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일하시는데 죄송합니다, 기타 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2
GUITAYASU
2023-12-12 18:52:41
조회 1296
추천 36
#2 게인을, 그렇게 게인을 높이지 마라
외톨이에게 다른 사람과 같이 걷기란 일종의 리듬게임이다.
고난이도의 빠른 노트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쉬운 난이도의 느린 노트를 마주하면 그만큼 어려운게...
“모모세씨? 괜찮으세요?”
“아, 다른 생각 중이었습니다...”
“후훗, 저보다 연상이시니까 반말로 말해주셔도 괜찮아요.”
“네.. 아니 어..”
상경하고 나서 반말을 할 일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도 않고 같이 일하는 연하의 아르바이트생들한테도 존댓말을 썼으니까.
어느샌가 반말을 하는게 어색한 일이 되버렸다.
걷는 속도 맞추기에 반말까지, 호시노 아이바라는 소녀와 함께 있을수록 현실 난이도가 오르는 기분이다.
“도착했습니다, 아니.. 여기야.”
“와ㅡ아!”
곳곳이 들어오지 않는 LED전구들로 꾸며진 낡은 전광판.
그곳엔 [CREEPS]라고 적혀있었다.
브릿팝을 좋아하는 사장의 취향이 드러난 가게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여고생이 눈을 반짝이며 서있었다.
“계단 경사가 높으니까 조심해.”
여느 라이브하우스들이 그렇듯 이곳 [CREEPS] 또한 지하에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퀘퀘하고 차가운 지하 공기에 우릴 감싸왔다.
이제 내겐 너무 익숙한 공기에 여태까지의 긴장이 사르르 풀려왔다.
짤랑짤랑ㅡ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종소리와 함께 텅 빈 라이브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라이브하우스...”
감격한 듯한 표정의 호시노를 뒤로 하고 나는 바 뒤쪽으로 향했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허름한 이불 안에서 안대를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음~ 네즈오 왔구나.. 별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녀가 바로 이 곳 [CREEPS]의 사장, 하루나 마미다.
“어 음... 담배가 어디있더라...”
“여기요.”
비몽사몽하며 테이블에 손을 휘적이는 모습을 보다 못해 그녀의 손에 담배를 쥐어 줬다.
“고마워어..”
지금은 이렇게 글러 먹은 모습이지만 한 때는 꽤 인기 있는 걸밴드의 기타 보컬이었다.
그때는 꽤 산뜻한 느낌이었다고 하는데 3년간 그녀를 봐온 입장에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 여자다.”
“여자다, 라니...”
하루나의 시선이 호시노로 향했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시선이 돌아왔다.
“우히히.. 너도 참 음흉한 걸? 여고생을 꼬시다니.”
“그런 거 아니예요!”
한참 라이브 하우스의 전경에 정신이 팔려 있던 호시노가 이제야 하루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호시노 아이바라고 합니다. 모모세씨에게 부탁해서 따라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격식차릴 필요 없어~ 난 여기 사장 하루나 마미라고 해. 마미짱이라고 불러줘.”
“네! 마미짱씨..”
하루나는 호시노의 대답에 한바탕 웃더니 “마미짱만으로 괜찮으니까ㅡ”라고 말하고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갔다.
난 그제야 겉옷을 벗어놓고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기타!”
기타를 꺼내자마자 라이브하우스를 구석구석 탐색하던 호시노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실내에선 뛰지 말아주세요..”
언제나 손님에게 하는 말을 꺼내자 호시노는 브레이크를 걸듯 멈췄다 다시 천천히 걸어왔다.
“제가 아는 생김새랑 무언가 달라요!”
기타를 한참 보다가 내게 대답해달라는 듯이 시선이 향했다.
“일렉기타는 종류가 다양하거든. 보통 일렉기타하면 스트랫형, 레스폴형 같은 걸 많이 생각하지만 내껀 오프셋형 기타야.”
“스트랫? 레스폴? 오프셋?”
호시노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만한 게 일반적으로 기타라고 하면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정도의 구분만 하지 세세한 분류까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단 같은 일렉기타 안에서도 다른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둬.”
이걸 전부 설명했다가는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하루가 지나고 말 것이다.
“슬슬 시작해볼까.”
기타 앞주머니에서 스트랩을 꺼내 기타에 체결한 채 매고 케이블을 각각 기타와 앰프 헤드에 연결했다.
앰프 헤드의 파워와 스탠바이를 키고 기다리자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와...”
황홀한 표정의 호시노를 보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 처음 대형 앰프 소리를 들었을 때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동하면서 튜닝이 틀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6현부터 한 음씩 울리며 튜닝을 끝내고 부드럽게 스트로크를 했다.
E A D G B E
익숙한 소리.
준비가 끝냈다.
앰프 페달을 밟아 드라이브 채널로 바꾸자 노이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계속 알게 모르게 의식하던 호시노의 존재감이 흐려지고 오로지 나와 기타만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의 울림이 기타의 바디를 거쳐 내게 전해졌다.
기타와 하나가 되는 순간, 나만의 세계가 시작됐다.
+ + +
“와!!”
연주를 끝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호시노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호시노의 옆에는 언젠가 돌아온 하루나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요! 레이와의 록스타!”
레이와는 서기 2019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연호이다.
“레이와의 록스타!”
하루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호시노가 진심을 담아 따라한다.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세요 정말..”
나는 다시 앰프 페달을 밟아 클린 채널로 바꾸고 무대 턱에 걸터앉아 최근 인기 있던 곡의 초반 아르페지오를 튕기기 시작했다.
“이 노래 들어봤어요!”
내 기타 소리에 맞춰 호시노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타 연주를 누군가와 맞춰 보는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나는 연주를 중단하고 입을 열었다.
“기타 가르쳐 달라고 했지?”
“네? 네!”
태어나서 한번도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이 없다.
나조차도 기타를 제대로 배운게 아니었다.
동영상 사이트에서 유명한 기타리스트의 커버 영상을 느리게 재생하며 손 모양을 억지로 따라 하면서 시작했다.
잘못된 버릇도 많았고 여태까지 고치지 못한 것도 있다.
이런 내가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호시노를 지켜보며 기타를 잘 치고 싶다고 갈망했던 과거가 계속 떠올랐다.
그건 분명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순수한 열정이었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나와 함께 밴드를 해줘.”
“밴...드...”
여태까지 어느 밴드의 멤버도 밴드 멤버를 모집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밴드 멤버를 처음부터 가르쳐서 만든다면?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열정적인 호시노라도 선뜻 수락하긴 어렵겠지.
“아무래도 나 같은 반푼이랑 밴드하는건 좀 그러..”
“좋아요!”
호시노의 눈이 다시금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그녀와 마주했을 때 보았던 선명한 바다색의 눈동자였다.
“기타도 밴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더 안쓸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