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잉베이와 존 맥러플린 인터뷰 번역
노래기
2022-07-07 06: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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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레스니코프 인터뷰, 뮤지션 매거진 1990 9월호
잉베이 말름스틴, 존 맥러플린
여유로운 파리지앵의 분위기를 풍기는 존 맥러플린. 오늘의 인터뷰에 대한 소감 한 마디는?
존: 오늘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기타를 친다는 것 하나 빼고는 하나도 닮지 않은 친구죠.
올해로 48살이 되는 재즈의 대가 존 맥러플린. 올해로 27살이 되는, "불꽃이 이는 록 기타의 신성" 잉베이 말름스틴. 이 둘은 일견 닮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유려하게 몰아치는 속주, 스캘럽 처리가 된 지판, 클래식에 대한 조예, 그리고 커리어를 끝장낼 뻔한 안타까운 사고까지! (존은 텔레비전에 손을 찧었고 잉베이는 나무에 차를 박아 버렸다.)
존 맥러플린도 우스운 별명쯤은 갖고 있었다. ‘지미 페이지를 가르친 남자’, ‘퓨전의 창시자’, ‘뽕쟁이’, ‘빽정장’, 그리고 ‘속주의 시조새’.
존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하던 시절의 퓨전과 얼마 전에 나온 로얄 앨버트 홀 라이브를 듣는다면, 어째서 뉴욕 클럽과 교향악단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곡가라 불리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잉베이의 새 앨범 이클립스는? 젊은 스웨덴인이 또 다시 저번 4 앨범의 전철을 밟고 있다. 제 딴에야 트렌드세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 성장할 여지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듯싶다.
이 스웨덴 출신 기타리스트를 싫어하는 게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름을 크게 떨치지 못했다면 아마 더더욱 그랬을 테지만, 우리의 생불 존 맥러플린께선 잉베이의 헛소리 – 예를 들자면 “나는 연습을 안 해.” 라든가 – 를 버텨내 주셨다. 이미 20년 전에 당신께서 쌓아 놓은 음악에 숟가락 얹는 잉베이를 지긋이 바라보는 존을 보다 보면, 결국 기타로 이어져 있는 두 사람에겐 뭔가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 보자.
인터뷰어: 기타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두 분 모셨습니다. 사실 늘 연주에 깊이감, 소위 필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으시곤 하셨는데, ‘너무 과한 테크닉’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잉베이: 테크닉보단 테크닉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테크닉은 또 굳이 속도라든가 하는 것보단 비브라토를 잘 떤다 이런 게 테크닉이기도 하죠. 사실 빠르게 피킹을 하는 것보다 비브라토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저희 둘 다 후루루루룩으로 유명한 사람들이긴 하지만요.
맥러플린: 테크닉이라는 건 사실 포괄적인 개념이지요. 기타리스트들은 이 테크닉이란 단어를 잘게 쪼개서 해머링, 풀링, 속도, 썸, 비브라토, 뭐 그런 식으로 나누곤 합니다. 잉베이와 기본적으로 비슷한 답을 내놓을 수 있겠네요. 테크닉에 잡아 먹히지 마라, 정도로요. 사실 이 따위 질문은 저희가 기타리스트여서 듣는 말이지요. “우가우가, 테크닉은 빠른 거야~ 아무런 깊이도 없어~”
그 따위 말은 기타리스트들만 듣는 것 같더군요.
인터뷰어: 콜트레인보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맥러플린: 오스카 피터슨도 엄청난 테크니션이었지만, 그런 소리 안 들었던 것처럼요.
잉베이: 기타가 다양한 장르에 두루 쓰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기타는 록의 악기잖아요? 그리고 록은 아무래도 대중적 어필이 필요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뭐 재즈랑 다르게. 록 콘서트에서 대단한 테크닉을 뭐 얼마나 봅니까? 대충 에릭 클랩튼 같은 거나 보던 사람들이 뭐…
인터뷰어: 그렇다면 혹시 어떤 문제점이 발생…
잉베이: 문제는 없습니다.
인터뷰어: 맥러플린씨는 아무래도 통기타 음악도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통기타 음악에서도 굉장히 상충되는 아이디어를 많이 결합하셨던 것 같아요. 이런 대중적인 음악에서 복잡함, 심오함을 추구하면 어떤 문제점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잉베이: 음악이 좀 더 들을 만해지는 거죠.
