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한국의 형님국가는 중국도 일본도 아니다.txt
슈윗
2022-02-13 01:42:08
조회 1645
추천 21
네덜란드다.
오늘은 네덜란드 필립스에 대해 araboza 니네가 아는 전기면도기 만드는 필립스가 맞다.귀찮아서 사진안넣음
0. 오디오 역사는 니들이 생각하는것보다 짧은데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지 올해로 딱 150년이 됐다. 현존하는 음향장비 제조기업 중에는 설립 당시 에디슨이 죽기도 전이었던 회사들이 많음 RCA, 야마하, 노이만, 슈어… 그리고 필립스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얀 리스라는 화학공학자와 함께 사업을 계획했으나 실패가 반복되자 떠나고 그 대신 막내였던 안톤 필립스가 무역학교를 중퇴하고 경영진으로 들어와 러시아에서 큰 계약을 따내 안정화되기 시작함 필립스는 적은 비용으로 더 오래가는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생산했는데, 그 당시 독일의 지멘스와 AEG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해서 획기적인 대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음
1900년대 필립스를 비롯한 유럽 전자제품 제조기업들은 텅스텐 와이어 램프에 집중하고 있었음 그리고 필립스가 탄소 필라멘트보다 3배는 밝은 텅스텐 와이어 제조에 성공하면서
필립스는 시장의 선두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R&D 사업에 집중투자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기관이 바로 물리학자 길레스 홀스트가 이끄는 필립스 연구실험실임 이 기관은 지금도 존재한다
길레스 홀스트는 연구개발을 단지 전구에만 의지하고 싶어하지 않았는 선구자였고 당시 최고경영진이었던 필립스 형제 제럴드와 안톤 모두 수익성이 있는 분야라면 그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음 이건 필립스 역대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음
길레스 홀스트는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전구를 밝히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결과 방전관을 이용해 텅스텐 아크 램프, 형광등 진공관이나 반도체를 만들때 음극으로 도금하는 스퍼터링법을 개발함
1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는 중립국이었지만 전쟁의 영향이 없던건 아님 특히 석탄과 가스와 같은 연료의 수요는 오르고 공급이 떨어졌는데 오히려 이때문에 전기를 사용하는 필립스 전구의 인기가 오르기도 함 심지어 필립스의 전구는 다른 전구보다 싸기까지 했거든 거기다 미국과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13개국과 중국, 브라질, 호주까지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점차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필립스는 조명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그 첫번째가 진공관 사업이었음 그때만 해도 필립스 형제는 이걸 대체 얻다 써먹냐면서 투자를 머뭇거렸는데 이윽고 필립스 설립 이후 두번째 최고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진공관 사업 진출이 결정되고 얼마이후 독일에서 유리공예를 하는 칼 뮐러와 함께 X-ray 진공관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공식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때도 필립스의 진공관을 사용함
제럴드가 동생 안톤에게 CEO 자리를 넘겨준 뒤 필립스는 부품뿐 아니라 완제품으로 제조된 라디오를 개발하기 시작해 5년 뒤 무역 박람회에 선보임 이제 라디오는 특정 기관이나 단체가 아니어도 개인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공공방송이 대중화됨
0. 오디오 역사는 니들이 생각하는것보다 짧은데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지 올해로 딱 150년이 됐다. 현존하는 음향장비 제조기업 중에는 설립 당시 에디슨이 죽기도 전이었던 회사들이 많음 RCA, 야마하, 노이만, 슈어… 그리고 필립스 또한 마찬가지다.
