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기타는 미묘하다.
ㅇㅇ(175.126)
2020-06-05 21:26:12
조회 335
추천 15
좀 긴 글이다. 한번쯤 읽어줬으면 좋겠다.
기타는 미묘하다.
본인은 음악하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릴때부터 바이올린 만지면서 커 왔다.
10살. 처음 잡았던 기타의 촉감이 아직 느껴진다.
내가 처음 연습한 곡은 우습게도 로망스였다.
클래식을 주로 하던 나는 정말 무식하게도, 어찌보면 현명하게도 음계를 주구장창 외웠다.
그 곡을 완성하는건 14살, 3년이 더 걸렸다.
난 아직도 그걸 기억한다. 고모의 기타로 그 곡을 연주한 그때를
14살때까지 그 곡을 떼고 나선 정말 안 해본 곡이 없었던 것 같다.
초딩때 유행했던 로이킴 ‘그 준영’이 리메이크한 먼지가 되어가 너무 쳐 보고 싶었었다.
그냥 대충 귀카피하고 처 봤더니 정말 똑같더라..
지금 보면 꼴랑 코드 카피에 디테일 넣은게 다인데 ㅋㅋㅋ
그해 겨울방학을 지나고 난 중학교에 입학했고, 밴드부에 가입했다.
음악 준비실에 놓인 일렉 두 대. 내 기억에 하나는 prs형 싼마이였고, 하나는 스콰이어 싼마이였다.
그 때였다. 내 첫 기타가 생긴게.
나는 첫 기타치곤 엄청난 가격의 스콰이어 클바를 샀다.
하루에 6시간씩 쳤다. 밥도 거르고 쳤었다.
그땐 귀카피 존나 엉성했다 ㅅㅂ ㅋㅋㅋㅋ 대충 쳐도 음은 비슷했었다.
근데 시발아 난 그때 내가 천잰줄 알았지 ㅋㅋㅋ
조또 아니었다. 나는 입시를 시작했었고, 보기좋게 예고에 떨어졌다.
나는 절망했다. 입시학원에서 내가 젤 잘 쳤는데, 누가 붙었나?
아, 입시는 돈이라던데, 그게 맞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조또 아니었다. 고작 예고 입시갖고 이렇게 꼴불견인 내가 쪽팔렸다.
그날 집에 가서는 입시곡을 몇십번 쳐 봤다. 진짜 울면서 쳤다.
나는 실패했다.
아직도 피아니스트 일 하고계신 고모는 위로하셨다.
아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이후로 기타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뭐든지 했다. 무엇이든.
공부든, 운동이든, 게임이든, 기타로 인해 잃어버린 것을 해 보았다.
존나 재밌었다. 인생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
1년이 지났다. 저번주에 문득 기타를 꺼내보자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짜 고민했다. 저걸 뭔 낯짝으로 보지?
결국 어젯밤에 기타를 꺼내 들었다.
앰프와, 팔려고 박스안에 넣어논 이펙터들 위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넥에서 느껴지는 그 촉감.
마치 처음 기타를 잡았을 때의 것과 똑같았다.
입시곡을 쳐 보려 했다. 기억이 조또 나지 않았다.
왜지? 존나 이상했다. 밴드부 했을때 쳤던 것도 기억이 나는데
이제서야 알겠더라. 난 그 곡에 전혀, 일말의 흥미따윈 갖고있지 않았었다.
이제서야 알겠더라. 전혀 간절하지도 않았더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기타는 내 진로가 아니었다.
기타는 내 놀이기구였다. 지금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거다.
기타는 미묘하다. 넥의 촉감은, 특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