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장문) 친구 49재 끝난 김에 걍 쓰는 회고:

백이십이
2021-12-21 18:01:03
조회 603
추천 17
올만임.
망한 재즈 대회 이후로 처음인 거 같은데
사실 한번 윾동으로 한번 들어 오긴 함.
암튼 친구 49재 끝나고 대구 가는 무궁화호에서 시간 남아서 한번 써봄: 와 이거 ㅈㄴ 길게 되네 쓰다 보니까...
걍 쓰는 거고... 사실 익명 커뮤 이거 밖에 몰라서 여기라도 한번 써보고 싶었음(과 특성상 에타는 거의 실명제라..ㅈㅅ)
이런 거 쓰고 이제 한달 동안 묵힌 기타 외운 것들 풀게옹.

1. 친구가 죽었다고 들은 것은 시월 첫째주 일요일. 그냥 말해줘야 겠다고 전화를 걸어둔 합주 같이하는 여사친에게 내가 처음으로 뱉은 말은 왜?? 왜??? 왜? 였다. 여사친은 그냥 스스로 간 것 같다고 했다.
2. 그날은 합주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새벽 편의점 알바였다. 나는 그냥 간단하게만 들를 생각이었다.
3. 그 때 나는 솔직히 별 느낌이 없었다. 죽음에 익숙치 않아서 비유를 좀 들자면 그냥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정도. 몇달 째 그냥 디엠만 하던 친구였기 때문일까.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냥 가서 인사만 하고 와야지. 그런 생각.
4. 그래서 합주 하고 뒷풀이 까지 나는 별 느낌이 없었다. 굳이 분위기를 조지고 싶지 않았고. 여사친만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5. 택시를 타고 들어가자. 내 동기들이 있었다. 같은 과 친구들이 다 와 있었다. 솔직히 말할까... 그냥 오랜만에 동기들하고 술 먹을 생각에 조금 들떠 있었던 것도 인정한다.
6. 사실 그 애는 ㅈㄴ 인싸다. 1학년 때 동아리를 8개나 했던 미친...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7. 그 애의 영정사진은 불과 한 2주 전에 인별에 올린 사진이었다. 근데 안닮았다. 포샵 ㅈㄴ 했더라. 그래서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다만 그 애의 웃는 모습과는 달리 나하고 같이 들어간 전 학생회장 누나는 오열하고 있었다.
8. 그날 나는 술을 존나 먹었다. 나하고 베프인 형도 와 있었다. 일부러 내가 ㅈㄴ 먹였다. 결국 ㅈㄴ 취했고 형은 내게 자꾸 똑같은 말을 했다.
9. 이술은 걔가 사주는 거야. 일주일 전에 카톡으로 술먹자고 한 걸 내가 술 요즘 안먹는다고 거절했는데.. 아무튼 그래서 이건 걔가 사주는 술이니까 다 먹을꺼야. 아버님 그렇지 않겠습니까.
형은 그 애의 아버지께 호탕하게 말했다.
10. 10시 즈음 되어서 갑자기 밖에서 정말.. 섬뜩한 소리를 들었다. 보니 한 학생분이 쓰러져 흐느끼고 있었다. 방명록을 쓰는 곳이 있었는데 그걸 쓰다가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정말.. 내가 들은 소리 중에서 가장 슬펐다.
11. 베프형은 결국 취해버렸다. 그 형이 취한 걸 본 게 진짜 예전인데.. 취해서도 계속 같은 말.. 그리고 마지못해 나와 한 여사친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 OO아 왜 갔어 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12. 12시가 되어서 난 알바를 하러 가야했다. 사장님께 말해 5시에 일찍 마치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중간에 아까 나하고 같이 데리고 나간 여사친이 전화가 왔다. 네 오빠 데리고 거기로 갈게.
13. 알고 보니 ㅈㄴ 취해서 장례식장에서 고성방가를 해 담배를 사겠다는 명분으로 내 편의점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이제 유하게 달래 보내 주기만 하면 될 거 같았는데..
14. 갑자기 도착하자 마자 연을 끊겠다고 선언을 했다. 어의가 없었으나. 자기를 찾지 말라는 말과 함께 가버렸다. 나는 남은 여사친과 맥주나 몇캔 때렸다.
15. 여사친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학이라는 것은 원래 처음엔 친했다가도 개인주의로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걸 원치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런 과정에서 싸움은 생기기 마련이다. 더더욱 그게 여자애들 간으 싸움이면 인간관계의 회복은 어렵다. (그래서 그 애는 예전에 한번 휴학을 한 적이 있다) 이번에 복학한 후 잘 지내다가 똑같은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크게 싸웠다는 것이고 그게 이유일 거라는 것이었다.(우린 과가 작다)