1. 필립스 초기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한 은행가에 프레데릭 필립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첫째 아들이 제럴드 필립스, 본래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소에서 일하던 공돌이였는데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를 보고 시장의 흐름을 읽어냄. 그리고 1891년 네덜란드의 제럴드 필립스는 자신의 성을 따서 ‘필립스앤코’를 설립한게 필립스라는 기업의 출발임 유대계 출신으로 나름 명망있는 은행가 집안이었기에 몇차례의 경영난을 겪었지만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게다가 그 유명한 자본론을 집필하고 있던 카를 마르크스와도 친척이라 당시 왕래가 잦았다. 근데 별로 친밀감은 없었다고
즉 얘넨 원래 유대계 독일 출신임처음에는 얀 리스라는 화학공학자와 함께 사업을 계획했으나 실패가 반복되자 떠나고 그 대신 막내였던 안톤 필립스가 무역학교를 중퇴하고 경영진으로 들어와 러시아에서 큰 계약을 따내 안정화되기 시작함 필립스는 적은 비용으로 더 오래가는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생산했는데, 그 당시 독일의 지멘스와 AEG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해서 획기적인 대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음
1900년대 필립스를 비롯한 유럽 전자제품 제조기업들은 텅스텐 와이어 램프에 집중하고 있었음 그리고 필립스가 탄소 필라멘트보다 3배는 밝은 텅스텐 와이어 제조에 성공하면서
이때부터 정말 조명 시장의 선두주자로 달려나가기 시작함
이렇게 몸집을 불려가면서 필립스앤코는 필립스 메탈글루이람펜파브릭 (금속 필라멘트 전구라는 뜻), 몇년 뒤 다시 필립스 글루이람펜파브릭 (좀더 포괄적인 의미의 전구라는 뜻)으로 사명을 바꿈필립스는 시장의 선두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R&D 사업에 집중투자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기관이 바로 물리학자 길레스 홀스트가 이끄는 필립스 연구실험실임 이 기관은 지금도 존재한다
길레스 홀스트는 연구개발을 단지 전구에만 의지하고 싶어하지 않았는 선구자였고 당시 최고경영진이었던 필립스 형제 제럴드와 안톤 모두 수익성이 있는 분야라면 그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음 이건 필립스 역대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음
길레스 홀스트는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전구를 밝히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결과 방전관을 이용해 텅스텐 아크 램프, 형광등 진공관이나 반도체를 만들때 음극으로 도금하는 스퍼터링법을 개발함
1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는 중립국이었지만 전쟁의 영향이 없던건 아님 특히 석탄과 가스와 같은 연료의 수요는 오르고 공급이 떨어졌는데 오히려 이때문에 전기를 사용하는 필립스 전구의 인기가 오르기도 함 심지어 필립스의 전구는 다른 전구보다 싸기까지 했거든 거기다 미국과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13개국과 중국, 브라질, 호주까지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점차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필립스는 조명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그 첫번째가 진공관 사업이었음 그때만 해도 필립스 형제는 이걸 대체 얻다 써먹냐면서 투자를 머뭇거렸는데 이윽고 필립스 설립 이후 두번째 최고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진공관 사업 진출이 결정되고 얼마이후 독일에서 유리공예를 하는 칼 뮐러와 함께 X-ray 진공관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공식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때도 필립스의 진공관을 사용함
제럴드가 동생 안톤에게 CEO 자리를 넘겨준 뒤 필립스는 부품뿐 아니라 완제품으로 제조된 라디오를 개발하기 시작해 5년 뒤 무역 박람회에 선보임 이제 라디오는 특정 기관이나 단체가 아니어도 개인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공공방송이 대중화됨
2. 대공황과 세계대전