맥러플린: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문제점? 그 말 자체도 조금 이상하죠. 문제점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걸 들고 나온 것뿐입니다. 테크닉과 듣는 귀는 늘 발전하고, 또 바뀌어 가고 있어요. 당장 50년대 록이랑 80년대 록을 비교해보면 천지 차이죠. 끊임없는 발전에 힘입어서 엄청나게 많은 장르들이 탄생해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잉베이같은 주자들이 나오면 참 괜찮습니다. MTV에서도 봤어요.
잉베이: 팔아먹으려고 만든 노래죠.
맥러플린: 그런가요? 중간부터 봐서 모르겠네. 보는데 기타를 무지막지하게 치길래 쭉 봤죠. 미친 짓거리 좀 하던데요, 기타로?
잉베이: 좀 최신 것 좀 들으시지.
맥러플린: 잉베이씨가 제 나이가 되면 그런 얘기 좀 듣게 될 겁니다. “이 음반 어때?” 그리고 한 20년 전에 발표된 걸 들고 오겠죠. 그때쯤부터 옛날 거 좋아하나 하고 걱정하시면 됩니다. 잉베이 같은 주자들은 50년대에도, 60년대에도 나올 수 없었어요. 뭐 이젠 시대가 바뀌었죠. 존 콜트레인이나 마일스 데이비스라든가 하는 선구자들이 재즈와 록의 정수만을 뽑아서 섞어내준 덕에.
잉베이: 재즈는 조금 신경쓰면서 들어야 하잖아요. 이제 퓨전을 듣다 보면 이건 사람들 들으라고 만든 음악이 아니라 자기들끼리만 들으려고 만든 음악이 되어버린 거죠. 제프 벌린이나 앨런 홀즈워스는… 아ㅡ 홀즈워스 사랑합니다. 홀즈워스 음반 몇 장 팔렸는지 아세요? 더럽게 조금요. 본 조비는 몇 장 팔았게요? 그 새끼는 세지도 못할 걸요. 너무 짜증이 나는 상황이죠.
맥러플린: 사실 음악적인 성공과 판매고 두 가지 영역이 있는 거죠.
잉베이: 전 둘 다 놓치기 싫습니다.
맥러플린: 어쨌거나 전 자기 음악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잘 팔리든 아니든 간에.
인터뷰어: 즉흥연주에 대해서 한 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맥러플린: 즉흥연주는 계속해서 신경을 써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냥 아무거나 쳐서는 안 돼요. 무슨 스케일을 쓸지, 화성적으로 어떤 진행에 내가 솔로를 얹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야 즉흥을 시작할 수 있겠죠? 클래식하는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테크닉은 범접할 수도 없고, 악보도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어떤 난해한 라인을 갖다 줘도 잘 해석해내지만 즉흥은 못하거든요. 아예 사고의 회로가 달라야 합니다. 신경을 써서 만들어내야 하죠.
인터뷰어: 그렇다면 초심자들은 제대로 된 즉흥연주를 하지 못할까요?
맥러플린: 당연히 불가능하진 않죠. 대신 즉흥을 늘 연습하던 사람이 할 수 있을 겁니다. 클래식 음악을 하던 사람들은 애초에 즉흥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요. 클래식에 발 담근 수많은 지인들 모두가 즉흥연주를 해 보려고 하지만, 그 방법을 잘 몰라요. 테크닉이 곧 즉흥연주는 아닙니다.
잉베이: 제가 치는 솔로들은 죄다 즉흥이에요. 죄다. 무대에 설 때마다 솔로가 바뀌죠. 물론 A 마이너면 A 마이너를 치고, G 메이저면 G 메이저를 치거나 E 프리지안이나 뭐 디미니시 라인들이나 크로매틱을 얹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즉흥연주입니다. 재즈 연주자들이 보통 다들 그렇게 하고요. 록 기타나 클래식 기타에선 찾아볼 수 없고요. 마이클 쉥커나 EVH 라이브 보면 다 음반처럼 칩니다.
맥러플린: 그거 어려워요.
