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장문) 엄마는 나의 연주를 싫어하셨다. -1-
ㅇㅇ(119.192)
2021-05-10 03:56:23
조회 963
추천 25
15살이 되던해, 나는 설레는 맘을 눌러가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악기사를 향했다.
"아! 엄마~ 나만 없다구! 다른친구들은 다 통기타 한대씩은 있단말이야! 사줄때까지 나 밥 안먹을거야!"
나의 생떼와 금식선언에도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다만 내가 토라져 이불을 뒤집어 쓴후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어머니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한참 서랍장을 뒤져가며 무언가를 찾고 계셨다.
다음날에도 머리속에는 기타뿐이었다. 어머니가 차려준 나물밥상을 받고 불현듯 어제의 금식선언이 생각나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번도 빼먹지 않았던 다녀오겠다는 인사 없이 집을 나섰다.
'어제는 좀 심했다...이젠 어떻게 설득하지..?'
학교에서 엄습하는 미안함, 그리고 떠오르는 우리집의 경제상황. 나도 알고있었다. 우리집 형편에서 악기는 사치라는걸. 그래도 고집을 부려봤으나 어머니께 미안해져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사과를 할 마음으로 학교를 다녀오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동우야. 읍내 나가그로 가방만 두고 온나."
정류장까지 걸어서 30분, 집에서 읍내로가는 버스 6대, 그 기나긴 배차 간격을 기다리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나도 나만의 멋진 기타를 가질수 있다는 설레임 때문이었으리라.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아까의미안함은 다 잊은채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단골 전파사에 물어 도착한 악기사. 그곳은 정말 많은 기타가 있었다. 모자가 깜짝놀라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금테 안경을 쓴 주인장이 중후한 목소리로 우리를 반겼다.
"어떤 악기를 찾으시는지요?"
나는 그말이 꼭 해결사의 말 처럼 들렸다. 나에게 꼭 맞는 기타를 안겨줄 그런 해결사 말이다.
"우리 아들이 통기타를 사고싶다고 해가... 좀 저렴한거 있읍니꺼?"
"아 그럼요~ 요즘은 우리나라도 기술이 좋아져가 국내에서도 키타를 만들기 때문에~ 저렴한 키타들도 많이 나옵니다~ 이쪽에서 골라보이소~"
국산기타 매대에 어머니의 눈길이 닿기도 전 나는 이미 그곳 앞에 서서 기타를 고르고 있었다.
"엄마! 나는 이거! 이주호 키타랑 똑같이 생깄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붉은색 픽가드 말고는 똑같은게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처음 기타를 사는지라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그저 생김새만 보고 골랐을 뿐.
"이거는 얼맙니꺼?"
어머니께서 물어보셨다.
"우리 학생이 해바라기를 좋아하는구나~ 아저씨도 참 좋아한단다. 요놈은 10만원 입니다~"
어머니도 나도 깜짝 놀랐다. 해봐야 고작 몇만원 할줄 알았던 악기가 우리 가족의 한달식비 정도라니.
그러나 어머니는 이내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가방에서 노란 봉투를 꺼내셨다.
"사장님 혹시 만원만 깎아서 9만원에는 안될까예?"
노란봉투속에는 꼬깃꼬깃하고 여기저기 찢어진 만원짜리 9장이 들어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어제 내가 소리를 지른후 잠들었을때 서랍장에서 비상금을 열심히 찾으셨던것이다.
평소에는 얌전하니 말도 잘듣던 아들이 소리지르며 밥을 안먹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걱정도 되었을 뿐더러 아들이 원하는것을 하나는 해주고 싶어 큰 마음을 먹으셨던 거겠지.
"어머님 그렇게 하시지요. 대신 딴데가서 깎아줬다 소문내고 그러시면 안됩니데이~"
"예..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그렇게 사장님이 챙겨주신 싸구려 기타피크 몇개, 기타융, 얇은 교본, 기타가방과 함께 나의 음악생활도 시작되었다.
기타를 등에 메고 집에 오는길. 악기사를 올때만큼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와 형편에 맞지않게 정말 비쌌던 기타. 어머니께 죄송스러웠고 꼭 고등학교 졸업전에 취직을 하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먹으며 어머니께 사과드렸다.
"엄마... 내가 떼써서 미안... 내 이돈 안아깝게 열심히 연습해서 해바라기 맹크로 엄마한테 기타치면서 노래도 해줄게... 고마워 엄마.."
"아이다 동우야.. 엄마는 동우 하고싶은거 항상 다 해주고싶다. 연습도 열심히 해서 노래도 꼭 불러도. 엄마 기대할게~"
집에 가는 길 버스를 기다릴때, 어느덧 내 눈시울마냥 불거진 노을은 장렬히 타들어가며 우리 모자를 비추었고 우린 아무말 없이 손을 꼭 잡고있었다.
이날 이후 나는 항상 통기타를 지니고 다녔다. 손가락이 너무 아팠지만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기타만큼 공부도 열심히 하며 틈틈이 노래연습도 했다.
아무래도 나는 음악에 재능이 있었나보다. 축제때 장기자랑으로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기타연주와 함께 부르면 주변에서 내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고 선생님들도 공부도 잘하는게 노래랑 키타를 어쩜 그렇게 잘치냐며 칭찬해주셨다.
나름 교내에서 기타치며 노래하는 동우로 알려지고 가요제나 대회를 나가보라며 추천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단 한사람, 우리 엄마만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내가 무대를 할때 단 한번도 오지 않으셨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 엄마는 나의 연주를 싫어하셨다.
고작 12평 남짓한 단칸방에 나의 노래와 기타선율이 울려대면 어머니는 항상
"노래도 몬하고 키타도 잘 못치는기... 겉멋만 들어가지고..."
라며 나를 무시하셨다. 나는 그에 대한 오기로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 실력을 갈고 닦았지만 어머니가 인정해주시는건 한참 후의 일이다.
주변의 학우들과 선생님들의 칭찬에 가수의 꿈도 꿔보았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할때가 되자 금새 현실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우리의 가정형편에 음악가가 가당키나 했을까. 그래도 처음 기타를 사주시면서 기대한다며 응원해주신 어머니가 나를 항상 무시하고 인정해주지 않는것에 너무 서운했다.
결국 빠른 취업을 위해 공고의 전자과로 진학을 했고 그렇게 기타는 취미로만 남게 되었다.
마음한켠에는 언젠가 멋진 무대위에서 나를 보러온 어머니께 '행복을 주는사람'을 열창하는 상상을 하며 열심히 취업을준비했다.
결국 나는 당시 최고 기업이던 현대 중공업에 취업했고 어머니는 나를 껴안고 우셨다. 우리가문에서도 이런 경사가 다 있다며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자라게 해 너무 미안타 근데도 이렇게 잘 자라줘서 엄마는 너무 고맙다"
"아니다 엄마! 내 이제 엄마 호강시켜줄게...!"
미안함과 감사 그리고 자랑스러움등 여러 감정이 뒤섞인채 모자는 한참을 끌어 안고있었다.
먼저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고 어머니와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형편이 어느정도 나아질 쯤 사랑도 함께 찾아왔고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안정적인 생활이 찾아왔다.
행복한게 많아서였을까 그렇게 나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기타는 자연스레 잊혀져 갔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