필립스도 경제 대공황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데 필립스는 해외 지사들에게 제품 공급에 차질을 빚어서 각 국가에 생산공장을 설립하기도하고 독일 Valvo사를 인수해 라디오를 대량생산하면서 대공황을 극복함 말로 하니까 감이 안올텐데 얼만큼의 대량생산이었냐면 5년동안 라디오 완제품은 100만대를 넘게 만들어서 팔아치웠고 이 당시 제조한 라디오 밸브만 1억개가 넘어감 진짜 무호흡으로 찍어내던 수준
아무튼… 그렇게 대공황을 이겨냈는데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남았다 ㅋㅋ 이번에는 중립국? 어림도 없지 네덜란드 너네 침공할거임~
당시 CEO 였던 안톤은 후임자 자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참고로 제라드는 자식이 없었음) 안톤은 굉장히 배짱이 두둑하고 위엄있는 인물이기도, 강력하고 지배적인 권위성도 있는 인물임 그당시 경쟁기업이 지멘스와 아에게였는데 지금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군림하는 필립스로 성장시켰으니 그 능력 하나만큼은 말을 다한것이나 마찬가지지 다만, 안톤의 아들 프리츠는 그러지 못했어 그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사회적인 책임을 중요시하고 독실한 신앙심을 품고 있었지 이런 성격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은 종종 갈등을 빚었다고 해 안톤은 결국 자신의 아들이 CEO를 맡기엔 나약한 남자라면서 사위인 프랑시스 오튼에게 CEO를 넘겼지 대신 경영진 자리는 내주었어
프랑스 오튼은 CEO가 되고서 CT나 MRI 촬영기의 전신이 되는 기계나 자동차용 라디오, 용접봉, 그리고 니네가 아는 필립쉐이브 라는 전기면도기! 이것도 생산하기 시작함
그런데 같은해,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할것이라는 소식이 온나라에 퍼짐 필립스는 북미에 북미 필립스 조합 (NAPC, North American Philips Corporation)을 설립하고 필립스 연구소를 은폐한 뒤 경영진들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어 실제로 나치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했는데 대다수 최고경영진들과 달리 프리츠 필립스만은 네덜란드에 남아서 필립스 본사를 지켰음
필립스의 방송국은 나치독일의 선전 방송에 이용됐고 공장도 지속해서 가동됐음 이거때문에 프리츠 필립스가 나치한테 협력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건 개소리임 필립스는 전구랑 라디오를 만드는 기업이지 무기나 군복같은걸 생산할 수 없었음 게다가 프리츠 필립스는 나치를 피해 숨어 도망다녀야 했고 나치한테 걸렸다가 수용소에 수감된 적도 있음 결정적으로 프리츠 필립스는 나치 지도부를 설득해서, 필립스 공장을 가동하고 라디오 선전방송을 하기위해서는 유대인 생산기술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음. 이덕분에 필립스 지붕아래의 유대인 400명정도는 목숨을 구할수 있었어 그 이전까지는 논란이 많았는데, 1996년 이스라엘 대사가 직접 프리츠 필립스를 초청해서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공로를 인정해 열방의 의인 상을 수여하면서 이 논란은 싹 정리됨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이 아님에도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인물에게 수여하는 명예칭호임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솀 이라는 기념관에 현판을 설치하고 희생당한 유대인들과 함께 기리는 것 대표적으로 영화 <쉬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실존인물 오스카 쉰들러에게도 수여된 적 있는 칭호다
나치와 일제가 패망하고 전쟁이 끝나자 필립스 경영진들은 네덜란드로 돌아와 프리츠와 함께 빠르게 복구에 착수함 다행히 연구소는 대다수가 은폐된채로 들키지 않아서 이듬해까지 필립스의 경영 체계는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었음
여기에서 드디어 일렉트릭 기타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나오는데 전쟁직후 필립스 연구실험실에서 개발한 물질에 관한 거야
일렉기타나, 아니면 스피커에서 필수적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부품이 뭔지 아니? 바로 자석이야. 기타 픽업이나 스피커 유닛 드라이버에 반드시 영구자석이 필요해 근데 이게 1차 세계대전 이후 JBL이 알니코 자석 (알루미늄, 니켈, 코발트 합금)을 처음 스피커에 쓰기 시작하면서 기타나 스피커에는 다 이걸 썼거든.