잉베이: 저도 못하거든요. (웃음) 기억이 안 나요. 음이 워낙 많아야지…
인터뷰어: 오랫동안 기타를 치다 보면 손버릇이 생기잖습니까? 의도치 않게 굳는 것들이요.
잉베이: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그걸 벗어나려고 해요. 판에 박혀서는 음악을 못하죠. 사실 저는 원래 솔로를 “이거 치고, 똑같은 거 옥타브 위에서 치고, 요거 치고, 이제 아르페지오 조진 다음에 이렇게 가야겠다!”는 식으로 짰었는데, 이제는 그냥 자유롭게 치고 있습니다. 록 기타리스트들은 키에 종속된 손버릇들이 있죠. 그냥 그것만 계속 치는 겁니다.
맥러플린: 사고 프로세스 자체를 구조화해야 합니다. 음악을 하면서 자기만의 것을 찾아나가는 거죠. 그렇다고 이게 평생 갈 필요는 없고, 언제든지 벗어날 수도 있어야 해요. 프레이징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그걸 왜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해야죠. 제가 잉베이 씨보다 나이를 두 배는 먹었어도, 결국 저도 기타리스트잖아요. 전 아직도 끊임없이 버릇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든요. 좋은 버릇이 어느 순간 판에 박힌 플레이가 되면 그 순간을 빨리 알아채고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조금 방황하게 되지만, 그게 음악의 본질이죠.
잉베이: 참 어려운 거죠. 록 기타리스트중에 누가 그걸 할 수 있겠어요? 손에 꼽겠죠. 인간들이 죄다 판에 박혀 있어요. 맨날 똑같은 코드 진행, 똑같은 스케일…
맥러플린: 그게 ‘문제점’ 이죠. 테크닉에 종속된 순간부터 진화도 발전도 어려워집니다. 버릇을 고치지도, 즉흥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그럴 때 어느 순간 뒤집히는 거죠. 그래서 아직도 열심히 연습합니다.
잉베이: 전 안 하는데요.
맥러플린: 전 지금 많은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중이에요. 물론 그 과정이 즐겁고요. 왜냐면 벗어날 필요가 없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 때부터 생각을 다르게 먹고, 또 자기 연주가 점점 다르게 들리기 시작하죠. 그래서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A에서 B로 가는 이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틀려먹었어.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하고요.
그때부터 종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거죠. 물론 이러지 않을 때도 있어요. 지금 당장 만족스럽고, 모두 유려하게 흘러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인 거죠.
잉베이: 무슨 말 하려는 지 이해했습니다. 지금 하는 거 전 좋아요, 편하고…
맥러플린: [잉베이 등을 두들기며] 에헤이, 언젠가는 찾아온다니까?
잉베이: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겪었는데, 그 경험이 저를 많이 바꿨죠. 뇌에 혈전이 들어차고 신경 말단이 말을 안 들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15살 때로 돌아간 것처럼 미친듯이 연습하기 시작했고, 결국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었어요. 뭐 잘난 척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제 연주에 한계가 없는 기분이에요. 예전보다 훨씬 더 빨리 후루룩을 할 수 있죠.
맥러플린: 결실을 맺으셨네요. 전 두 달 반 전에 왼손 검지를 부러트려먹었거든요.
잉베이: 으, 악몽같은 일이네요.
맥러플린: 악몽같은 일이었기도 했고, 정말로 악몽도 꿨어요. 자다가 땀에 젖어서 깨곤 했죠. 물론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라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잉베이: 다시 돌아오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맥러플린: 2주 전에 시작했으니 2달 걸렸네요.
잉베이: 저는 한 2~3달이었어요. 그 전에 치면 너무 끔찍해서 나를 싫어하게 될 것만 같았거든요. 병원에서 누워 있는데 친구들이 기타를 들고 오는 거예요. “진짜 기타 안 칠 거야?” 하면서요.
“응. 치워.” 라고 대답했어요. 뭐 물론 동기부여가 조금 되긴 했지요, 아까 말했듯이 버릇은 위험하니까.
맥러플린: 저는 좀 낙관적인 편이라 모든 게 축복이 아닐까 해요. 뭐 일견 끔찍해 보이는 일이라도 말이에요. 뭐, 검지를 부러트려먹었을 땐 조금 미쳐있었아요. 잉베이도 똑같았을 텐데?