16. 또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는, 이미 한달 전에 한명이 더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도 그 애에게 동기를 주었을 것이라는.. 교수들이 상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도중 그 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17. 다음날은 발인이었다. 비 바람이 엄청 불었다. 보통의 발인 할 때의 어떻다는 것을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18. 그 애의 20학번 동기들(원래 19인데 1년 휴학해서)과 가족들이 와 있었다. 발인으로 가기전에 줄을 쭉 서라고 한다. 고인 가는길 맞이 해주라고. 그리고 몇명한테 물었다. 관을 들 생각이 있냐고. 하지만 나는 아직 슬픔을 느끼진 않았고 내가 뭐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약해서 실수할 걱정을 했다. 18 형님이 들어주셨다.
19. 거의 30명이 왔었다. 줄을 서 관를 맞이하고 따라갔다. 여기서 부터.. 진짜 힘들다. 영정을든 그 애의 언니와 어머니께서 오열을 했다. 우리들 사이에서도 흐느낌들이 새어 나왔다.
20. 관을 실는 차량이 앞에 도착했다. 모두가 흐느끼고 통곡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래서 그런 음, 소리를 들으면 ptsd처럼 다가온다. 전기톱으로 나무 자르는 소리도 비슷하게 들려서..)
21. 아직까지도 그 애의 죽음이 현실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관 위에 덮여 있는 그 애의 이름이 적힌 천 조각만 ㅈㄴ 보고 있었다. 국화를 그 위에 우리가 한개씩 덮고.. 이제 들어서 실으면 됐다. 어머님은 계속 관을 안으려 하시고 있었고 가족들은 같이 통곡하며 제지하고 있었다.
장례지도사의 구호와 함께 영차 라는 말과 함께 관을 실었다.
이제 화장장으로 갈 때 였다.
22.화장장에 도착해서도 어머님은 우셨다. 십오분 정도 차에서 내서 계속 우셨다. 내가 쓸 말이 없다 이 부분은. 울고 또 울고 또 울고 울고 울었다. 참으시던 아버님께서 한마디를 뱉고 말았다.
문디 가시나야. 문디 가시나야. 왜 이렇게 되어 있노.
23. 그리고... 이제 화장을 하러 들어가는 곳을 보러 왔다.
한번이라도 발인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모두가 운다. 아까 관을 든 18형은 마지못해 비명을 질렀다.
24. 난 이까지 내가 진짜 미친 놈인 줄 알았다. ㅈㄴ 안운다. 울 기미도 없다. 그냥 화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그 형이 비명을 지를 때 웃참을 할 정도. 그 만큼 난 그 상황과 괴리되어 있었다.
25. 화장은 한시간 반이 걸리는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사이에 밥을 먹으러 내려갔다. 밥은... 그렇게 울던 사람들이 먹겠나. 모든 음식이 거의 비어 있고 모두가 공하하게 음식을 쳐다보거나 흐느끼고 있었다.
26.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애와의 디엠이나 보려 훑었다. 그리고 여기서 부터 나를 한달 동안 미치게 하는 것이 나왔다.

백이십이야 너가 내 친구라
나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늘 내게 웃음을 한아름 안겨주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날... 미치게 했다. 49일동안 날 미치게한 것.

저걸 발견하고 한 10초간 흐느낀 것 같았다.

그 후론 똑같다. 부모님은 또 우셨고. 곧 떠나셨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났다.

와 쓰다보니 ㅈㄴ 길어지는 구나... 솔직히 갤 주제 하고도 안맞는데 그만 쓸게엥.. 그냥 무시해줘 ㅈㅅㅈㅅ
걍 어디라도 쓰고 싶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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