그런데 저 원자재 중에 코발트라는 광물은 전세계에서 오직 콩고와 러시아, 두 나라에서만 생산됨 당시 콩고는 시도때도 없이 내전이 터져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고 실질적으로 코발트의 가격은 러시아가 실권을 꽉 쥐고 있었음. 마치 석유처럼 그래서 종종 코발트 가격이, 그야말로 오일쇼크처럼 급등하기 일쑤였는데 이게 갈수록 러시아의 횡포가 말이 아니었음. 급기야 코발트 가격을 100배까지 인상하기 까지 했다고 100만원짜리 기타가 1억이 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나마 희토류 금속을 이용하는 자석도 개발되긴 했는데, 이것도 문자 그대로 희소한 광물을 이용하는 거임. 요즘도 사용되긴 하는데 희토류 광물은 중국 수출량이 어마어마하다. 아무튼 이걸 해결해주신게 네덜란드 큰형님의 필립스 엉님이시다 필립스는 페라이트 라고하는 새로운 관점의 자성체를 발견해냈고, 이윽고 전세계에 선포하기에 이른다. “세계 어느나라에서 네덜란드에 있는 필립스 본사를 방문한다면 국적을 막론하고 페라이트 제조기술과 견본을 공유하겠다.” 알니코 자석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순간이었지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도 1세대 스피커 제조사가 있었는데 시장 1위가 삼미, 2위가 고려전자였음 그런데 코발트 파동으로 삼미가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고려전자 박사장님이 필립스로부터 페라이트 기술을 먼저 손에 넣으면서 마샬스피커를 개발하고, 시장 1위를 차지하게 됨 이당시 국산 스피커의 기술력이 얼마나 좋았냐면 유럽 올림픽의 모든 경기장에 메이드인코리아 스피커로 도배된 적이 있음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이거말고도 필립스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도 개발했고 세계최초의 집적회로도 필립스 연구소에서 탄생함. 나아가 IIC (I²C)라는 직렬버스 (USB같은 통신규격의 일종임)를 개발해서 리눅스 운영체제나, 오늘날 휴대폰에 쓰임
1962년 필립스는 컴팩트 카세트테이프를 개발하고 1963년에 시장에 보급하기 시작함 카세트 테이프를 개발한 사람이 루 오텐스 라는 엔지니어인데, 작년에 별세하셨다. 근데 이 양반도 자기 입으로 “왜 아직도 카세트테이프 쓰는지 모르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카세트테이프의 음질은 굉장히 좋다.
처음 개발될때의 목적은 기자들이 쓰라고 만든 거였는데 음질이 너무 좋아서 LP랑 같이 음반 산업을 꽉 잡게 됨 오디오 산업의 가능성을 깨달은 필립스는 설립 초기부터 경쟁사였던 독일큰형님 지멘스와 합작해서 폴리그램이라는 음악 녹음실도 차렸는데, 클래식 녹음계의 대부인 데카 레코드와 인수합병까지 했는데 시그램 이라는 캐나다 기업에 인수됨 시그램은 주류기업인데, 그때당시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시그램 꺼였음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이면 데카를 알 수도 있는데 지휘자 머리 위에 마이크 3개 달아서 녹음하는 방식을 만든 곳이다. 그리고 흔히 최악의 실수라고 종종 소개되는, 비틀즈와의 계약을 걷어찬 음반사이기도 하다. 결국 비틀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도 알려진 전설적인 그룹 퀸을 데뷔시킨 EMI 레이블과 계약함
조금 나중 얘기지만 세계최초 카세트테입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 헤드폰, 스피커도 만들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오디오 산업에서 철수하고 깁슨한테 팔아넘겼다.
필립스의 오디오 산업에서 가장 큰 혁명은 소니와 공동개발한 CD라고 할 수 있는데 CD는 그야말로 오디오 대혁명을 이뤄내고 음악산업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성공적인 대중매체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역대 CD 판매량이 LP, 카세트, mp3, 스트리밍, 컬러링 다합친것보다 많음 이후에 소니와 합작한 DVD, 블루레이 모두 성공적으로 시장을 먹었지
근데 필립스가 단독 개발한 CD-i라는 대화형 게임CD는 역사상 최악의 게임기에 차트인하기도 하고 CD-G, CD-V, 비디오카세트, 디지털카세트 같은것도 내놨는데 니네 본적 없지? 당연하지 바로 사장됐으니까 ㅋㅋ 정말이지 소니와 합작하기만 하면 대성공을 거두고 혼자 연구하면 개같이 멸망하는걸 보면 어쩌면 필립스는 기술력만 있고 시장 안목은 없는 걸지도 모른다.
