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장문) 엄마는 나의 연주를 싫어하셨다. -2-
ㅇㅇ(119.192)
2021-05-10 04:01:44
조회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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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내던 기타를 기억속에서 꺼내본건 어느날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보던 TV에서 이주호가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부를때 였다.
"이야~ 아빠가 딱 니만할때 저노래로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아나~"
"당신 기타도 쳤나?"
아내가 처음듣는다는듯 되물었다.
"그럼~ 내가 가요제 같은거도 나갈뻔 하고 그랬지 내 진짜 죽여줬는데"
그말을 들은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맞다. 동수 아바이가 노래를 그렇게 기깔나게 했다 안하나. 동네사람들 다 칭찬했다."
나는 머리를 한대 맞은거 마냥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께서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가셨다.
"내가 니 혹시나 그 형편에 음악한다고 할까봐 맨날 못한다 했던기라. 노래도 키타도 진짜 멋지게 잘하는데 돈때문에 음악못해서 상처 받지 말라고... 그때만 생각하면 진짜 내 맘 한쪽이 먹먹 해진다."
그말을 들은 나는 더 이상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아내는 흥미가 생겼다는듯 어머니께 질문을 했다.
"이 사람이 노래를 그렇게 잘했어요? 저한테는 한번도 안불러줬는데~"
"그라모! 그때 야가 서는 무대마다 내가 가서 봤는데 주변에서 동수 아바이 이름 석자를 막 외쳐대고 내 아들이지만은 키타도 잘치고 아주 멋있었다~"
어머니께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먹던 밥을 입에 머금은채 서재에 들어가 소리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내 무대를 모두 참석하시고 나를 자랑스러이 여기셨다는것과 그놈의 지긋지긋한 가난때문에 아들이 절망할까봐 아들의 꿈을 짓눌러가며 부정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와닿아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지아비가 죽은 후 아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억척같이 걸어왔을 길과, 하나뿐인 아들이 하고싶은것을 하나는 하게 해주고 싶어 쌈짓돈을 고이 봉투에 넣어 기타까지 사준 그녀인데. 아들이 혹여나 절망할까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으니.
이것을 계기로 창고에서 먼지쌓인 추억을 꺼내보았다. 줄은 녹슬대로 녹슬고 넥은 이미 내 척추처럼 굽어있었다.
십수년 만에 꺼낸 튜닝도 안된 기타로 C코드를 잡아 스트로크 해본다.
드르릉.
듣기 싫은 불협화음과 손에는 녹이 잔뜩 묻어나온다.
너도 나만큼 늙었구나.
어린날의 추억이 나를 보고 베시시 웃어보인다. 내 다시한번 너를 연주해보고 싶다. 기타를 그대로 들고 리페어샵에 가서 수리를 했다. 그리고 수줍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어머니 앞에서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불러보였다.
어머니가 이제서야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아이같은 웃음과 박수를 짤깍짤깍 치신다. 내가 이 모습을 얼마나 그려왔던가.
아내는 이때까지 왜 숨겼냐며 괜히 핀잔을 주고 중학생 아들놈의 눈이 반짝거린다.
이제는 내 추억을 너에게 물려줄때가 되었구나.
"아빠 이거 얼마나 세게 잡아야해요? 손가락이 너무 아파!"
"더 세게 잡아야해 그치! 이제 오른손으로 줄을 자연스럽게 내리쳐봐!"
드르릉 소리가 어설프게 난다.
"이게 C코드야"
"으아악! 손이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내 어린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너에게도 멋진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아들놈은 이제 나보다 기타를 잘치고 노래도 잘하게 되었다. 동아리로 밴드부도 할만큼 멋진 음악생활을 하고있다.
어머니는 이제 나를 기억하지 못하신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들놈도 기억나지 않으시는것 같다.
그래도 가끔 아들이 할머니 문안을 와서 기타를 들고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을 연주하며 불러드리면
"노래가 참 좋다."
라며 아이처럼 웃으신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면 기타를 사고 집에 돌아가던길 발갛게 타오르던 노을이 생각이 난다.
'엄마는 동우 하고싶은거 항상 다 해주고싶다. 연습도 열심히 해서 노래도 꼭 불러도. 엄마 기대할게~'
엄마는, 나의 연주를 싫어한적이 없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해바라기 - 행복을 주는 사람 中
-fin-
이 글을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아버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였으며 인명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