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기세이] 기억을 더듬어본다.

5hp
2025-10-20 03:19:00
조회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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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떤 일이 있어서 써보기로 마음 먹음.

좀 길 거야.







난 기타를 15살 때 시작했다. 하지만 기타에 대한 관심은 그보다 일찍부터 있었어.



타지에서 막 서울로 전학온 13살 어느 네이버 블로그에서 영화 썸머워즈에 Welcome to the Black Parade를 넣어서 만든 영상을보고 록과 밴드 음악에 빠졌어.

그리고 자연스레 기타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지.

생각날 때마다 스쿨뮤직에서 데임 세인트 T250 상품 페이지를 보며 기타를 갖고 싶다 생각만 했어.

그렇게 생각만 하면서 2년이 지났지.



아마 중학교 2학년 현충일 전날이었을 거야. 학교에서 우리 학년 중 일부 반들만 방과 후 운동장에서 다 같이 고기 구워먹고 밤엔 텐트 치고 친한 애들끼리 모여서 자는 이벤트 같은 걸 했어.

그때 친한 친구(베이스를 치게 되는 놈)가 같은 텐트에서 밤을 보냈는데 걔가 갑자기 케이온을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당시 나는 이미 초6 때부터 씹덕이었고 당시 2010년 초반에는 지금처럼 씹덕에 대해 사회가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숨기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얘가 씹덕에 관심을 보인다고? 나는 바로 보라고 했지.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내가 씹덕이란 걸 걔가 알게 되면 멀어질까 두려워 숨기고 있었거든.

그렇게 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서로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걔가 케이온을 보고 오겠대


그리고 6월 7일 현충일 다음날 학교에 가니까 걔가 하루만에 케이온 1기를 다 봤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밴드를 하쟤? 나는 마침 기타도 치고 싶었으니까 알았다고 했지.

걔가 드럼 칠 애를 친구 통해서 어떻게 데리고 오고 또 다른 기타 한 명은 내가 데리고 와서 가장 맨 처음의 4명이 모이게 됨. 심지어 다 같은 반이었고.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 때 제대로 기타를 시작했지. 그 친구가 아버지 통해서 얻어다준 기타로.

빨간색 스트랫이었는데 브랜드는 기억이 안나고 실제로 당시 검색해도 정보를 못찾았음.

픽가드엔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 나오는 기로로 스티커가 붙어있었지. 암이 부러져서 아밍은 못해봤다.

아쉽게도 사진은 없음.


세상에 운 좋게도 4명 다 씹덕이라서 첫 곡은 케이온의 Don’t Say Lazy였어. 드럼 치던 친구가 중1 때 잠깐 방과후 특기적성으로 드럼 한 달 깔짝 배운 거 빼면 사실상 네 명 다 악기 입문자였음.

어떻게든 구한 낡은 중고 싸구려 악기들 중학생 꼬마들이 없는 용돈 모아 주말에 홍대 합주실 두 시간씩 빌려서 합주 연습했음. 합주 끝나면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저녁으로 햄버거 먹고.



난 그렇게 빌린 기타로 연습하다 2012년… 음 아마 가을~겨울 어딘가였던 것 같은데 아버지한테 졸라서 첫 내 기타를 가지게 된다.

당시 하루히의 God knows에서 나가토가 SG를 멋지게 연주하던 것과 슈퍼 소니코라는 캐릭터가 들고 있는 EMG 박힌 체리 SG가 너무 멋져서 나도 SG를 샀음.








난 근본 체리를 사고 싶었는데 그때 스쿨뮤직에 코로나 SG 체리 색상이 재고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진짜 내 기타를 가지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에보니 색상으로 주문함.







아직도 잘 가지고 있다. 최근엔 메인 기타들이 너무 짱짱해서 정말 손이 안갔지만 며칠 전에 줄도 갈아줬음.

기타의 소리가 좋고 나쁨이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 기타를 오래 연주하면 소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난 믿음. 솔직히 지금도 소리 꽤 괜찮은 것 같아.

이 SG를 12년에 사서 17년도에 첫 세컨 기타를 가질 때까지 주구장창 쳤으니 좀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기타는 한도리 추모단 콜라보에서 썼다.



4명이서만 보컬 없이 연습하다 중3으로 올라가고 학교에 건의해 우리들을 주축으로 밴드부가 생기고 부원들도 조금씩 생겨서 10명이 넘어갔음.

그리고 지역 교육청의 지원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장비들도 마련했지. 마이크, 케이블, 앰프, 드럼셋, 키보드, 모니터 스피커 등 전부 다.