잉베이: 음, 사실 사고 이후에 오히려 덜 미치게 된 것 같아요. 늘 미친놈 끼를 갖고 살다가 말이에요. 뭐 모차르트, 파가니니, 이런 사람들 생전에 웬 여자를 끼고 살고, 탕진하고, 그러고 살았잖아요? 딱 제가 그러고 다녔으니까요.
인터뷰어: 꼭 이해하신다는 듯이 쳐다보시네요?
잉베이: 맥러플린 씨는 이미 겪어보셨군요.
인터뷰어: 맥러플린 씨는 어느 순간 머리도 자르시고, 흰 옷만 입으시고, 술도 끊으셨었는데 지금 술도 한잔하시는 모습이 옛날보다 확실히 풀어지신 것 같네요. 피끓는 젊은이에서 수도승이 되셨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시는 건가요?
맥러플린: 음, ‘사람으로 돌아온다’ 니, 제가 뭐 로봇인가요?
인터뷰어: 그렇다기보단 자기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 말이죠.
맥러플린: 저는 사실 조금 독특한 관점을 하나 갖고 있었어요. 딱히 티내려던 건 아니었고, 뭐 지금도 갖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가진 아주 큰 장점 중 하나가 거기서 나온다고 보거든요.
인터뷰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계속 그렇게 관점을 유지하시나요?
맥러플린: 그렇진 않네요. 사실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정신적 만족을 얻으려는 삶의 자세를 질려버리도록 가져보기 전까진 그 삶이 어떨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터뷰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요?
맥러플린: 금욕이라든가 하는 것보단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엄격해지는 거죠. 4시에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신의 본질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 그런 것들이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거라면 뭐 뭐든지요. 거기서 계속 나아가면 누군가는 불자가 되겠고, 뭐 그렇겠지만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세상을 보는 세계관이 달라지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잉베이: 저는 그럴 생각은 평생 없었어요. 왜냐면 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주어진 환경에 있는 내가 있다면, 내가 환경에 맞춰 변해가겠죠. 전 바뀔 수가 없거든요.
맥러플린: 환경이 잘못됐다라든가 하는 게 아니라, 환경은, 이 세상은 그 자체로 완벽한데 그저 그걸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이, 관점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결국 관점의 얘기라는 거죠.
인터뷰어: 잉베이 씨는 명상용 음악을 만들고, 머리를 자르고, 뭐 그런 거 하는 게 상상이 되나요?
잉베이: 전 지금 아주 만족스럽게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음악도 잘 되고 있고요. 뭐, 그러다가 뭔가 수틀리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전 워낙 충동적인 사람이라.
인터뷰어: 맥러플린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해서 나아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끝없는 자기반성이 필수 아닐까요?
잉베이: 저는 그래서 밴드 멤버를 바꿉니다. 늘 귀에 박히게 듣는 말들이 있어요.
“좀 스타일 좀 바꿔 봐.” “블루스 좀 쳐 보지 그래?”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감을 놓고 배를 놓고… 저는 지금 제가 하는 게 참 좋거든요? 사실, 제가 이렇게 완고하다는…
맥러플린: 완고해져야지!
잉베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애초에 잘 없잖아요. 저는 제 음악이 참 마음에 들거든요. 아니, 생각해보면 지미 페이지나 에릭 클랩튼한테 “스윕 피킹을 좀 해 보는 게 어때?” 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인터뷰어: 젊은 기타리스트에게 열릴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말씀드리는 거죠, 모욕을 하려는 게 아니라요.
잉베이: 모욕으로 받아들이진 않았고요, 그냥 존나 큰 물음표 하나가 떠 있는 거죠.
맥러플린: 저 질문 자체가 함정이에요. 저한테 똑같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실 겁니까? 10년 뒤의 미래를 점쳐보자면?” 같은 소리를 한다면 제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인터뷰어: 그게 요지가 아닙니다. 음악적 성장에 있어서 끊임없는 자기 불만족이 필요할까요? 라는 질문에 잉베이 씨는 “난 내 멤버를 잘라버리는데?” 라고 하셨죠. 독재를 하면서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한테서 배울 점을 놓치는 거니까요.
