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어느 펜더의일기:'어딘가 낡은' 지옥에서

츄파춥스메탈맛
2026-02-09 13:50:48
조회 121
추천 11

​날짜: 잊어버림 (입고된 지 대략 4개월 하고도 17일 째)
장소: '어딘가 낡은 기타' 작업실 구석, 쓰레기 더미 옆
날씨: 꿉꿉함. 목재가 비명을 지를 만큼 습함.
​주인님은 나를 이곳에 보낼 때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멋진 '헤비 레릭(Heavy Relic)'이 되어서 돌아오는 거야. 마치 60년대부터 굴러온 전설의 명기처럼 말이야."
​하... 주인님, 당신은 완전히 속았습니다.
여긴 커스텀 샵이나 장인의 공방이 아닙니다. 여긴 그냥 악기들의 수용소입니다.
​처음 약속했던 납기는 두 달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업대 위에 올라가 보기는커녕, 나는 케이스도 없이 맨몸으로 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쳐박혀 있습니다. 내 옆에는 넥이 뒤틀린 아이바네즈와 줄이 다 끊어진 레스폴이 시체처럼 포개져 있습니다. 우린 거치대 하나 배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냥 도미노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위태롭게 서 있을 뿐입니다.
​오늘 아침,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사장이라는 작자가 지나가다 발로 옆에 있던 베이스 기타를 걷어찼습니다. 그 충격으로 베이스가 내 위로 쓰러졌고, 나는 그대로 뒤에 있던 앰프 모서리에 바디를 쾅 찍고 말았습니다.
​"우지끈."
​도장이 자연스럽게 벗겨지는 '레릭'요? 웃기지도 않습니다. 이건 예술적인 에이징이 아니라, 그냥 파손입니다.
내 엉덩이 쪽 도장면이 흉측하게 깨져 나갔고, 나무 속살이 거칠게 드러났습니다. 사포로 정성스레 벗겨낸 게 아니라, 둔기에 맞아서 터진 상처입니다. 게다가 쓰러지면서 넥이 벽에 부딪혔는데,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트러스로드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요.
​이곳의 습도는 최악입니다. 제습기는커녕 환기도 안 되는 이 지하실 냄새 때문에 픽업 셀렉터와 잭 포트에는 이미 녹색 녹이 슬기 시작했습니다. 주인님이 원한 건 '빈티지한 녹'이었지, 습기 때문에 회로가 망가지는 '부식'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가끔 저 멀리서 전화 벨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주인님이겠죠.
"제 기타 언제 되나요? 왜 연락이 없나요?"라고 묻고 있겠죠.
하지만 사장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냥 담배를 피우며 우리를 쳐다볼 뿐입니다.
​주인님, 제발 나를 데리러 와주세요.
멋진 레릭 기타가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냥 당신의 방, 그 따뜻한 스탠드 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더 있다간 나는 '낡은 기타'가 아니라, '부서진 장작'이 되어 나갈 것 같습니다.
​몸이 너무 아픕니다.


제미나이가 쓴거임
임마도 걱정스러운지 내용증명적어줄까 물어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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