하여간 필립스는 1980년대 들어서 세습에서 벗어나, 비스 데커라는 사람이 CEO를 계승했다. 이때는 뭐… 산업이나 개발에서 큰 혁명은 없고 투자나 인수합병이 자주 일어남. 그 다음으로는 얀 티머라는 사람이 CEO가 돼서 구조조정, 필립스 일렉트로닉스로 사명 변경, 오퍼레이션 센츄리온 도입 같은 일을 했다. 아까 말한 CD-i, 디지털카세트가 이새끼때 작품이다. 진짜 소니랑 DVD 안만들었으면 필립스 망했음 코 분스트러라는 CEO도 자회사를 매각해서 사업을 영위함 이때는 소니랑 합작을 했는데 망하기까지 했다.
네덜란드는 아직 왕조국가인데, 이건 독재가 아니라 네덜란드 국민이 매년 투표를 해서 현 국왕체제를 유지하는데 찬성하기때문에 이어지고 있다. 설립한지 100년도 더 지나서 1998년, 필립스 일렉트로닉스는 네덜란드 왕실로부터 네덜란드를 빛낸 공로를 치하받으며 사명을 Koninklijke Philips Electronics로 변경했다. 코닌클예크는 영어로 치면 Royal, 네덜란드 왕실이 공인했다는 의미다
제라드는 음반, 휴대폰, 심지어 반도체 사업에서까지 완전히 철수해버리고 매각 대금을 LED 조명사업에 집중투자해서 필립스에 제세동을 씨게 걸어 되살려냈다.
그리고 여기서 페라이트에 이어 한국 이야기가 한번 더 나옴 코닌클예크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던 1998년에, 필립스는 LG와 합작 법인을 이미 설립해 두었는데 제라드가 LG한테 투자를 좀 많이 해줬음. 구 씨 가문이랑 허 씨 가문이 합심해서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나?
삼성과 LG가 한국을 먹여살리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견해차이는 인정하는데 나는 디스플레이 덕분이라고 본다. 삼성 갤럭시든 LG 모니터든 근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디스플레이 제조기술은 형편 없었음 LCD? 말이라고 하냐? 그땐 전국민이 CRT 모니터만 썼음 그런데 아까 말한 LG필립스라는 이름으로 필립스가 LCD 제조기술을 통째로 LG한테 줘버림 ㄷ ㄷ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디스플레이 제조기술이 들어오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하고 LG의 R&D 엔지니어가 도면 들고 삼성으로 빤쓰런 쳐버리는 바람에 이 기술이 삼성으로도 유입되었음 지금은 LG의 단독경영체제로 바뀌었지만 이 성장배경에 필립스라는 거대한 기업이 있었던거임
그리고 일렉트로닉스를 떼고 코닌클예크 필립스로 사명을 또 바꾼 필립스는 아~~~까전에 설명했던 X선 진공관 연구개발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CT, MRI같은 의료기기를 생산하며 의료산업의 혁신을 이끌었고 현재 지멘스, 그리고 제네럴 일렉트릭(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기업)와 함께 의료기기 시장의 90%를 다먹고 있음
단순히 돈만을 좇지 않고 각종 공익 캠페인을 진행하는 윤리적인 행보… 13만개에 이르는 특허를 출허하며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경영 철학…
필립스도 경제 대공황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데 필립스는 해외 지사들에게 제품 공급에 차질을 빚어서 각 국가에 생산공장을 설립하기도하고 독일 Valvo사를 인수해 라디오를 대량생산하면서 대공황을 극복함 말로 하니까 감이 안올텐데 얼만큼의 대량생산이었냐면 5년동안 라디오 완제품은 100만대를 넘게 만들어서 팔아치웠고 이 당시 제조한 라디오 밸브만 1억개가 넘어감 진짜 무호흡으로 찍어내던 수준
아무튼… 그렇게 대공황을 이겨냈는데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남았다 ㅋㅋ 이번에는 중립국? 어림도 없지 네덜란드 너네 침공할거임~