맥러플린: 그래서 잉베이 씨랑 음악 해 보셨어요?
인터뷰어: 그건 아니죠.
맥러플린: 그럼 모르는 거죠. 음악가랑 일할 땐,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거예요.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될 거란 말이죠.
잉베이: 그래서 지시를 내리는 편인데, 새로 들어온 키보디스트가 맘에 들어요. 베이시스트도 자기 색깔을 슬쩍 드러내주고 있고요.
인터뷰어: 옌스 요한슨이라는 대단한 뮤지션을 두고 계셨는데 말이에요? 성격적인 문제로…
잉베이: 에이, 진짜 이유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다른 음악인들한테서 많은 걸 뺏어가서 그래요. 열정도 뺏고, 자신감도 뺏고, 그러면 껍데기만 남죠. 그렇게 새로운 밴드를 만들면? 아주 열정 가득한 새 멤버들이 생기니까 그게 곧 변화의 시작이 되는 거죠.
인터뷰어: 맥러플린 씨도 빌리 코범 씨랑 비슷한 일을 겪지 않으셨나요?
맥러플린: 소문이 입을 타면 이렇게 되는 거죠. 코범은 좋았어요. 빌리 코범이 문제가 아니라 얀 해머랑 제리 굿맨, 그 모자란 놈의 씨발 새끼들이 문제였던 거거든요! 이거 그대로 실어도 돼요. 괜찮아요. 제리랑은 풀었고, 얀은 아직도 20년이 지나서도 좀 뭔가 켕기나 보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람은 성공하는 것보단 실패에 더 익숙하고, 뭐 그렇게 둘이랑은 나쁜 일 밖에 없었죠. 뭐 결국 그 팀이 제일 유명했던 거 보면 참 얄궂은 일이에요.
인터뷰어: 잉베이는 누구 밑에서 일한 적이 없는데, 다른 음악가를 위해 일하면 뭔가 얻어갈 수 있는 점이 있을까요? 마일스 데이비스 밑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많이 발견하셨다고 하셨죠?
맥러플린: 사실, 재즈에선 마일스 데이비스가 있었지만 록의 세계엔 그런 사람이 없거든요. 잉베이는 록 기타리스트니까 록계의 마일스 데이비스가 필요할 거 아니에요?
잉베이: 저는 일단 록 기타리스트기도 하지만 일단 클래식에 큰 뿌리를 두고 있거든요. 코드 진행도 클래시컬하고. “더 퓨리”같이 킥이 와다다다 밟아대는 곡이지만 피아노로 한번 쳐 보면 사실 모차르트풍 곡이거든요. 거기에 이제 록큰롤의 사운드를 붙인 거죠. 디스토션을 먹인 파워 코드에, 더블 베이스드럼에, 뭐 대충, 그런 거요. 뭐 아르페지오처럼 전형적인 록사운드에서 벗어난 것도 있긴 하죠.
인터뷰어: 와우 페달을 쓰시더라고요?
잉베이: 헨드릭스한테 받은 영향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인터뷰어: 맥러플린 씨한테 헨드릭스랑 잼하던 게 어떤 기분인지 한번 물어보세요.
잉베이: 이런 씨발, 당신이? 아, 미안해요. 정말로 잼 해 봤어요?
맥러플린: [침묵] 당연하죠.
잉베이: 어땠어요?
맥러플린: 지미는 정말… 좋았죠.
잉베이: 헨드릭스는 제 기타히어로거든요, 아우 욕한 건 미안해요.
맥러플린: 뭐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세요, 병신.
잉베이: 저희 어머니께서 5살 되는 생일날에 기타를 선물로 주셨거든요?
맥러플린: 오호.
잉베이: 그리고 제가 음악을 하길 바라셨어요. 피아노 레슨도 붙여주시고, 발레 레슨도 붙여주시고, 성악도 시키시고, 플루트, 트럼펫…
맥러플린: 그리고 하나도 성공을 못했나보네요?
잉베이: 당연하죠. 전 음악이 싫었어요. 1970년 9월 18일 텔레비전으로 지미 헨드릭스를 보기 전까지는요. 탄성을 내지르고서 저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쭉 그러고 있는 거죠. 전 헨드릭스 덕분에 기타를 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주 자체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에요.
