정의하기가 어려운 말이야
왜냐면 재즈 자체가 너무 여러가지로 뿌리내리기도 했고 뮤지션들 각각 자신만의 스타일과 깊이가 있거든
그러면 재즈 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가
많은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해도 여러 추측만 잇을 뿐인데 그 중 가장 재밌고 유력한 썰이 잇음
1. 19세기 후반 찰스라는 말에서 시작됐다는 설
찰스가 19세기 가장 유행하는 이름이었어 한국으로 치면 민준 같은 말이지
이게 니그로들 사이에서 섹스를 뜻하는 은어로 쓰였는데 이걸 빨리 발음해서 챠스, 거기서 또 은어화해서 쟈스, 그게 1910년대에 와서 재즈로 불렸다는 말이지
2. 쟈스가 찬사로 쓰인 이야기
재즈 뮤지션들이 혼신의 연주를 하고 있는데 청중이 "Jass(쟈스) it up!"라고 말한 것이 재즈로 굳어졌다는 이야기,
이 외에도 향이 강한 식물인 쟈스민에서 왔다는 이야기나 프랑스에 수다떨다 라는 뜻을 담고 있는 방언 쟈세르에서 왔다는 설,
뉴올리언스 술집 오피녀랑 뜨밤을 보내는 행위를 자이브 애쓰 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왔다는 말도 있어
비슷한 예시로 로큰롤의 락과 롤이 1950년대에 성적인 은어로 쓰이기도 했대
2.재즈의 본고장
재즈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미국인들 음악이라고 하면 반박할 수 있어
미국에서도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탄생한 배경이 있는데 뉴올리언스는 원래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었고
멕시코 만,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어서 항구도시로 발전했었어
그러다 1763년 스페인 소유가 됐다가 다시 1801년 프랑스 소유가 됐는데 이 과정에서 스페인사람, 프랑스사람,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까만 목화 생산기들이 다 같이 살게 됐는데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유럽사람과 목화기계들이 결혼하면서 태어난 혼혈인들을 '크레올'이라고 불렀어 하프홍어 하프센징같은 하프니거지
시기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지만 처음의 크레올들은 신분에서 자유로웠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심지어는 흑인 노예를 부리는 크레올도 있엇다고 해
이렇게 자유로웠던 이유는 흑인에 대해 관대했던 프랑스가 미국에 뉴올리언스를 넘길 때 프랑스, 스페인을 조상으로 하는 흑인들에게 백인들과 같은 신분을 보장해달라고 조건을 걸었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크레올들이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주로 배운게 랙타임이야 근데 음악을 배울 수 없던 흑인들은 크레올들 음악을 훔쳐들으며 익혔는데 이게 가스펠이나 블루스적인 냄새가 진하게 났지
그래서 재즈는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가 함께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
3.재즈의 역사
노예들은 하루하루 지옥같은 나날을 버티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면서 재즈로 발전해
그리고 이 음악이 시빌워, 흑인 노예해방. 월드워1, 경제대공황같은 큼지막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이런 음악들을 크레올들이 미국전역으로 날랐지
그리고 흑인들이 기독교를 접하게 되면서 재즈의 실질적 뿌리라고 볼 수 있는 흑인영가가 탄생해
흑인 영가중 대표적 작품으로 Swing low, Sweet Chariot 이 있어
3-1, 리듬의 변주
랙타임은 주로 선술집에서 흑인 연주자들이 피아노로 연주하던 2박자 음악이야
재즈의 프로토타입이다 보니 재즈가 맞냐 아니냐로 논쟁이 좀 많아
랙타임이 즉흥연주 요소가 있긴 한데 리듬만 있을 뿐 솔로잉은 아니다 보니 그렇더라고
스코트 조플린이라는 음악가는 자기 음악을 점점 빠르게 연주하는 연주자에게
절대로 자기 음악에 변주를 주지 말라고 버럭버럭 화를 쳐냈다고 해 그래서 이런 악보대로 연주하는 음악을 재즈라고 볼 수 잇을까? 이런 말이지
근데 랙타임이라는 이름은 고르지 못한 이라는 이름처럼 박자를 약간 벗어나게 연주하는 음악이야 그래서 이런 변주를 주는 스타일이 재즈에 영향을 줬어
일붕이들은 랙타임이 재즈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
블루스는 백인들의 멸시를 견디며 살아가던 흑인들의 고통을 담아낸 음악이야
재즈가 생기기 전에도 흑인들은 노래를 자주 불렀는데 누가 다음 생엔 더 행복하게 살기를 노래하고 그 노래를 듣고 옆에서 함께 따라부르던 이 노래가 블루스로 발전하지
결국, 재즈는 종교적 성향이 담긴 흑인영가, 흑인들이 연주하던 랙타임, 흑인들의 노동요 블루스에서 시작됐어
공통점은 먼저 들려주는 음악의 주제에서 즉흥연주를 한다는 것이 바탕이 되지
4.사창가 bgm
그런데 이런 감동적인 시초와는 다르게 처음엔 홍등가나 댄스홀에서 춤 출 때 들리는 배경음악 정도로 여겨졌어
춤추면서 듣는 노래가 뭐가 문제가 되냐??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냥 춤추는게 아니라 남녀가 성적인 춤을 추는 것에서 문제가 됐던거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시카고 에서는 여자주인공 록시가 내연남을 쏴 죽이고 법정에서 이렇게 말을 해
"멀리하고 싶어요., 재즈와 술을."
