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국내 악기 시장의 폭리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줄게
얼마 전 뮬에서도 이 주제로 논쟁이 있었고 오늘은 여기도 관련 글들이 꽤 올라왔던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내 악기 가격들이 폭리인 건 맞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해외 직구가와 비슷하면 정상적인 가격 아니냐"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게 왜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알려줄게
기타를 예로 들어보자. 기타가 제조되는 국가는 다양하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중국, 일본부터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동남아 국가, 미국과 유럽 국가들까지 엄청 많다. 그리고 브랜드 국적과 생산지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지. 예를 들어 전형적인 미국 브랜드로 인식되는 펜더(스콰이어 포함)도 많은 수가 일본, 멕시코, 동남아 등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잖아. 어쨌든 이런 제조 지역의 차이에 따라서도 유통 과정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특정 제품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 일반화를 위해 공평하게 가상의 '제조국'이라는 나라에서 생산되어 전세계로 판매된다고 가정해 본다
일단 '제조국'의 생산 시설에서 기타가 만들어진다. 그럼 전세계 각국의 딜러들이 이걸 주문하겠지. 이 때 딜러가 구입하는 가격이 '딜러가'야. 물론 딜러가는 제품마다 그리고 계약 조건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충 소매가의 50% 정도로 잡겠다. 50%는 너무 싼 거 아니냐고? 아니야. 아래에 표를 하나 보여줄게. 이거 뮬에 어떤 사람이 올려준 건데 2013년엔가 유출된 해외 모 브랜드의 기타 딜러가 내역의 일부다
MSRP는 미국 내 소비자가격이야. 물론 미국이니까 소비세는 빠져있는 가격이라는 점은 참고하고. DLR NET가 딜러가 구입하는 가격인데 계산기 안두드려도 대충 보면 50%정도 된다는 건 알겠지? 근데 실제로는 MSRP에 소비세까지 붙은 가격으로 판매된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 딜러가는 실구매가의 50%도 안 되는 거지
혹시 MAP가 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봐 이것도 설명하자면, 제조사측에서 이 기타를 얼마 아래로는 내려서 팔지 말라고 제약을 걸어놓는데 그게 MAP야. 일종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방법이지. 그러니까 맨 위의 제품을 예로 들면 딜러는 1388.88달러에 사다가 유통하고 소매상은 정가 2777.76달러에 파는데 만약 할인을 하더라도 1999.99 아래의 가격표는 붙여놓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몰래 더 싸게 팔 수는 있겠지만 대놓고 가격표를 그렇게 붙여놓고 광고를 하지는 못한다는 거다)
자 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와서... 어느 나라 딜러가 저 표 맨 위의 기타를 약 1400달러에 샀어. 그럼 이걸 세금 내고 제반비용을 들여 수입해와서, 도소매 유통경로를 다 거치고, 업자들 마진도 다 붙이고, 미래의 AS 비용까지 감안하여 책정된 정가가 2800달러가 된다. 이렇게 온갖 비용을 다 붙이고도 2800달러에 팔면 남는다는 얘기고... 사실 엄밀히 말하면 2800달러가 아니라 MAP인 2000달러에만 팔아도 남는다는 걸 알 수 있지
이제 한국을 볼까. 한국 딜러도 1400달러에 저 기타를 산다. 그럼 저 기타를 한국에 수입해와서, 유통경로를 다 거치고, 업자들 마진도 다 붙이고, 미래의 AS 비용까지 붙여도 소비자에게 2000~2800달러 사이의 가격에 팔면 충분히 남는다는 걸 바보가 아닌 이상 알겠지?
근데 한국 악기 딜러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냐면 마치 소비자가격이 2800달러인 물건을 개인이 해외직구 할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국내 가격을 매겨놓는단 말이지. 예를 들어 직구 배송비가 100달러라면 (2800+100) x 1.08(관세) x 1.1(부가세) = 3445달러인데 이와 비슷한 정도로 가격을 책정한다는 얘기야. 국내에 공식 딜러가 없는 제품이라면 저런 보따리상 장사 방식의 가격 책정이 이해가 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떡하니 자기들이 한국 공식 딜러라고 말하는 업체들이 보따리상과 똑같은 논리로 가격을 매기고 있다는 거지. 심지어 모 업체는 제품 판매 페이지에 대놓고 저런 식의 계산법을 적어놓고 자기들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궤변까지 펼치고 있다. 그걸 보고 정말 그런가보다 속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고...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딱 보면 뻔하지. 딜러들은 자기들 물건이 아니면 어차피 직구해야 한다는 걸 알아. 해외직구를 하면 원래 소비자들이 구입 시 지불해야 할 정상적인 소비자가격에 추가로 관부가세와 배송비를 내야 하거든. 그러니까 자기들도 딱 그 비슷한 가격까지 올려서 폭리를 취해도 팔릴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지. 정상적인 가격에 물건을 파는 다른 경쟁 딜러가 없다면 말이야... 근데 그런 식으로 경쟁하는 딜러가 없지? 아마도...