맥러플린: 지미는 정말 혁명을 불러온 기타리스트였죠.
잉베이: 정말 멋있었어요, 최고였으니까.
맥러플린: 정말 혁명적이었어요.
잉베이: 순수하게 멋짐 하나만 놓고 봤을 때, 헨드릭스 위에 누가 있겠어요?
인터뷰어: 지미가 연주하는 걸 보면서 전설으로 남을 것이라고 느꼈나요?
맥러플린: 만나기 전에도 알 수 있었죠. 이미 사람들 모두가 듣고 있었는데요.
잉베이: 이게 참 재밌는 게, 어젯밤에 기타 하나를 불태웠거든요. 불태우고 싶어져서 기타를 좀 쳤었어요.
맥러플린: 기타가 불쌍해.
잉베이: 어젯밤에 태우고 보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인터뷰어: 맥러플린 씨는 헨드릭스 이전부터 디스토션을 쓰셨죠? 디보션 같은 앨범에서 말예요.
맥러플린: 그것보다 훨씬 전에도 썼었죠. 1962년에 그레이엄 본드,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랑 밴드 할 때요. 원하는 사이즈가 없어서 앰프를 주문해서 썼는데, 거기에 디스토션을 물렸었어요. 문제는 할로우바디를 쓰던 시절이라 노이즈랑 하울링이 너무 심했던 거였죠.
잉베이: ES-335 쓰던 때요?
맥러플린: 그것보다 훨씬 전 얘기죠, 30년 전이니까.
인터뷰어: 335는 62년 출시인데요.
맥러플린: 그건 그거고 제 손엔 없었죠. 그때는 그레치를 갖고 있었는데…
잉베이: 어으!
맥러플린: 아주 낡아빠진 그레치요. [음흉한 늙은이 목소리를 내며] 그땐 참 우리도 순수했었는데 말이야.
잉베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잖아?
인터뷰어: 또 하나 질문은, 두 분 다 스캘럽된 지판을 쓰는 기타리스트시잖아요? 씬에서 두 분 말고 이름을 날린 기타리스트들중엔 찾아볼 수가 없는데, 잉베이 씨는 맥러플린 씨에게서 영향을 받았나요?
잉베이: 아뇨,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제가 14살 때쯤 기타 공방에서 일했었거든요.
맥러플린: 기타 수리도 하셨어요?
잉베이: 네, 루티어였죠.
맥러플린: 저도 루티어였는데! 신기하네요.
잉베이: 여튼, 17세기인가 16세기인가에 만들어진 루트가 들어왔었는데, 프렛 대신 프렛보드를 깎아서 피치를 조정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어요.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고선 맛이 간 넥을 하나 그렇게 갈아버렸죠. 실험 차. 그런데 그걸 쳐 보니까 현의 느낌이 손에 바로 전달되는 거예요. 현을 컨트롤하는 게 아주 편해졌어요. 마치 아주 높은 프렛을 가진 기타를 치는 것 같았고, 괜찮은 넥에다가 스캘럽을 하고 그 때부터 쭉 그렇게 쓰기 시작했죠. 처음 맥러플린 씨가 스캘럽 한 걸 본 게 아마 기타 플레이어 잡지 표지였던 것 같은데, 이거 존나 멋있네 했었죠.
인터뷰어: 두 분 다 똑같은 이유로 쓰시는 건가요?
잉베이: 저는 그냥 치는데, 맥러플린 씨는 꾹 눌러서 치시던가요?
맥러플린: 그럴 리가요, 아니죠.
잉베이: 누가 시타르 소리를 내려고 그렇게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서요.
맥러플린: 잡지에 있다고 믿을 만한 정보인 건 아니랍니다.
잉베이: 꼭 맞는 말이네요.
맥러플린: 그런 말은 한 적 없어요. 스캘럽을 한 이유는 잉베이 씨와 똑같아요. 현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아지죠. 지판이랑 손가락의 마찰이 없어서 바브라토의 가능성이 훨씬 넓어집니다. 그게 이유예요.
잉베이: 사람들이 자꾸 “왜 했어요? 속주가 편해져요?” 같은 소리를 하는데, 음을 내 것으로 만들기 편해서이지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온전히 내 것이 되는 현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거죠.