그리고 그 발언을 기자들이 신문에 올리지, '재즈와 술이 록시를 타락으로 이끌었다'
물론 1940년대 쯤에 미군들이 해외로 파병되면서 유럽에 퍼뜨렸고 유럽에선 재즈를 양지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
당연히 사창가에서 들리던 노래가 양지로 끌어올려지니까 틀딱들은 분개했지만 의외로 젊은 층에서 좋아하면서 양지로 끌어올려지고 세계적 음악으로 발돋움해.
5. 재즈의 묘미,즉흥연주
재즈를 상상해보자. 재즈바에서 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자신들만의 개성대로 연주를 하는 게 연상되지 않아?
하지만 의외로 재즈 연주자들은 서로 사전에 스타일이나 구성을 약속하고 연주해 그리고 함께 한 연주자나 장소에 따라서 같은 곡이 다르게 연주되는 게 재즈의 묘미지.
보통 탑 재즈뮤지션들은 레코딩 할 때에도 원곡이 아니라 즉흥 연주로 레코딩을 하는데 1920~ 40년대 스탠다드 재즈 전성기에는 레코딩 기술이 안좋다 보니 모든 악기를 한 방에 모아놓고 한번에 연주했어 그러다 보니 한명이 틀려도 돈이나 시간이 없으면 그대로 앨범에 들어간 적도 있지
물론 즉흥 연주를 하지 못할 때도 있엇는데 빅 밴드가 유행할 때는 각 세션의 연주자들이 딱딱 정확하게 연주해야 했기 때문에 이럴 땐 즉흥이 아니라 편곡된 음악을 연주했지 지금은 이 편곡식 재즈와 즉흥 재즈가 적절히 융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돼
6.최초의 음반
그럼 최초의 재즈 음반은 뭘까?
뉴올리언스에서 활동한 5인조 밴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밴드'에서 처음으로 재즈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첫 밴드라고 알려져있어
그리고 의외로 최초의 재즈라는 명칭을 사용한 밴드 딕시랜드에서 따온 딕시랜드 재즈는 뉴올리언스 초기 재즈 중 백인들이 연주한 재즈를 뜻해
그리고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했고 구성에는 트럼펫과 트롬본이 꼭 들어있었지
원래 딕시랜드는 'Stein's band from dixi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처음에 기술한 것처럼 청중이 "쟈스 잇 업!"이라고 외쳐서 밴드 이름에 jass를 넣게 되지
그리고 1917년 발매된 음반 Liberty stable blues에는 jass라는 이름으로 써져있었기에 정황상 최소한 1917년 이후, 아마도 1920년대 쯤으로 예상돼
7.재즈의 상징 블루노트
블루노트는 블루스 스케일에서 쓰이는 노트 b3, b5,b7도를 말하기도 하지만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심지어 영화로도 발매된 레코드사 블루노트레코드가 있어
재즈의 최전성기를 이끌고 재즈의 역사를 담고 있는 블루노트레코드는 재즈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름만 들어도 보장되고 그냥 무지성으로 쳐듣는 재즈의 근본 킹갓레코드야
블루노트는 독일 베를린 출신 유대인(한국출신 조선족?) 알프레드 라이언이 만들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 맨해튼에 정착하는데 그는 재즈를 그냥 본능으로 느끼는 마니아였어. 근데 일붕이들도 그렇듯 꼭 커스텀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도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게 되지
첫앨범은 1939년 1월, 피아니스트'미드 럭스 루이스'와 '알버트 애먼스'가 녹음한 부기우기 블루스 피아노 앨범이야
이게 블루노트의 시작이며 히트를 치게 돼
그 후 친구 프란시스 울프가 함께 하며 찍은 사진을 앨범자켓으로 쓰기도 했어
그런데 블루노트에서 이 때 만들던 음악은 상업성은 별로 없었지만 재즈의 근본을 지키는 역할을 했어
재능있는 연주자를 섭외하면서 음악성을 발전시키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니아들을 이끌며 블루노트가 성장하게 돼
그리고 알프레드 라이언이 군대를 갔다 온 후엔 이미 비밥이 성행하고 있었고 이때부터 알프레드를 이어 재즈엔지니어계 전설 루디 반 겔더가 블루노트를 맡았는데
루디 반 겔더가 블루노트를 맡기 전까진 부모님 집 거실 샹들리에에 마이크를 걸어놓고 녹음했대..
"당신은 예술가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예술에 집중해요. 파는건 우리가 해요"영화 블루노트 레코드에 나오는 대사. 파산위기에도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했던 블루노트 설립자들의 정신이 보여진다
그리고 블루노트는 앨범커버도 참 예뻐. 프란시스 울프의 사진에 그래픽디자이너 레이드 마일즈가 함께한 블루노트만의 스타일이 트레이드마크가 됐어
재즈마니아들은 블루노트에서 나온 앨범들을 좋아하고 음반을 수집하는데 보통 일련번호를 보고 수집해, 그 중에서도 명반들이 집중된 1500, 4000번대가 주 수집대상이지
2019년에 나온 영화도 있으니까 한번 봐봐 아니면 나중에 디스코드로 일마갤상영회같은거 해도 좋을거같은데 좆목논란에 가로막힌
다음 편에서는 재즈의 흐름에 대해 서술할게. 진짜는 2편이라고 봐도 될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