간단히 정리해주자면 이런 거야. 딜러가 제조사에서 사는 가격은 1400달러다. 거기에 수입비용, 관세, 유통비용, 업체마진, AS비용 등 온갖 것들을 다 붙여서 마지막에 소비자에게 팔아야 하는 가격이 2800달러야. 그리고 해외 악기상들은 실제로 소비자에게 2800달러에 판매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800달러짜리 물건을 개인이 해외직구할 때와 비슷한 비용인 3400달러 수준으로 폭리를 취해서 판매함. 왜냐하면 어차피 자기들 물건 안사면 해외직구해야 하는데 그럼 드는 비용이 비슷해지니까 자기들 걸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악용하는 것임
그리고 가끔 "국내 시장이 작아서 어쩌구" 그런 얘기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아니야. 우리나라가 전세계 242개국 중에 인구 수가 28위로 거의 상위 10% 수준이고 심지어 경제력은 2020년 기준 세계 10위 내외야. 무슨 시장이 작아서 어쩌구 그런 소리할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인구가 더 많은 국가들에 비해 절대인구수로 보면 시장이 작을지 몰라도 악기 업체당 인구수 비율로 보면 딱히 국내가 특별할 것도 없어. 예를 들어 일본은 한국보다 인구수가 많지만 대신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악기 업체도 많아. 조금만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유명 악기점 종류도 한국보다 훨씬 많고 지역 지점 수까지 따져보면 엄청나다. 결국 파이 전체 크기가 다르더라도 나눠먹는 수도 그에 비례해서 달라지면 결국 한 놈 당 먹는 양은 거기서 거기라고. 게다가 국내 존 써 딜러인 모 업체의 경우 2015~2016년 2년 연속으로 올해의 딜러상 받았다고 광고까지 하던데 그런 건 어떻게 설명할래? 한국 유저들의 구매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시장 크기 탓하는 건 수십년 전에나 먹힐 법한 얘기야
아... 폭리에 대해 쓰다보니 AS 관련해서도 하나 더 말할 게 떠올랐다. 원래 악기 구입자가 AS를 요청하면 딜러를 통해 제조사에 AS를 요청하는 것이거든. 즉 수입사는 중간다리 역할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게 없어. 그런데도 국내 악기 구입자들의 AS 후기글들을 읽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책임 회피를 하는 수입사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지. 이것도 어찌보면 폭리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얘기했지만 딜러들이 제조사로부터 물건을 사 올 때 계약 조건에 따라서 딜러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었지? 그 중 한가지로 딜러가 AS를 자기들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조건을 걸면 제조사는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준다고 하더라. 문제는 딜러가 실제로 AS를 처리할 능력이 되면서 그런 계약을 하는지인데... 능력이 없으면서도 이런 조건으로 더 싸게 물건을 들여온 경우 제조사에 AS 요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들 선에서 대충 무마하려고 할 거야. 소비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본인들의 이득을 챙기는 셈이지. 내가 딜러-제조사간의 계약 내용을 일일히 확인해 볼 수 없어서 단정하긴 힘들지만 이런 경우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길어졌네... 어쨌든... 난 직구를 선호하고 실제로 가장 최근에 구입한 미펜도 해외에서 구매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직구를 강권하고 다니지는 않아. 또 국내 악기 구입자들을 보고 호구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적어도 국내 딜러들이 어떤 식으로 가격 폭리를 취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직구가 어려워서 혹은 직구 시 드는 비용과 차이가 별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의로 국내 구입을 택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이상한 핑계를 들이대며 저런 폭리가 정상 가격이라고 떠벌이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 기형적인 악기 시장의 행태를 더 오래 유지하고 싶어하는 업체 관계자인가 싶기도 하고 참 어이가 없더라고. 직구하는 사람이나 국내 구입자나 모두 다 악기 좋아하는 유저들이니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되 국내 딜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저들의 보따리상 방식의 해괴한 궤변에 더 이상 현혹되지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