당시 CEO 였던 안톤은 후임자 자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참고로 제라드는 자식이 없었음) 안톤은 굉장히 배짱이 두둑하고 위엄있는 인물이기도, 강력하고 지배적인 권위성도 있는 인물임 그당시 경쟁기업이 지멘스와 아에게였는데 지금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군림하는 필립스로 성장시켰으니 그 능력 하나만큼은 말을 다한것이나 마찬가지지 다만, 안톤의 아들 프리츠는 그러지 못했어 그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사회적인 책임을 중요시하고 독실한 신앙심을 품고 있었지 이런 성격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은 종종 갈등을 빚었다고 해 안톤은 결국 자신의 아들이 CEO를 맡기엔 나약한 남자라면서 사위인 프랑시스 오튼에게 CEO를 넘겼지 대신 경영진 자리는 내주었어
프랑스 오튼은 CEO가 되고서 CT나 MRI 촬영기의 전신이 되는 기계나 자동차용 라디오, 용접봉, 그리고 니네가 아는 필립쉐이브 라는 전기면도기! 이것도 생산하기 시작함
그런데 같은해,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할것이라는 소식이 온나라에 퍼짐 필립스는 북미에 북미 필립스 조합 (NAPC, North American Philips Corporation)을 설립하고 필립스 연구소를 은폐한 뒤 경영진들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어 실제로 나치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했는데 대다수 최고경영진들과 달리 프리츠 필립스만은 네덜란드에 남아서 필립스 본사를 지켰음
필립스의 방송국은 나치독일의 선전 방송에 이용됐고 공장도 지속해서 가동됐음 이거때문에 프리츠 필립스가 나치한테 협력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건 개소리임 필립스는 전구랑 라디오를 만드는 기업이지 무기나 군복같은걸 생산할 수 없었음 게다가 프리츠 필립스는 나치를 피해 숨어 도망다녀야 했고 나치한테 걸렸다가 수용소에 수감된 적도 있음 결정적으로 프리츠 필립스는 나치 지도부를 설득해서, 필립스 공장을 가동하고 라디오 선전방송을 하기위해서는 유대인 생산기술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음. 이덕분에 필립스 지붕아래의 유대인 400명정도는 목숨을 구할수 있었어 그 이전까지는 논란이 많았는데, 1996년 이스라엘 대사가 직접 프리츠 필립스를 초청해서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공로를 인정해 열방의 의인 상을 수여하면서 이 논란은 싹 정리됨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이 아님에도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인물에게 수여하는 명예칭호임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솀 이라는 기념관에 현판을 설치하고 희생당한 유대인들과 함께 기리는 것 대표적으로 영화 <쉬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실존인물 오스카 쉰들러에게도 수여된 적 있는 칭호다
나치와 일제가 패망하고 전쟁이 끝나자 필립스 경영진들은 네덜란드로 돌아와 프리츠와 함께 빠르게 복구에 착수함 다행히 연구소는 대다수가 은폐된채로 들키지 않아서 이듬해까지 필립스의 경영 체계는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었음
여기에서 드디어 일렉트릭 기타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나오는데 전쟁직후 필립스 연구실험실에서 개발한 물질에 관한 거야
일렉기타나, 아니면 스피커에서 필수적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부품이 뭔지 아니? 바로 자석이야. 기타 픽업이나 스피커 유닛 드라이버에 반드시 영구자석이 필요해 근데 이게 1차 세계대전 이후 JBL이 알니코 자석 (알루미늄, 니켈, 코발트 합금)을 처음 스피커에 쓰기 시작하면서 기타나 스피커에는 다 이걸 썼거든.