인터뷰어: 두 분 다 나일론 기타를 피크로 치시죠?
잉베이: 핑거도 씁니다.
맥러플린: 저도 핑거도 쓰죠. 코드를 칠 때라든가.
잉베이: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이 엄지를 쓸 상황에 피크를 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터뷰어: 어떤 기타리스트들은 술이나 마약 없이는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잉베이: 그만한 헛소리도 없네요. 그냥 거짓부렁이에요. 절대 아니죠. 절대. 술은 사람을 풀어지게 만들고, 그게 음악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거든요. 술은 음악이랑 떨어져서 있어야죠. 그리고 마약은 100% 반대합니다.
맥러플린: 전 일단 60년대 사람이라 대마도 피우고 흰 가루도 많이 썼죠.
잉베이: 전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요.
맥러플린: 확실히 뭔가 있긴 했어요. 의식의 변화를 주는 게 뭐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봐요. 대신 어떻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가 중요하겠죠.
잉베이: 프로 뮤지션이라면 언제나 마약은 멀리해야죠.
맥러플린: 뭐 그런 말만 듣고 살지 않겠어요?
잉베이: 그렇죠. 다들 저 같은 소리만 하는 걸요?
맥러플린: 그래, 당신 의견을 말야!
인터뷰어: 두 분의 업적을 한번 볼까요? 잉베이씨는 우리가 기타히어로를 원하던 때에 기타히어로가 되셨죠. 솔로악기로써의 가능성을 다시 되찾아 오셨고요. 맥러플린 씨는 아주 옛날에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된 연주자들과 함께 솔로악기로써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셨죠.
이제 후발주자들이 또 새로운 걸 들고 나올 텐데요, 잉베이 씨는 테크닉의 상향 평준화를 이루어 내셨고요, 맥러플린 씨는 그걸 20년 전에 이미 완성시키셨었는데…
맥러플린: 얼라리, 이 에미터진 놈이 자꾸 내 얘기는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 좀 보게?
인터뷰어: 아니, 그 사건과 그 영향력을 말하려면…
맥러플린: 내가 그렇게 늙어빠진 놈이다, 뭐 그런 건가?
인터뷰어: 그냥 건조한 서술을 하려고 했던….
맥러플린: 아이, 말도 안 돼. 말이 안 돼. 여튼, 계속 하세요.
인터뷰어: 이제는 협주곡을 쓰시잖아요? 조금 더 전통적인…
맥러플린: 저는 클래식 음악을 하는 게 아닙니다.
잉베이: 피크로 치잖아요.
맥러플린: 전 제 음악을 클래식에서 쓰이는 형태를 차용해서 할 뿐입니다. 그리고 트리오고요.
인터뷰어: 제 말은…
맥러플린: 어디 해 보쇼!
인터뷰이: 에라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무슨 줄 쓰세요?
맥러플린: 놀려서 미안해요. 계속해요.
인터뷰어: 그러니까, 제가 하려던 말은, 자기 음악에 대한 반성을 하다가 결국 클래식에서 한 방법을 찾으신 것 같아요. 끊임없는 혁신 후에 다시 뿌리로 돌아가서 이제 여정을 마치신 거죠. 잉베이는 요새 좀 퇴물이죠? 다들 이제 한물 갔다고 생각하고요. 잉베이가 남긴 족적…
잉베이: 뭐라고?
인터뷰어: …는 결국 과거의 유산이 된다는 거죠. 계속해서 나아가지 못한다면….
잉베이: 아이, 씨발, 5년이 그렇게나 옛날은 아니잖아?
맥러플린: 아이, 그래서 요점이 뭐야? [웃음] 장난치지 말고.
잉베이: 이건 뭐 톰과 제리도 아니고… 자꾸 뭐 진화 발전 그런 소리를 하는데, 좀 내 얘기를 귀를 열고 들어봐 좀! 난 지금 내가 하는 게 좋고 행복해. 어디 뭐 다른 걸 할 생각은 들지도 않아. 그게 즐겁고, 뭔가 새로운 걸 하려는 필요도 못 느끼고 있고. 아니, 그리고 내가 왜 퇴물이야? 나 베끼기나 하는 그 삼류 놈들이 퇴물이면 퇴물이지!
