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일하시는데 죄송합니다, 기타 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3-1
GUITAYASU
2023-12-18 20:18:52
조회 1441
추천 34
#3 내가 기타를 가르칠 수 있을 리 없잖아, 무리무리! (※무리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호시노, 기타는 가지고 있어?”
“....”
갑작스러운 호시노의 침묵.
우리 셋을 제외하곤 텅 빈 라이브하우스의 공간감이 느껴졌다.
“설마 너...”
“있... 있어요! 그게 좀 낡고 그래서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어.. 그래..”
일렉기타에 관해서 ‘낡다’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누구에겐 스크래치나 덴트만 있어도 낡은 것이지만 넥이라도 부러지기 전까진 신경 쓰지 않고 쓰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낡은 느낌을 원해서 레릭*된 기타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고 빈티지 기타들은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곤 한다.
레릭 - 오랫동안 사용된 빈티지 악기들의 낡고 헤진 외관 그 자체를 말하거나, 커스텀 일렉트릭 기타나 베이스같은 악기를 주문할 때 외형에 도장 벗겨짐, 흠집, 황변 등 오랜 기간 사용한듯한 흔적들을 만들어주는 옵션을 말한다.
“네즈오, 리페어샵에 데려다주지 그래?”
“일단 그래야겠네요.”
하루나의 말에 내가 대답하자 호시노는 다시 반짝이는 눈을 하며 입을 열었다.
“리페어샵은 뭔가요!”
“말하자면 기타 병원 같은거지~”
“기타 병원...!!”
“또 이상한 비유를... 틀렸다고는 못하지만.”
하루나와 호시노의 봐주기 힘든 티키타카에 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호시노의 반짝이는 눈이 내게로 향했다.
마치 ‘저 신경쓰여요!’라고 외치는 듯이.
“말 그대로 기타를 고치는 곳이야.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어도 기타는 주기적으로 세팅이 틀어졌는지 보기 위해 맡기기도 해.”
“건강 검진 같은 거지~”
“건강 검진...!!”
“아무튼... 그럼 비는 시간 말해줘. 연락은...”
“라인 교환해요!”
라인...? 라인이라면 그 라인을 말하는 건가.
가끔 가족들이 보내는 안부 메세지나 일하는 곳 사장님들한테 땜빵 메시지가 오는 있으나 마나 한 그것?
아 가끔 모바일 게임의 프로모션 메시지도 오긴 한다.
“모모세씨?”
호시노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 화면에는 ‘Shake it!’이라는 글씨와 함께 ‘옆에 있는 친구와 휴대폰을 함께 흔드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이런 기능이 있었다고?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저 기능이 있는 거지?
“네즈오 너 설마... 한번도 안 해본 거냐?”
하루나는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그 QR코드로 하는 거라면...”
“네! 잠시만요.”
호시노는 순식간에 본인의 QR코드가 적힌 화면으로 바꾼 뒤 내게 보여줬다.
요즘 시대의 여고생은 역시 스마트폰에 능숙하구나.
몇 살 차이 안나지만.
+ + +
라이브 하우스에서 나오니 벌써 해가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주변이 유흥가이기도 하고 밤이라서 여고생 혼자 보낼 수는 없기에 가까운 역까지 호시노를 바래다줬다.
“그럼 오늘 중으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개찰구 안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호시노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나도 뒤돌아 집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편의점에 들려 캔 맥주를 사서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그만두기로 했다.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을 뿐이었다.
‘드디어 생겼구나 밴드 멤버.’
멈췄던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무리수일지도 모른다.
기타를 전혀 칠 줄 모르는 여고생을 처음부터 가르쳐서 같이 밴드를 한다.
몇 년이 걸릴지, 중간에 포기하진 않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호시노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꼈다.
지금은 거기에 전부 걸어볼 수 밖에 없다.
막막한 마음을 밤하늘에 날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평소처럼 기타를 아무렇게나 던져두곤 외투를 훌렁 벗고 대충 샤워를 했다.