그런데 저 원자재 중에 코발트라는 광물은 전세계에서 오직 콩고와 러시아, 두 나라에서만 생산됨 당시 콩고는 시도때도 없이 내전이 터져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고 실질적으로 코발트의 가격은 러시아가 실권을 꽉 쥐고 있었음. 마치 석유처럼 그래서 종종 코발트 가격이, 그야말로 오일쇼크처럼 급등하기 일쑤였는데 이게 갈수록 러시아의 횡포가 말이 아니었음. 급기야 코발트 가격을 100배까지 인상하기 까지 했다고 100만원짜리 기타가 1억이 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나마 희토류 금속을 이용하는 자석도 개발되긴 했는데, 이것도 문자 그대로 희소한 광물을 이용하는 거임. 요즘도 사용되긴 하는데 희토류 광물은 중국 수출량이 어마어마하다. 아무튼 이걸 해결해주신게 네덜란드 큰형님의 필립스 엉님이시다 필립스는 페라이트 라고하는 새로운 관점의 자성체를 발견해냈고, 이윽고 전세계에 선포하기에 이른다. “세계 어느나라에서 네덜란드에 있는 필립스 본사를 방문한다면 국적을 막론하고 페라이트 제조기술과 견본을 공유하겠다.” 알니코 자석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순간이었지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도 1세대 스피커 제조사가 있었는데 시장 1위가 삼미, 2위가 고려전자였음 그런데 코발트 파동으로 삼미가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고려전자 박사장님이 필립스로부터 페라이트 기술을 먼저 손에 넣으면서 마샬스피커를 개발하고, 시장 1위를 차지하게 됨 이당시 국산 스피커의 기술력이 얼마나 좋았냐면 유럽 올림픽의 모든 경기장에 메이드인코리아 스피커로 도배된 적이 있음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이거말고도 필립스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도 개발했고 세계최초의 집적회로도 필립스 연구소에서 탄생함. 나아가 IIC (I²C)라는 직렬버스 (USB같은 통신규격의 일종임)를 개발해서 리눅스 운영체제나, 오늘날 휴대폰에 쓰임
진짜 연구개발에 미친회사임 필립스
3. 근대 필립스
전쟁을 겪은 프리츠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고 CEO인 프랑스 오튼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
1962년 필립스는 컴팩트 카세트테이프를 개발하고 1963년에 시장에 보급하기 시작함 카세트 테이프를 개발한 사람이 루 오텐스 라는 엔지니어인데, 작년에 별세하셨다. 근데 이 양반도 자기 입으로 “왜 아직도 카세트테이프 쓰는지 모르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카세트테이프의 음질은 굉장히 좋다.
처음 개발될때의 목적은 기자들이 쓰라고 만든 거였는데 음질이 너무 좋아서 LP랑 같이 음반 산업을 꽉 잡게 됨 오디오 산업의 가능성을 깨달은 필립스는 설립 초기부터 경쟁사였던 독일큰형님 지멘스와 합작해서 폴리그램이라는 음악 녹음실도 차렸는데, 클래식 녹음계의 대부인 데카 레코드와 인수합병까지 했는데 시그램 이라는 캐나다 기업에 인수됨 시그램은 주류기업인데, 그때당시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시그램 꺼였음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이면 데카를 알 수도 있는데 지휘자 머리 위에 마이크 3개 달아서 녹음하는 방식을 만든 곳이다. 그리고 흔히 최악의 실수라고 종종 소개되는, 비틀즈와의 계약을 걷어찬 음반사이기도 하다. 결국 비틀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도 알려진 전설적인 그룹 퀸을 데뷔시킨 EMI 레이블과 계약함
조금 나중 얘기지만 세계최초 카세트테입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 헤드폰, 스피커도 만들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오디오 산업에서 철수하고 깁슨한테 팔아넘겼다.
필립스의 오디오 산업에서 가장 큰 혁명은 소니와 공동개발한 CD라고 할 수 있는데 CD는 그야말로 오디오 대혁명을 이뤄내고 음악산업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성공적인 대중매체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역대 CD 판매량이 LP, 카세트, mp3, 스트리밍, 컬러링 다합친것보다 많음 이후에 소니와 합작한 DVD, 블루레이 모두 성공적으로 시장을 먹었지
근데 필립스가 단독 개발한 CD-i라는 대화형 게임CD는 역사상 최악의 게임기에 차트인하기도 하고 CD-G, CD-V, 비디오카세트, 디지털카세트 같은것도 내놨는데 니네 본적 없지? 당연하지 바로 사장됐으니까 ㅋㅋ 정말이지 소니와 합작하기만 하면 대성공을 거두고 혼자 연구하면 개같이 멸망하는걸 보면 어쩌면 필립스는 기술력만 있고 시장 안목은 없는 걸지도 모른다.