아직도 기억난다. 기타 앰프는 레이니랑 테크21 기타 앰프였음. 난 록에 미쳐있어서 게인톤 빡세게 잘 나오는 레이니만 쓰고 테크21은 다른 기타 친구한테 유기했지.


또 운이 좋게 홍대에서 프로 활동하시던 기타리스트쌤이 우리 밴드부를 담당하시게 됐음. 덕분에 합주할 때 피드백을

해주셔서 우린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함.





그 선생님 밴드곡임. 모던락은 취향 아니지만 이 곡은 좋아했다. 기타솔로가 좋았음.



첫 무대는 우리 밴드부를 지원해준 지역 교육청에서 주최한 어떤 축제에서 했어. 그때 멋진 척한다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기타 뿔만 잡고 계단 타다가 떨궈서 넥조인트 부분에 금도 갔음.





후에 우리 학교 축제에서도 밴드부 담당 고문 선생님의 배려로 가장 마지막 순번으로 올라가서 피날레도 장식했었음.

옆동네 노인복지회관에서 트로트 선곡으로 딴따라도 해보고. (은근 재밌었음)

다른 애들 다 수업 받을 때 우리 밴드부만 관광버스 하나 빌려 음악실에서 앰프들 다 낑낑대며 싣던 기억이 새록새록함.

당시 겨울이었는데 눈 녹은 것 때문에 넘어질까 진짜 조심하면서 옮겼음. 딴따라 끝나고선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 먹었다.



중3 2학기 땐 고등학교 진학 원서를 넣잖아. 공부를 못하진 않았지만 난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어.

공고를 간다던 베이스 친구를 따라 가려다가 부모님이랑 싸우고 결국 인문계로 원서를 넣음.

결과적으론 정말 애석하게도 우리 밴드부를 시작했던 4명이 전부 다른 고등학교로 가게 됨.

우리의 시작이 케이온이니 케이온이 우리에겐 엄청 큰 의미가 있었거든?

근데 케이온 마지막화를 보면 4명은 졸업하고 아즈사랑 떨어지게 되잖아? 이때부터 이게 자꾸 우리랑 겹쳐보이더라고.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은 졸업식날 무대를 위해 연습을 하며 보냈다.

곡은 노브레인의 비와 당신이랑… 뭐였더라 기억이 안나네.

거의 매일 아침마다 기타를 매고 학교에 가서 연습하고 점심 먹을 때쯤이면 나오고 그랬어.

학교 정문 앞에 나무가 많았는데 점심 때쯤 정문 앞에 서있으면 햇살이 나뭇가지들 사이로 반짝이며 비치던 게 기억나네.

그리고 우리가 내뱉던 하얀 숨들도 잊을 수가 없다. 뱉어도 얼마 안가 사라지는 게 곧 우리도 이렇게 되겠구나 싶었음.

중3 감성 ㅁㅌㅊ?





[실제 학교앞 사진. 저렇게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쳤음.]



난 그때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나 물어볼까, 이게 우리의 끝인 건가 묻고 싶었는데 결국 물어보진 못했어. 어린 마음에 괜히 무서웠거든.



시간이 흘러 겨울방학이 끝나고 졸업식 전날이 다가왔다.

댄스부 애들이랑 무대위 장비 세팅 관련해서 티격태격하다가 그냥 우리 밴드부가 빡쳐서 무대 안해요하고 끝내버림.

결국 졸업식 당일엔 악기 없이 빈손으로 참석했고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서 졸업식 축하공연이나 봤다.




중학교 때 밴드 합주하던 순간들이 30살이 곧 머지않은 지금 내 지난 삶을 돌이켜봐도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호흡을 맞춰 연주한다는 게 너무나도 행복해서 입꼬리가 너무너무 맘대로 올라갔어.

어쩔 땐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웃은 적도 많았다.

물론 항상 즐겁지는 않았지. 때론 관심없는 곡도 했어야 했고. 15살 꼬꼬마의 마음에 내가 쟤보단 잘쳐야지 괜히 경쟁심도 생기고.

순진한 비씹덕 보컬친구한테만 괜히 틱틱대고. 앰프 먼저 선점하겠다고 일찍 오고.

뭐 암튼 뒤돌아보면 행복했던 기억들임.





시간이 흘러 각자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고 군대 다녀오고 그랬지 뭐 지금은 나만 혼자 아직도 악기 가지고 놀고 있다.


근데 2년 전부턴가 베이스 치던 친구가 연락이 안되더라고? 뭘 해도 안되더라. 다른 애 말로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 자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도 했었고.


기세이를 쓰게 된 이유는 그 베이스 친구가 몇년만에 연락이 와서 생각나서 쓰게됨.




마무리가 애매하네. 긴 글 읽어준 사람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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