맥러플린: 잉베이 말 잘 했다!
잉베이: 그 많던 짭 네오클래시컬 기타리스트들 다 어디 갔어? 다 뒤졌잖아!
인터뷰어: 자기변호 하려고 옛날 얘기를 끌고 오진 마시고, 제 말은…
잉베이: 뭔 소리를 하려는 거야?
인터뷰어: 그러니까…
맥러플린: 쉿! 조용! 조용. 이제 좀 질문이 뭔지 듣겠네. 이 질문 들으려고 5분이나 기다렸잖아. 그래서 질문은?
잉베이: 하려던 질문은?
인터뷰어: 까먹었잖아요, 씹
맥러플린: 그 진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그렇지? 그리고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좀 있어야 하고? 잉베이가 말하는 건, 매일매일 자기가 다른 연주를 한다는 거고, 내가 콘서트를 할 때도 매일매일 다른 연주를 한다는 거고. 이 변화라는 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고, 매 때마다 우린 달라지고 있는 거지. 1밀리미터씩 전진하면 처음엔 모르겠지만 6개월만 지나보면 눈에 보이잖아?
잉베이: 말 한번 잘 하셨어요. 정말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머리 밀고 수도원 들어가려는 생각이 없는 거거든요? 매일매일 그 변화를 주고 있으니까?
맥러플린: 넌 중머리도 어울릴 것 같은데. [웃음] 우린 정신적인 걸 얘기하는 거죠.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경험하게 될 시간은 이미 스쳐간 시간이랑은 상관이 없다는 거야. 우리는 우리의 관점으로, 그 세계관으로 구조화하는 거지. 곧 미래가 닥치고, 그리고 우리가 그 미래에 지금 있고, 이제 또 새로운 미래가 우리에게 와서 지금이 되고. 이것 자체가 큰 기적이고. 음악? 음악도 결국 우리가 조금 더 많이 봤을 뿐인 거지.
잉베이: 한 마디 해도 되나? 헛소리한다고 말릴 것 같은데.
맥러플린: 듣기 전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웃음]
잉베이: 난 기타 20년 치면서 한 번도 연습을 안 해 봤어.
인터뷰어: 거짓말은 하지 마시죠.
잉베이: 정말 단 한 번도 연습한 적 없어. 똑같은 패턴 후리기는 한 번도 한 적 없어.
맥러플린: (인터뷰어에게) 그 내가 말했던 거 기억나? “얜 평생 연습한 적이 없대.” 했던 거? [웃음]
잉베이: 내가 했던 건 연습이 아니라 연주뿐이었던 거지!
인터뷰어: 연습이 연주고 연주가 연습인 거죠.
잉베이: 아니지, 디미니시 스케일을 좆빠지게 할 수는 있어. 근데 좆이 안 빠질 걸? 뭐 난 안 해 봐서 빠지는지 안 빠지는지는 모르고.
맥러플린: 난 연습하는 거 좋아.
잉베이: 난 너무 싫어요. 그냥 손가락만 푸닥푸닥 움직이는 건 너무 싫어. 소리부터가 별로야. 음악이 중요하지 줄에 손가락 갖다대는 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뭐 최소한 내 생각에는 말이에요.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와 최근 가진 투어 이후로, 맥러플린은 요나스 헬보리와의 듀오와 트리오에서 하는 통기타 연주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공명현이 달린 기타를 만들어 주었던 루티어 에이브러햄 베히터와 15년간 인연을 이어온 맥러플린은 계속해서 베히터의 악기를 쓰고 있다.
대충 10평은 될 것 같은 스판덱스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잉베이는 스트라토캐스터 십수 대를 차에 싣고 다니는데, 시그니처 모델도 그 속에 섞여 있다. 이 시그니처 모델은 잉베이가 가진 61년 스트랫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22프렛에 메이플과 로즈우드 사양, 트레몰로 브릿지, 디마지오 HS-3 픽업이 특징적이다.
앰프는 마샬만을 쓰는데, 여기에 이펙터로는 코르그 딜레이, 크라이베이비 와우를 위시한 엄선한 페달들을 사용한다.
대충 한 거라 조금 의미가 달려졌거나 오역 잇을 수 있삼
감안해주샘