하여간 필립스는 1980년대 들어서 세습에서 벗어나, 비스 데커라는 사람이 CEO를 계승했다. 이때는 뭐… 산업이나 개발에서 큰 혁명은 없고 투자나 인수합병이 자주 일어남. 그 다음으로는 얀 티머라는 사람이 CEO가 돼서 구조조정, 필립스 일렉트로닉스로 사명 변경, 오퍼레이션 센츄리온 도입 같은 일을 했다. 아까 말한 CD-i, 디지털카세트가 이새끼때 작품이다. 진짜 소니랑 DVD 안만들었으면 필립스 망했음 코 분스트러라는 CEO도 자회사를 매각해서 사업을 영위함 이때는 소니랑 합작을 했는데 망하기까지 했다.
네덜란드는 아직 왕조국가인데, 이건 독재가 아니라 네덜란드 국민이 매년 투표를 해서 현 국왕체제를 유지하는데 찬성하기때문에 이어지고 있다. 설립한지 100년도 더 지나서 1998년, 필립스 일렉트로닉스는 네덜란드 왕실로부터 네덜란드를 빛낸 공로를 치하받으며 사명을 Koninklijke Philips Electronics로 변경했다. 코닌클예크는 영어로 치면 Royal, 네덜란드 왕실이 공인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잦은 구조조정에도 30년동안 필립스에서 근무하던 한 사내가 있었으니…
4. 필립스 현대
2001년, 제라드 클라이스터리 라는 인물이 새로운 CEO를 계승하게 되었다.
제라드는 음반, 휴대폰, 심지어 반도체 사업에서까지 완전히 철수해버리고 매각 대금을 LED 조명사업에 집중투자해서 필립스에 제세동을 씨게 걸어 되살려냈다.
그리고 여기서 페라이트에 이어 한국 이야기가 한번 더 나옴 코닌클예크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던 1998년에, 필립스는 LG와 합작 법인을 이미 설립해 두었는데 제라드가 LG한테 투자를 좀 많이 해줬음. 구 씨 가문이랑 허 씨 가문이 합심해서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나?
삼성과 LG가 한국을 먹여살리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견해차이는 인정하는데 나는 디스플레이 덕분이라고 본다. 삼성 갤럭시든 LG 모니터든 근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디스플레이 제조기술은 형편 없었음 LCD? 말이라고 하냐? 그땐 전국민이 CRT 모니터만 썼음 그런데 아까 말한 LG필립스라는 이름으로 필립스가 LCD 제조기술을 통째로 LG한테 줘버림 ㄷ ㄷ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디스플레이 제조기술이 들어오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하고 LG의 R&D 엔지니어가 도면 들고 삼성으로 빤쓰런 쳐버리는 바람에 이 기술이 삼성으로도 유입되었음 지금은 LG의 단독경영체제로 바뀌었지만 이 성장배경에 필립스라는 거대한 기업이 있었던거임
그리고 일렉트로닉스를 떼고 코닌클예크 필립스로 사명을 또 바꾼 필립스는 아~~~까전에 설명했던 X선 진공관 연구개발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CT, MRI같은 의료기기를 생산하며 의료산업의 혁신을 이끌었고 현재 지멘스, 그리고 제네럴 일렉트릭(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기업)와 함께 의료기기 시장의 90%를 다먹고 있음
단순히 돈만을 좇지 않고 각종 공익 캠페인을 진행하는 윤리적인 행보… 13만개에 이르는 특허를 출허하며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경영 철학…
글로벌 대기업 필립스 형님만 믿어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