미리 끓여둔 전기 주전자 물을 인스턴트 라면에 붓고 기타 교재로 뚜껑을 덮자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호시노에게서 손 흔들어 인사하는 토끼 스탬프가 와 있었다.
[호시노 :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확인해보니까 모레 학교가 빨리 끝나네요. 괜찮으시다면 그 날 가는 걸로 해도 될까요?]
모레면 편의점도 오전에 아르바이트가 끝내고 라이브하우스 아르바이트까지도 시간 여유가 있다.
[나 : 그래. 그럼 모레 역 앞에서 보자.]
[호시노 :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나 : 어 잘자]
이 짧은 라인 메시지가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인생에서 처음으로 여자와 사적인 메시지를 한 거라고 생각하니 복잡 미묘한 기분이었다.
“밥이나 먹자... 아..”
라면은 설 익어 있었다.
+ + +
이틀 뒤 오후 1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호시노와 만나기로 한 역 앞에 나왔다.
도착해서 잠깐 휴대전화를 보다 보니 역 계단에서 호시노가 올라왔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교복 차림의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덩치에 맞지 않는 하드 케이스를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겁지 않아? 내가 들게.”
“전... 전혀요! 무겁지 않은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이미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하드 케이스 손잡이를 잡았다.
호시노도 역시나 무거웠는지 순순히 하드 케이스를 넘겼다.
“감사합니다..”
하드 케이스는 이곳저곳 상처도 많았고 경첩 부분이 녹슬어 있었다.
손잡이 부분은 많이 들고 다녔는지 헤져 있었다.
기타가 꽤 낡은 물건일 거라는 것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
“어디 중고 물품을 사왔을 거 같지는 않고.. 물려 받은 거야?”
“네, 어머니의 물건이에요.”
호시노는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리페어샵까지 말없이 걸어갔다.
역에서 얼마 걷지 않아 골목에 진입하자 [오니야마 공방]이라고 쓰여진 표지판 아래 도착했다.
내가 도쿄에 상경한 이래 쭉 신세 지고 있는 리페어샵으로 꽤나 솜씨 좋은 사장님이 직접 리페어를 하는 샵이다.
“어서오세요~!”
샵에 들어가자 교복 차림의 소녀가 우릴 맞이했다.
그녀는 리페어샵 사장님의 딸로 종종 일에 집중하는 사장님을 대신해서 접객을 하곤 했다.
“모모세군이 사람과 함께? 심지어 여자랑? 여자친...”
“아니야.”
“역시나.”
“역시나?”
황당해하는 내 앞으로 호시노가 나와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호시노 아이바라고 합니다. 모모세께 기타를 배우고 밴드를 하기로 한 사이에요.”
“흐응~ 그래? 난 오니야마 레이라고 해. 오늘은 호시노짱의 기타를 맡기러 온건가?”
“어, 아직 나도 기타를 직접 보진 못했어. 꽤 낡은 물건인 거 같아.”
“잠시만 기다려줘.”
카운터 옆에 하드 케이스를 내려놓자 레이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사장님을 부르러 갔다.
그 사이 호시노는 벽에 걸려 있는 기타와 악기들에 시선이 빼앗겨 있었다.
“저 악기는 잘 모르지만 하나하나 다 정성스럽게 다듬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악기에 진심이거든, 여기 사장님.”
그렇게 호시노와 함께 악기들을 말없이 구경하다 보니 레이와 함께 사장님이 카운터로 나오셨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한참 새로운 배선을 만들던 참이라서... 기타를 보여주겠나?”
사장님의 말에 하드 케이스를 카운터 위로 올려놓고 잠금 장치를 풀자 마치 던전 속 보물 상자 마냥 ‘끼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리고 사장님은 케이스 속 기타를 확인하자마자 말씀하셨다.
“미안하지만 이건 당장 고칠 수 없네.”
더 안 쓸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